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사랑채와 맞붙어 있는 누마루. 아래에는 황소 두 마리가 끌었다는 마차 바퀴가 탈색된 채 널부러져 있다.오창석
그러나 지금 ‘시집 갈 때 꽃가마 타고 들어가서 상여 타고 나온다’고 했을 만큼 규모와 위세가 컸던 류씨 가문도 이제는 시간의 퇴적 속에 스러지고 쇠락한 모습이 역력하기만 하다. 누마루 아래에는 소 두 마리가 끌었다는 거대한 수레바퀴가 창백하게 탈색된 채 널브러져 있고, 겨우 살림집 한 칸 건사하며 살고 있는 후손에게 운조루의 무게는 버겁게만 느껴진다.
저 들판도, 땀을 식혀주는 서늘한 바람도 옛날의 바람은 아닐 것이니, 영속하는 것이 없다 해서 서글퍼할 일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부귀영화를 얻고자 ‘금환락지’라는 신기루에 미혹된 이들을 떠올리며, 퇴락한 빛깔의 운조루 홍살문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세월의 허망함에 마음이 쓸쓸해진다.
근처 1~20분 거리에는 5대손 류제양과 교유한 매천 황현이 세거(世居)하였던 곳에 후학들이 세운 ‘매천사’가 있고, 백제유민들의 도일 길목이자 왜구, 왜병들이 경남지역에서 전라도로 넘어오는 관문이었던 석주관(성)과 그곳에서 왜병을 맞아 산화한 ‘석주관 칠의사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