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187

장일정 제왕비를 얻다. (4)

등록 2003.07.18 14:11수정 2003.07.18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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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대제의 무공을 얻었습니다."
"무, 무어라고? 과, 광, 광개토대제의 무공?"

"그렇습니다."
"세, 세상에…! 세상에 맙소사! 이런…! 이런…! 자, 잠시만…"


무슨 말을 하려는지 계속 더듬기만 하던 화담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난다는 듯 연신 가슴을 두들겼다.

"휴우…! 자, 자네 조금 전에 무어라 하였는가? 과, 광, 광개토대제의 무공을 얻었다고 하였는가?"

긴장해서 그러는지 아니면 놀래서 그러는지 계속 더듬는 화담을 본 이회옥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른 본 화담은 사실만 말하라는 듯 그의 눈을 빤히 들여다보며 다시 물었다.

"저, 정말 광개토대제의 무공이 맞는가?"
"맞습니다. 그런데 왜 그러시죠?"

"이런 세상에…! 그게 어떻게 거기에… 이, 이보게 여기서 이럴 것이 아니라 연공관에 다시 가보세."
"예? 거긴 왜요?"


"아, 아무 말도 하지말고 우선 연공관에 가 보세. 이런 세상에 거기에 대제의 안배가 있었다니… 세상에 맙소사! 거길 그렇게 드나들고도 어찌 그걸 몰랐을까?"

이회옥은 화담이 끄는 대로 끌려가면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곳에서 무공을 익히라고 해놓고는 정작 거기에 무엇이 있었는지를 모르는 듯하였기 때문이다.



"어라? 여기가 왜 이렇지? 이상하네요. 여기가 아니에요."
"무슨 소린가? 자네는 분명 이곳에서 무공을 익혔네."

"아니에요. 여기하고 비슷하긴 해도 절대 여긴 아니에요."
"그게 무슨… 으으음…!"

이회옥은 바뀐 연공관을 보고 어리둥절해하였다. 자신이 있던 곳과 흡사하긴 해도 절대 같은 곳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이 말에 화담은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 침음성을 터뜨렸다.

이곳은 제세활빈단원이 되기 위해 무공을 수련하는 곳이다.

그렇기에 십팔반 병기를 비롯한 제 병기들을 비치해두었고, 그 병장기들을 다룰 무공비급들을 모아둔 곳이다.

단원이 되기 위한 심사를 거친 자는 이곳에서 한 가지 병장기를 취할 수 있으며, 그에 맞는 무공을 익히도록 되어 있다.

지금껏 이 연공관에 든 사람들 모두는 반년을 넘기지 않고 나왔다. 선무곡은 선조들의 무공 가운데 강한 것들을 태반이나 잃어버렸기에 반년 이상 익힐 무공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회옥도 반년이면 나올 줄 알았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일 년이 넘고, 이 년이 다되도록 나오지 않자 혹시 잘못되었나 싶었다. 그러나 연공관을 열어보지는 않았다. 선조인 홍계관이 예언하기를 이회옥이 장차 선무곡을 위해 큰 일을 할 것이라 하였기에 그럴 리 없다 생각한 것이다.

그러다가 혹시 생긴 것과 달리 두뇌가 아둔한 것은 아닌가 싶었다. 그렇지 않고야 이렇게 오래 걸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심 기대가 컸기에 한때는 하나뿐인 손녀의 배필을 삼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었는데 이때 그런 생각을 접었다.

멍청이한테 손녀를 주고 싶어하는 할애비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순간 마음이 또 바뀌고 있었다. 광개토대제의 무공을 이었다면 선무곡 최고의 신랑감이라 생각한 것이다.

"이, 이보게."
"예?"

자신이 있던 연공관이 아닌지라 어리둥절해하던 이회옥은 화담의 부름에 고개를 돌렸다.

"자네에게 긴히 할 말이 있으니 노부를 따라오게."
"예!"

이회옥은 화담의 뒤를 따라 모처로 이동하였다. 그곳은 장차 선무곡의 운명을 바꿀 곳이었다.

* * *

"무천의방의 부원주이시오?"
"그렇소만… 야심한 시각에 여긴 어떻게? 그나저나 뉘신지요?"

오늘 따라 고된 일과를 지낸 장일정은 피곤에 지친 몸이었지만 황촉을 밝힌 채 붓을 놀리고 있었다.

이곳에 온 진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함이었다.

남의의 문하에 처음 들던 날, 그는 유대문과 왜문을 완전히 말살시키는 조건을 걸었다.

단란하던 의성장(醫聖莊)을 한순간에 완전히 박살내고 일족을 멸족시킨 그들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약속을 한 이상 지켜야 한다.

그러나 내공을 익힐 수 없는 몸이기에 독공을 익히기로 마음먹었다. 그 방법만이 그들을 말살시킬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천의방의 의원이 되기를 원했던 것이다.

생각대로 무천의방에는 독에 관한 많은 서책들이 많이 있었다. 독은 생명을 앗아가는 마물(魔物)이지만 때로는 기적을 일으키는 명약이 되기도 하기 때문에 수집된 것이었다.

그렇기에 속명신수를 비롯한 그의 휘하 의원들의 냉대와 괄시를 받으면서도 무천의방을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부방주가 된 직후에는 격무 때문에 그것들을 읽을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으나 최근 들어서야 간신히 짬을 낼 수 있게 되어 한참 독에 대한 공부를 하던 중이었다.

아무런 기척도 없이 나타난 방문객은 대략 삼십 정도 장한으로 가슴에는 황금빛 검을 움켜쥐고 있는 청룡이 수놓아져 있었다. 이는 내원에 기거하는 수뇌부를 호위하는 호위무사 가운데 하나라는 증표였다. 그렇기에 경계하지 않은 것이다.

"본인은 기린각 소속 호위무사이오. 지금 기린각에 급한 환자가 발생되었으니 같이 가주셔야겠소이다."
"기린각이요? 그렇다면 내원인데… 내원에 환자가 발생되었다면 당직사령실로 가셔야 하오. 소생도 의원이긴 하나 외원 담당이고 내원 담당은 따로 있소이다."

"알고 있소이다. 지금 당직사령실에서 오는 길이외다. 그런데 거긴 아무도 없더이다. 시비에게 물어보니 회식이 있어 자리를 모두 비웠다 하오. 내일 새벽이나 되어야 올 것 같다 하더이다."
"흠! 이상하네…? 당직사령실은 비는 법이 없거늘…"

"자자, 지금은 그런 걸 따질 시간이 없소이다. 그러니 어서 따라오십시오."
"험! 알겠소이다. 그럼 잠시만 기다리시오."

표정으로 미루어 화급을 다투는 환자가 발생되었다 판단한 장일정은 침통 등 의료기구를 챙겨들고는 기린각으로 향하였다.

방금 전 장한이 장일정의 집무실로 올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처소가 내원에 있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원주에게 불상사가 발생되었을 때 무천의방을 차질 없이 지휘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부원주가 된 직후부터 속명신수를 비롯하여 그의 측근들은 고의적으로 장일정을 괴롭히고 골탕 먹였다.

웬만하면 시들해질 법도 하건만 점점 더 강도가 강해졌다.

특히 사부와 사숙이 탕약과 침구로 천하제일이었던 북의와 남의라는 사실이 알려진 후에는 더욱 심해졌다.

화롱철신이 처음 무천의방을 만들었을 때 그는 초대 방주로 북의나 남의를 초빙하려 하였다. 무림천자성은 무엇이든 최고여야 한다는 생각에 여러 방면으로 알아본 결과 그들 둘만한 의술을 지닌 의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계획은 수포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 갑자기 둘 다 사라져 버리는 일이 발생되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천강성의가 원주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당시 그의 명성은 북의나 남의에 미칠 바가 못 되었기에 아예 거론조차 되지 않던 인물이었는데 졸지에 방주가 된 것이다.

때문에 천강성의는 늘 북의나 남의와 비교되곤 하였다. 물론 그들에 비하여 의술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평을 받았다.

이것 때문에 열등감을 느낀 그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북의나 남의를 찾았다. 자신의 의술이 더 뛰어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럴 기회는 없었다.

그러던 차에 부원주가 된 장일정이 북의와 남의의 공동제자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무천의방에는 묘한 소문이 돌았다.

속명신수와 마지막 관문을 겨룰 때 진정한 승자는 장일정이며, 방주는 절대 부방주 만한 의술이 없다는 것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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