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고주몽 92

등록 2003.05.19 17:51수정 2003.05.19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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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군녀는 머리를 싸매고 자리에 누워 있다가 시녀가 약사발을 가지고 오자 이를 걷어차며 벌떡 일어섰다.

"분명 폐하께서 묵거의 복수를 하겠다며 여기다 독약을 탔을 것이다! 어서 썩 물러가라!"


시녀는 겁에 질려 황급히 도망갔다. 월군녀는 치를 부르르 떨며 생각에 잠겼다.

'아무리 폐하의 명이지만 신하들이 적극적으로 반대한다면 될 터인데 해위는 배신을 해 버렸고 소조는 변방으로 떠나 내 수족들이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다. 이를 어찌해야 좋단 말이냐!'

이때 비류와 온조가 병 문안을 위해 왔다고 시녀가 알렸다. 월군녀는 정신이 퍼뜩 들었다.

'그래, 아직까지 모든 게 끝난 것은 아니다. 내 자식이나 다름없는 비류와 온조가 장성해 있지 않은가!'

월군녀는 비류와 온조를 들라 일렀다. 비류와 온조의 얼굴은 월군녀만큼 침울해 보였다.


"몸은 괜찮으신 지요. 왕비마마."

월군녀는 비류와 온조의 안색을 보고선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음을 눈치 챌 수 있었다.


"왕자님들께 무슨 일이 있으셨습니까? 이 어미의 일이라면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온조는 말을 할까말까 망설였지만 비류는 즉시 토하듯 말을 늘어놓았다.

"오늘 태자와 함께 강론을 들었사옵니다. 그런데 제가 본즉 그는 결코 태자로서 갖추어야 할 학식은커녕 덕도 없었사옵니다."

비류는 유리의 친구들이 저지른 일을 얘기하며 강론 중에 있었던 사실을 월군녀에게 일렀다. 그 일인즉 이러했다.

유리는 을소의 강론을 처음에는 집중해 듣는 척 했지만 한낮의 따사로운 햇빛을 받으며 점점 졸음이 밀려왔다. 옆에서 협부가 어깨로 유리를 툭툭 치며 잠을 깨우곤 하였다.

"태자님, 조선(고조선)의 단군 색불루께서 팔조금법을 제정한 뜻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자신의 강론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는지 유리의 정신을 들게 만들려는 지는 몰라도 을소는 질문을 던졌고 그 말이 뭐가 뭔지 모르는 유리는 꿀 먹은 벙어리 마냥 잠자코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 비류 왕자님께서 이 팔조금법을 말씀해주실 수 있사옵니까?"

비류는 자신 있게 조선의 팔조금법을 읊어나갔다.

"첫째는 살인하는 자는 사형에 처한다. 둘째는 남을 다치게 하면 곡식으로 갚는다. 셋째는 도둑질하면 그 집의 남녀를 종으로 삼는다. 넷째는 소도(신성시되는 지역을 뜻함)를 훼손시키는 자는 가둔다. 다섯째는 예의를 잃은 자는 군인으로 보낸다. 여섯째는 일하지 않는 자는 나라를 위해 일을 시킨다. 일곱째는 간음하는 자는 태형(笞刑 때리는 형벌)에 처한다. 여덟째는 남을 속여 재물을 빼앗는 자는 만천하에 그 행위를 공개한다라고 들었사옵니다."

"그렇사옵니다. 그럼 왜 이런 팔조금법을 만들었는지 태자님이 말씀해 주십시오."

"그야 나라의 기강을 바로잡기 위함이 아니겠습니까?"

유리가 뭘 그런 걸 묻느냐는 듯 심드렁하게 답했다. 온조가 나서서 을소의 질문에 답했다.

"무릇 남을 해치는 자는 자신도 그만한 해를 입는다는 가르침을 주며 예의가 없는 자는 강제로라도 군에서 예의를 가르치며 또한 일하는 것에 대한 소중함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남을 속이거나 간음하는 행위는 곧 나라를 기만하는 행위니 이 또한 법으로 다스리는 것입니다."

사실 유리의 말과 별 차이가 없었고 온조는 그것을 좀 더 멋지게 풀어 말한 것뿐이었다. 온조의 마음속에는 '네가 태자라지만 이런 걸 알아?'란 우월감이 담겨있을 뿐이었다. 유리는 이를 눈치채고선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왜 법이 팔조밖에 없는 것이옵니까? 한 팔십조 금법쯤으로 만들면 좀 더 상세해질 것 아니오."

유리의 말은 비류와 온조를 노린 농담이었지만 비류와 온조는 유리가 정말로 뭘 몰라서 하는 말인 줄 알고 속으로 비웃음을 금치 못했다.

"그야 태자님께서 천자가 되신 후에 법을 팔십 개로 늘이면 되지 않습니까?"

비꼬는 억양이 담긴 투로 비류가 대답했고 온조도 입가에 조소를 날리며 이에 동조하고 있었다. 협부는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이를 말리라는 뜻으로 을소를 쳐다보았으나 웬일인지 을소는 잔잔한 미소를 머금으며 이들의 언쟁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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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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