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목시계에 얽힌 추억

시간으로부터의 자유

등록 2003.05.28 18:46수정 2003.05.28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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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릿느릿 박철

나는 손목시계가 없다. 손목시계를 안 차고 다닌 지 10년이 넘었다. 시계를 안 차고 다니는 이유는 일단 시계가 없기 때문이지만 설령 시계가 있다고 해도 안 찬다. 시간에 구애받고 싶지 않아서이다. 시계를 안 차고 다녀도 시간이 궁금하면 얼마든지 알 수 있다. 교인 집을 방문해도 집집마다 벽시계가 걸려있으니, 따로 시계를 차고 다닐 필요가 없다.


손 전화에도 시간이 나오고, 자동차에도 현재시간이 나온다. 손목시계를 안 차고 다녀서 불편을 느낀 적은 거의 없다. 언제부터인가 내가 시계에 조종 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나의 삶을 규정하고 시간에 의해 철저하게 하루의 일과가 결정되고, 그렇게 반듯하게 사는 것이 꼭 바람직한 것인가? 나의 대답은 ‘아니오’였다.

그래서 손목시계를 안차고 다녔더니, 시계도 어디가고 없다. 그런 깨달음이 있기 전에 나는 시계의 노예였다. 1분1초를 정확히 따졌다. 시간약속은 ‘칼’이었다. 지금도 약속을 잘 지키는 편이다. 시간약속은 잘 지키는데 대신 시계는 잘 잃어버렸다. 무슨 물건이든지 잃어버리는데 도사다. 자동차열쇠, 결혼반지, 옷, 우산, 구두, 가방, 수첩, 지갑, 돈, 들고 다니는 건 다 잃어버린 경험이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그때는 우리 집이 읍내로 이사를 온 뒤였다. 우리 집 가정형편이 조금 나아졌다. 아버지가 가정에 복귀하시고 아버지 사업이 안정을 찾으면서 사는 형편도 수월해졌다. 그때 아버지가 시계장사를 하셨다. 손목시계와 벽걸이 시계를 취급하셨다.

그때 만해도 손목시계가 흔치 않던 시절이었다. 어른들이 손목시계를 차고 다니는 걸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나도 언제 어른이 되어서 시계를 차고 다닐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해보아야 소용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어느 날 아버지가 나를 부르셨다.

“철아, 오늘부터 열심히 공부해서 중학교에 장학생으로 들어가겠다고 약속하면 아버지가 너에게 손목시계를 하나 주겠다.”


아버지는 내 마음을 훤히 꿰뚫고 계셨다. 나는 아버지께 중학교에 꼭 장학생으로 들어갈 것을 약속하고 시계를 받았다. 일제 중고시계였다. 시계 줄을 줄여도 내 손목에 맞지 않아 스프링 줄로 바꿔주셨다.

“야, 이게 이래 뵈도 매딘 쟈팬이다. 귀한 것이니 조심해서 차라. 시간이 얼마나 잘 맞는지 모른다. 정말 좋은 것이다.”


나는 시계를 받아들고 너무나 감격했다. 오른손에 차 보았다가 왼손에 차보고, 시계 밥도 한 시간에 한번씩 주었다. 시계를 귀에 대면 ‘착칵 착칵’ 하는 소리가 어머니 자장가보다 듣기 좋았다. 시계를 차고 학교에 갔더니 애들 눈이 다 휘둥그레져서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나는 4학년 때까지 30리길을 통학하며 어디서 촌것이 읍내학교에 왔냐는 괄시를 받아왔었다.

손목시계를 차고 학교에 간 날부터 나의 신분은 수직으로 상승했다. 좋아서 잠이 안 왔다. 아버지께 시계를 선물 받은 지 며칠이 지나서였다. 동생들을 데리고 화천읍내 하나밖에 없는 놀이터에 가서 한참동안 놀았다. 저녁밥 먹을 시간이 되어서 집으로 가려고 하는데 동생이
“형 지금 몇 시야?” 하고 물었다.
“응...”하고 시계를 보았더니 내 손목에 차고 있던 시계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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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릿느릿 박철

순간 온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동생 둘과 함께 놀이터를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미끄럼틀을 타다 떨어 졌나 해서 그 부근을 찾아보아도 없고, 시소 옆을 찾아보아도 없고 아무데도 시계는 없었다.

그때부터 아버지의 화난 얼굴이 떠오르고 무섭게 호통을 치시는 아버지 모습이 오버랩 되면서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나는 시계만한 동그란 돌멩이를 셔츠 윗주머니에 넣고 핀 침을 꽂았다. 아버지가 ‘시계 어딨냐?’ 고 물어보시면 ‘여기 있다’ 고 둘러대려고 얕은꾀를 썼다.

동생 두 녀석에게는 절대 비밀을 지킬 것을 단단히 말해 두었다. “너희들 아버지께 말씀드리면 죽을 줄 알아!” 놀이터에서 돌아와 저녁밥을 먹었다.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질 않았다.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는데 누나가 대뜸 한다는 말이 “철아 지금 몇 시니?” 하고 시간을 묻는 것이었다.

예상치 못했던 일이 터지고 말았다. 내가 우물쭈물하면서 내 셔츠 윗주머니를 가리키며

“응, 여기 있어”
“지금 몇 시냐고?”
“응, 여기 있어.”


누나는 단번에 낌새를 알아채고

“너 시계 잃어버렸구나.”

내 얼굴은 홍당무가 되었다. 아버지께서

“그러면 네 주머니에 있는 건 뭐냐?”
“.....”
“뭐야?”
“돌멩이에요.


내가 돌멩이라고 하니까 아버지나 어머니는 화를 낼 수도 없고, 웃을 수도 없었던 모양이었다. 다행히 크게 야단을 맞지 않았다. 그러나 부모님은 그때 그 사건, 시계를 잃어버리고 윗주머니에 돌멩이를 넣고 핀 침으로 꼽아 시계가 있는 것처럼 위장했던 일을 툭하면 말씀하셨다. 친척들이 모인 자리에서 그 얘기는 단골 메뉴였다.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시고 74세의 어머니가 계신데, 요즘도 어머니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그때 있었던 얘기를 하신다. 지금 생각하면 웃고 말 옛날이야기지만, 그 사건으로 인해 나는 40년 가까이 놀림을 받아왔다. 그래서 손목시계에 유감이 남아 있는 것인가?

나는 손목시계를 차고 다니지 않는다. 시간이 절대로 나의 삶을 규정할 수 없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손목시계를 잃어버린 경험이 어쩌면 하느님이 너는 앞으로 시계를 차고 다니지 말라는 암시는 아니었을까?

시간으로부터 자유(自由)-
손목시계가 거추장스러우면 오늘부터 서랍에 넣어두고 다니시길 바란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여러분 마음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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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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