<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126

소녀는 죽어도 못 가요! (1)

등록 2003.05.07 13:35수정 2003.05.07 13:51
0
원고료로 응원
8. 소녀는 죽어도 못 가요!


"뭐라고요? 방금 무어라 하였소? 다향루에서 나오다가 어르신과 함께 잡혀 왔다고 했소?"


이회옥은 장황한 설명 끝에 간신히 색한이라는 누명을 벗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다 대경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흐흑! 그래요. 다향루에서 나와 저잣거리로 향하는데 어떤 사람들이 다가왔어요. 그들은 무림천자성 사람들이라고 하더니 다짜고짜 아버님과 소녀를 공격하였어요."
"으으음! 혹시 어르신이 무림천자성을 욕하시었소?"

이회옥은 뭔가 집히는 것이 있었다. 아까 분타주 집무실 뒤뜰에서 고문당하던 사내가 혹시 조관걸이 아닌가 싶었던 것이다.

"흐흑! 아니에요. 그런 거 없었어요. 아버님은 그저 무림천자성주인 철룡화존이 전쟁을 못해 안달한다고만 했을 뿐이에요."
"으으음…!"

자신의 생각이 맞았다는 것을 확인한 이회옥은 깊은 침음성을 토했다. 그러는 사이 조연희의 말이 이어지고 있었다.


"흐흑! 소녀가 깨어났을 때에는 물통 속에 담겨져 있었어요. 여기 시비라는 여인들이 소녀를 씻기면서 하는 소리를 듣고 너무 무서웠어요. 흐흑! 오늘 밤 누군가가… 흐흑! 소녀를 능욕할 꺼라고… 흐흑! 너무 겁이 났어요. 그리고 여기 이 침상에…"

이회옥은 전후 사정을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분타주는 조관걸과 함께 납치한 조연희를 자신의 노리개로 삼으라고 던져준 것이다. 그러고는 마치 선심이라도 쓰듯 선물 운운한 것이다.


하긴 그의 입장에서 보면 대단한 선물을 한 것임에는 틀림없다.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허보도는 타고난 호색한(好色漢)이다.

어찌나 색을 밝히는지 계집이 없으면 잠을 못 이룰 정도였다. 그런 그가 조연희처럼 미색이 뛰어난 여인을 손도 안 대고 넘겼다는 것은 그야말로 대단한 선물을 한 것일 것이다.

"흐흑! 소녀는 이제 어찌 되어도 좋아요. 하지만 아버님은… 흐흑! 아버님이 어떻게 되셨는지 알아봐 주세요. 혹시 고문을 하는 건 아니겠지요? 흐흑! 공자님은 무림천자성에서도 높은 사람이잖아요. 제발, 우리 아버지 좀 구해 주세요. 흐흐흑!"
"으으음…!"

"흐흑! 공자님, 아까 그 시비들의 말에 의하면 아버님이 간세(奸細 :간첩)일 것이라면서 참형(斬刑)으로 다스려진대요."
"뭐라고? 방금 간세라고 하였소?"

"흐흑! 그래요. 그러니 어서 알아봐 주세요. 흐흑! 설마 벌써 형을 집행한 건 아니겠지요?"
"으음! 알겠소. 분타주를 만나보겠소. 여기서 기다리시오."

사태의 심각성을 짐작한 이회옥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흐흑! 소녀도 데리고 가세요."
"그건 안 되오. 낭자는 여기에서 기다리시오."

"흐흑! 그래도 어찌…"
"어허! 다 낭자를 위해 그러는 것이니 소생의 말을 따르시오."
"흑! 알았어요."

조연희는 신통하다 할 정도로 쉽게 이회옥의 말에 따랐다. 그녀의 이런 태도는 어릴 적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던 여필종부(女必從夫)와 삼종지도(三從之道)라는 말에서 기인되었다는 것을 전혀 짐작도 못하고 있었다.

과년한 처녀로서 사내에게 못 볼 것은 보여 주었으니 이제 모든 것이 결정되었다 생각하였기에 두말없이 따른 것이다.

이를 이회옥이 짐작 못하는 이유는 한시바삐 조관걸을 구해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기 때문이다. 분타주 집무실로 걸음을 재촉하는 동안에도 그가 간세라는 누명을 썼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무슨 오해가 있었을 것이지만 자신이 나서서 선처를 부탁하면 체면을 봐서라도 풀어줄 것이라 생각하였다. 하여 처음 나설 때와는 달리 약간 긴장이 풀리고 있었다.

'으음! 어르신더러 간세라니…? 혹시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건 아닐까? 으음, 분타주를 만나기 전에 먼저 어르신을 만나 어찌된 영문인지를 알아봐야겠다.'

선무분타의 뇌옥은 두 가지가 있는데 공식적인 것과 비공식적인 것이다. 공식적인 것은 선무분타에 소속된 자가 죄를 저질렀을 때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뇌옥이다.

공식적인 것은 평범한 전각 가운데 하나의 둘레에 굵은 철창을 둘렀을 뿐 다른 전각들과 다를 바가 전혀 없다.

창문이 달려있어 언제든 환기를 할 수 있고, 외부와 의사 소통도 가능하며, 하루에 두 번 음식이 주어진다.

안에는 침상도 있고, 탁자도 있다. 심심풀이로 읽을 서책들 역시 서가에 가득 꽂혀있다. 심지어는 용변을 볼 수 있는 해우소도 딸려있다. 뿐만 아니라 수욕(水浴)할 수 있는 욕실도 있다.

반면 비공식적인 뇌옥은 사정이 달라도 많이 달랐다.

첫째 지하 깊숙한 곳에 있어 창문이라곤 있고 싶어도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아무리 공기가 탁하다 하더라도 환기는 생각조차 할 수 없고, 어디를 만져봐도 축축하기까지 하다.

둘째 탁자는커녕 침상 비슷한 것도 없다. 따라서 자고 싶으면 맨 바닥에 눕거나, 한쪽 귀퉁이에 쭈그리고 앉아 자야 한다.

셋째, 서책은커녕 종이쪽지 하나 없다.

넷째 해우소 역시 없다. 용변이 급하면 뇌옥의 귀퉁이에서 보아야 한다. 따라서 냄새가 몹시 지독하다.

다섯째 수욕을 할 수 있는 욕실 역시 없다.

목이 아무리 말라도 하루에 한 번 끼니 때 가져다 주는 물 이외에는 구경조차 못하는 곳이다. 그나마 간수가 깜박 잊고 가져다 주지 않으면 쫄쫄이 굶어야 한다.

사실 비공식적인 뇌옥은 사람을 가둬둘 만한 곳이 아니다. 돼지나 개 같은 짐승들도 그곳에 가둬두면 얼마 못 가 목숨을 잃을 정도로 열악한 환경이기 때문이다.

비공식적인 뇌옥이 이런 이유는 거기에 가둘 죄수가 사람이 아닌 짐승쯤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무림천자성 사람들은 스스로를 대단하다 생각하는 일종의 집단적 우월주의에 젖어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화존궁이나 일월마교처럼 강력한 힘을 가진 문파 사람들은 그런 대로 사람 취급을 한다. 반면 그렇지 않은 대다수 문파, 즉 약소 방파 사람들은 은연중 사람 취급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경멸의 대상이며, 개나 소 같은 짐승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구 층 짜리 쌍둥이 누각인 세무각 폭파사고로 죽은 무림천자성 사람들에게 지급한 은자와, 오사마를 척결하기 위하여 아부가문을 침공하였을 때 죄 없이 죽은 사람들에 대한 보상금이 그토록 큰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이회옥이 찾은 곳은 공식적인 뇌옥이었다. 비공식적인 뇌옥은 존재조차 모르고 있었기에 그곳을 찾은 것이다.

마침 땅거미가 지고 있던 때인지라 사위는 어슴푸레하였다. 하여 지나치는 척하면서 뇌옥 주변을 살피던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마땅히 있어야 할 간수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몰라 주위를 살핀 뒤 조심스럽게 뇌옥의 창문으로 다가가 안을 살폈으나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텅 비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으으음! 이게 어찌된 영문이지? 분타주가 아까 분명히 하옥시킨다고 했는데…? 여기말고 뇌옥이 또 있나? 아니면 벌써…? 아니야, 벌써 죽였을 리는 없지. 그럼, 죄 없는 사람을 아무런 절차도 없이 그냥 죽이면 나중에라도 문제가 되니까.'

세상이 어떤지를 아직 모르는 이회옥은 순진하게도 고개만 갸웃거리며 물러섰다. 이때 등뒤에서 굵직한 소리가 들렸다.

"누구냐? 그 자리에서 꼼짝 마."
"헉 누구…?"

"아니! 순찰이 아니십니까? 여긴 어인 일로 오셨습니까?"
"엇! 그대는…?"

어느 사이인지 등뒤까지 다가온 자는 정의수호대원 가운데 하나로 혹시 침입자가 없는가를 살피는 임무를 맡은 자였다.

"거긴 뇌옥입니다만 혹시 뭘 찾으시는 것이라도…?"
"아, 아닐세. 여긴 뭐 하는 곳인가 싶어 들여다보았네."

"아하! 그러셨군요. 거긴 죄수를 가두는 뇌옥입니다. 현재 본 분타에는 죄 지은 자가 없어 비어있을 겁니다."
"그런가? 그랬군. 알겠네. 이만 볼일을 보게."

"존명! 속하,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아, 참! 오늘 이곳에서 형을 집행한바 있는가?"

"형이라니요? 무슨 형을 말씀하시는 건지요?"
"성주 모독죄를 지은 자를 참형에 처했느냐고 물은 것이네."

"에에…? 그런 죄수도 있었습니까? 속하는 잘…"
"흠! 알겠네. 이만 물러가시게."
"존명! 이만 물러갑니다."

정의수호대원이 절도 있는 군례를 올리고 물러간 직후 이회옥은 놀란 가슴을 쓸어 내렸다. 말은 안 했지만 내심으론 엄청 놀랐기 때문이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2. 2 수능 도시락으로 미역국 싸 준 엄마입니다 수능 도시락으로 미역국 싸 준 엄마입니다
  3. 3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 경희대 시국선언문 화제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 경희대 시국선언문 화제
  4. 4 의사 아빠가 죽은 딸의 심장에 집착하는 진짜 이유 의사 아빠가 죽은 딸의 심장에 집착하는 진짜 이유
  5. 5 미국에 투자한 한국기업들 큰일 났다... 윤 정부, 또 망칠 건가 미국에 투자한 한국기업들 큰일 났다... 윤 정부, 또 망칠 건가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