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232

세상에 이럴 수가…! (1)

등록 2003.10.01 13:05수정 2003.10.01 13:43
0
원고료로 응원
7. 세상에 이럴 수가…!


"안 돼! 흐흑! 안 돼! 이렇게 죽으면 안 돼! 안 된다고…"
"흐흑! 흐흐흑! 이제 우린 어쩌라고… 흐흐흑!"


한참 꿈나라를 헤매다 여인들의 통곡소리에 눈을 뜬 이회옥은 여인들의 통곡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아마도 둘은 방옥두의 총애을 받던 연화부인과 수련부인일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평화롭던 태극목장을 풍비박산 낸 희대의 살인마 방옥두가 죽었다고 대성통곡을 하고 있으니 은근히 귀에 거슬린 난 것이다.

죄인이 국문 중일 때에는 부인이라 할지라도 면회가 허락되지 않는다. 그녀를 이용하여 도주를 획책하거나, 증거인멸을 지시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미 시신이 되었기에 특별히 규환동에 입동할 수 있도록 허락된 모양이었다.

"흐흐흑! 이렇게 죽어버리면 우린 어쩌라고… 흐흐흑!"
"아아앙! 이렇게 죽을 거면 말이나 하고 죽지… 아아아앙!"


두 여인의 계속된 오열에 이회옥은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그녀들에겐 하나뿐인 낭군일지 모르나 자신에겐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불공대천지원수이다.


따라서 노래를 부르며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은 심정인데 너무 구슬프게 우니까 짜증이 난 것이다. 하여 자리에서 일어나 시끄럽다고 소리를 지르려던 찰라였다.

"이놈, 이 나쁜 놈! 같이 살아만 주면 우리 옥아가 어디에 있는지 말해 준다고 해놓고서… 흐흐흑! 이렇게 죽어 버리면… 흐흐흑! 난 어쩌라고… 이놈! 어서 일어나 말해. 우리 옥아를 어디에 감춰뒀는지… 아아아아앙!"

"흐흑! 우리 정아는 어디에 있느냐. 이 나쁜 놈아! 흐흐흑!"
"……?"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이회옥은 여인들의 울음 섞인 소리를 듣는 순간 뭔가 사연이 있다는 생각에 그대로 멈췄다.

"이놈아! 너하고 살아만 주면 우리 옥아를… 흐흑! 우리 불쌍한 옥아를 어디에 감춰뒀는지 가르쳐준다고 해놓고서… 흐흑! 이렇게 죽어버리면 난 어쩌라고… 흐흑! 이 나쁜 놈아! 너 같은 놈을 위해 십 년이 다 되도록 밥하고 빨래하고… 어어엉! 그랬는데…"

"흐흑! 언니! 흐흐흑! 언니…!"
"흐흑! 아가씨! 어어어엉! 이제 우리 어떻게 해요? 흐흑! 옥아하고 정아를 이제 어디에서 찾아요? 흐흐흐흑!"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연화부인과 수련부인은 열녀로 소문났는데… 아닌가? 그리고 옥아는 누구고 정아는 또 누구야?'

이회옥이 어리둥절해 있는 동안에도 여인들의 울음 섞인 소리는 계속되고 있었다.

"어어엉! 옥아를 찾으려고 이 더러운 놈하고 살을 섞고 살았는데… 어어엉! 몸만 더럽히고 우리 옥아는… 흐흑! 우리 옥아는…"
"어어어엉! 언니! 어어어어엉!"

'무슨 소리야? 이제 대체 무슨 소리지?'

"어어어엉! 이 나쁜 놈아! 우리 옥아를 내놔! 내놓으란 말이야! 이 나쁜 놈아! 어어어엉! 내놔! 우리 옥아를… 이 나쁜 놈아!"

반 시진 가까이 여인의 울음 섞인 소리가 계속되는 동안 이회옥은 조금씩 조금씩 어떤 영문인지를 깨달아 가고 있었다.

듣자하니 방옥두는 두 여인의 자식인 옥아와 정아라는 아이들을 인질로 잡은 모양이었다. 그리고는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가르쳐주는 대가로 살을 섞고 살자는 소리를 한 모양이었다.

말이 대가지 다지고 보면 자식의 목숨을 담보로 한 협박이었다. 여인들은 아이들을 살려내기 위한 일념으로 조금의 애정도 없는 방옥두와 살을 섞고 살아온 모양이었다.

자식을 구하고자 몸을 버린 것이다. 참으로 위대한 모성애(母性愛)였다.

"아아앙! 이 나쁜 놈아… 이 나쁜 놈아… 아아아앙!"
"흐흐흑! 우리 정아가 어디 있는지 말해. 이 나쁜 놈아! 흐흑!"

"아앙! 이 놈! 이 나쁜 놈이 태극목장을 그렇게…"
"……!"

태극목장이라는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이회옥의 뇌는 하얗게 비워지고 있었다. 두 여인이 누군지 깨달은 것이다.


처참한 살육의 현장을 보고 잔뜩 겁을 먹은 곽영아와 이형경은 이를 피하기 위하여 본능적으로 도주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대흥안령산맥은 산이라고는 하지만 기암괴석이나 울창한 수림으로 가득한 곳이 아니라, 완만한 경사로 이루어진 초지(草地)의 연속인지라 시야가 탁 트인 곳이다.

하여 방옥두의 눈에 뜨이게 되었고, 색마기질이 발동한 그는 실컷 재미를 볼 수 있었다. 결국 원치 않는 사내에 의하여 능욕 당한 두 여인은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슬픔에 잠겼다.

낭군이 아닌 외간남자에게 정절을 잃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사이 좋은 시누이와 올케 사이였던 두 여인은 한 사내에게 모든 것을 잃었다.

아랫도리에서 느껴지는 난행(亂行)의 후유증은 결코 꿈이 아니라는 증거였다. 있어서는 안 될, 아니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지만 현실인 것이다.

정절을 잃은 슬픔에 잠겨 한참을 그렇게 오열하던 두 여인은 이미 넝마가 다 되어 버린 의복 속을 뒤적였다.

해동 사람들의 풍습에 따라 지녔던 은장도를 찾는 것이다.

정절을 지키라는 의미에서 지니고 있었지만 설마 그것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하는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전혀 상상도 못했기에 여인들의 손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몸이 더럽혀졌으니 자진하는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말 하는 현실이 너무나 한스러워 서로를 부둥켜안고 서럽게 울던 두 여인은 어느 순간 오열을 멈췄다.

세상을 뜰 시간이 되었단 판단한 것이다. 하여 은장도를 목에 대고 힘을 주려던 찰라였다.

삶의 모든 의미를 빼앗아 간 원흉인 방옥두의 음성이 들렸다.

"크크! 아이들은 살리고 싶지 않은가 보지?"
"……!"

이 소리에 두 여인은 그대로 멈출 수밖에 없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경찰까지 출동한 대학가... '퇴진 국민투표' 제지에 밤샘농성 경찰까지 출동한 대학가... '퇴진 국민투표' 제지에 밤샘농성
  2. 2 낙동강에 푸른빛 독, 악취... 이거 정말 재난입니다 낙동강에 푸른빛 독, 악취... 이거 정말 재난입니다
  3. 3 윤석열 정부가 싫어한 영화... 시민들 후원금이 향한 곳 윤석열 정부가 싫어한 영화... 시민들 후원금이 향한 곳
  4. 4 명태균, 가이드라인 제시? "계좌 추적하면 금방 해결" 명태균, 가이드라인 제시? "계좌 추적하면 금방 해결"
  5. 5 [단독] "가면 뒈진다" 명태균, "청와대 터 흉지" 글도 써 [단독] "가면 뒈진다" 명태균, "청와대 터 흉지" 글도 써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