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탑을 아십니까?

[이철영의 전라도기행8]제주도 방사탑과 돌하르방

등록 2003.06.06 15:12수정 2003.06.27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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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이 정말로 아득한 옛날, 바다가 토해낸 벌건 불기둥이 해상으로 솟아올랐다가 부글부글 끓으며 바다 물에 식혀 자리잡은 곳일까. 용암은 굳어져 바위가 되고 숱한 바람의 시간을 가로질러간 다음 온갖 생명들이 다투어 번성하는 온화한 대지가 되었다.

북제주군 조천읍의 부대오름
북제주군 조천읍의 부대오름오창석
공항에 내려 첫발을 디디면 키가 큰 소철과 퉁방울 눈의 돌하르방이 낯선 섬나라의 향기를 맡으려고 코를 킁킁대는 뭍사람들을 반겨준다. 어쩌면 오랜 세월 그들에게는 지배나 착취의 이름이었을 영원한 이방인들을 ‘관광 제주’는 세련된 화사함으로 맞는다.


어쨌거나 그들만의 ‘섬’은 육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고유하고도 독특한 삶과 문화를 빚어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으로 방사탑(防邪塔)이 있다. 이는 자연부락에서 잡석을 이용하여 원뿔형, 사다리꼴 등으로 쌓아 올린 탑으로 윗쪽에는 ‘새 모양의 돌’ ‘사람형태의 석상’ ‘꼭대기에 나무새가 있는 장대’를 세우기도 한다.

현지에서는 이것들을 답, 탑, 거욱, 가마귓동산, 하르방, 걱대, 돌코냉이, 개 등으로 부르는데 ‘방사탑’은 현대에 와서 포괄적으로 정리한 공식 명칭이다.

북제주군 한경면 용수리의 방사탑
북제주군 한경면 용수리의 방사탑오창석
그 기능은 육지의 장승과 솟대처럼 액厄을 막고 마을의 수호신, 경계, 이정표 역할 등인데 해안에 있는 것은 독특하게 등대와 같은 쓰임새를 갖기도 한다. 대부분의 방사탑은 그 마을의 풍수적 의미를 따져 세워져 있다. 이를테면 마을 어느 한쪽의 지형이 허하다거나 불길한 기운이 미칠 것으로 판단되면 그 방향의 방위를 위해 세우는 것이다.

방사탑 위에 세운 새 모양의 돌
방사탑 위에 세운 새 모양의 돌오창석
제주시 이호동 ‘골왓마을’의 경우 허한 곳을 막아 액운을 없애고 마을 사람들의 안녕을 위해 북쪽 경작지에 4기, 남쪽에 1기를 세웠다. 북쪽의 탑 위에는 새 모양의 긴 돌을 세우고 남쪽의 돌탑에는 긴 나무를 세웠는데 꼭대기에는 나무로 새 모양을 만들어 붙였다.

마을의 북쪽은 지형이 험한 가운데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여 곧바로 북풍의 영향을 받는데,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어느날 갑자기 북풍이 불어 이전에는 없던 모래구릉이 형성된 뒤로 마을에 질병이 유행하고 재앙이 생기고 어디선가 불이 날아와 화재가 빈발했다. 그 뒤 재앙을 막기 위해 탑을 쌓았다고 한다.


또한 동쪽의 탑은 까마귀 모양의 나무를 깎아 서쪽의 구릉을 향하게 세워 놓았는데 이는 서쪽 구릉이 칼과 같은 형상이라 까마귀로 하여금 그것을 쪼아 날카로운 기운을 약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북쪽은 돼지를 묻어서 탑을 쌓고 새 모양의 돌을 세웠다. 그러나 마을을 수호하기 위한 이런 모든 노력은 4.3사건으로 마을이 황폐화되는 재난을 겪었지만 마을 사람들은 사건이 끝나자마자 가장 먼저 무너진 탑을 보수했다고 한다. 그들의 믿음은 그만큼 끈질긴 것이었다. 또 다른 지역의 탑에는 불 속에서도 견디는 강인함을 빌어 액을 막고자 탑 속에 솥을 집어넣었는가 하면 밥을 푸듯 마을에 부를 가져다 주기를 바라는 유감주술적 의미로 주걱을 함께 집어 넣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남제주군 대정읍 무릉리의 방사탑
남제주군 대정읍 무릉리의 방사탑오창석
돌, 바람, 여자가 많대서 삼다도라 불리는 제주의 별칭은 땅이 척박하여 산물이 적고, 풍해가 많고 갖가지 재난으로 남자들이 부족한 총체적 궁핍상의 표현이기도 할 터이다. 이런 어려움을 이겨내고 꿋꿋이 삶을 지켜온 제주 사람들에게 방사탑은 든든한 신앙적 의지처였으며 절실하고도 소박한 극복 의지의 표현인 듯하다.


남제주군 대정읍 보성리의 돌하르방
남제주군 대정읍 보성리의 돌하르방오창석
외부 사람들에게 제주의 대표적 상징물인 돌하르방 또한 방사탑과 유사한 상징적 의미를 갖고 있다. 제주의 장승이라 할 돌하르방은 성과 마을의 입구, 경계에 세워져 역시 수호신, 이정표, 경계의 기능을 하고, 자식 없는 육지 여자들이 돌부처와 석장승의 코를 떼어다 갈아 먹듯 돌하르방 또한 유감주술에 따른 기자습속의 대상이 되어 수난을 면치 못했다.

그러나 세월의 무게를 걸머지고 찬바람을 견디며 웅크린 돌하르방에서는 육지의 장승과 다른 애잔함이 느껴진다. 육지의 것이 해학적이거나 무서운 형상이라면 돌하르방은 웃는 표정인지 슬픈 표정인지 분간이 어렵거나 기력이 다하여 어깨 한 쪽이 무너져 내린 우리네 할아버지를 보는 듯한 연민을 자아내게 한다. 아니 방금 지나온 제주의 마을에서 만난 검게 그을리고 주름이 깊게 파인 할머니, 할아버지의 모습이라고나 할까.

답답한 도시 속에 갇혀 살아가는 이들에 있어서 제주는 자유롭게 날아가 며칠을 보낼 수 있는 파라다이스이다. 오름에 올라 바다를 호흡해 보고 시간이 남는다면 꼭 우도를 가볼 만 하다. 성산포에서 철선타고 20분 거리인 그곳의 산호사(산호모래) 해수욕장,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남태평양 같은 에메랄드 빛 바다, 가수 남진의 노랫말 처럼 그림 같은 집, 저 푸른 초원, 돌담, 끝없는 수평선이 너무도 시원하게 반긴다.

우도의 전원
우도의 전원오창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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