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인의 전우들/오른 쪽 첫 번째가 나의 아버지이종찬
"내 그때 생각을 하모 말도 꺼내기조차 무섭다 아이가. 아, 고지 꼭대기에서는 수류탄이 돌띠(돌멩이)맨치로 수없이 굴러 내리오제. 뒤에서는 무조건 돌격하라고 장교들이 총을 들이대제. 우짤끼고."
"그때 소대장들도 엄청나게 많이 죽었다 카더마는?"
"말도 마라. 데굴데굴 굴러 내려오는 수류탄을 발로 차다가 발목이 날아간 넘, 손으로 집어 던지다가 손목이 날아간 넘, 따발총에 맞아 죽는 넘… 어휴! 생각만 해도 응걸징(몸서리)이 다 난다카이."
그랬다. 아버지께서는 전투가 잠시 소강상태가 되면 서둘러 부상당한 사람들을 들것에 실어 나르기에 바빴다. 또한 전투 중에도 부상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전선에 투입된 적도 많았다. 그 중 가장 안타까웠던 일은 하반신과 팔다리가 모두 날라가고 없는 사람이 입만 살아서 살려달라고 애원할 때였다.
"안락사!"
"그래도 살아 있는 사람을 우째 쏩니꺼?"
"이 하사는 환자의 처절한 고통은 생각할 줄 몰라?"
"탕!"
그 뒤 마침내 휴전협정이 되고, 아버지께서는 그리운 고향으로 돌아올 수가 있었다. 하지만 전쟁에 대한 악몽은 고향으로 돌아온 뒤에도 계속되었다. 들판에서 쎄 빠지게(혀 빠지게) 일을 하다가도 문득문득 위생병! 위생병! 하는 소리가 환청으로 들리기도 했고, 수꿩이 호오오 호오오 하고 우는 소리가 위생병! 위생병! 하면서 아버지를 찾는 소리로 들리기도 했다.
"니 그 와중에서 우째 일기로 다 썼노? 그림까지 그려넣고."
"그래도 나는 행운아였다 아이가. 정말 운 좋게도 군의학교에 들어가서 훈련을 받고 의무하사가 되었으니까. 그라이 간이천막 속에 마련된 의무실에서 틈틈히 일기로 썼다 아이가. 내가 겪은 전쟁을 기록으로 남겨놓고 싶었거든."
나는 어릴 때 심심하면 장롱 깊숙히 넣어둔 아버지의 일기장을 꺼내 읽었다. 한국전쟁 당시 만년필로 쓴 아버지의 그 전쟁일기장을 말이다. 아버지의 전쟁일기장에는 군데 군데 전투를 하고 있는 그림까지 그려져 있었다. 또한 전쟁을 치르는 아버지의 두려운 마음이 환하게 드러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