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280

남파 간세 사건 (8)

등록 2004.01.30 14:03수정 2004.01.30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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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녕, 거짓 없는 대답을 하겠느냐고 물었네.”
“아이고 대인! 소인을 어찌 보고… 소인이 어찌 하늘같으신 대인 앞에서 거짓을 아뢰겠습니까? 말씀만 하십시오. 죽으라면 죽는시늉이라도 확 내겠습니다요.”

“좋네! 금대준이 본성에 억류되어 있다는 것을 아는가?”
“예? 아, 그 얘기요? 하하! 대인께서도 헛소문을 들으신 모양입니다요. 그렇지 않아도 아까 효재라는 놈으로부터 그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만 그게 어찌 가당키나 한 일이겠습니까? 금대준이가 주석교에서 파견한 간세라면 소인 역시 그렇다는 이야기인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겠습니까?”


“그으래? 좋네, 그렇다면 이걸 한번 읽어보게.”
“예? 그, 그게 뭡니까?”

“본성 비문당주가 친필로 보낸 극비문서이네.”
“그걸 어찌 소인같이 하찮은…?”

“보라면 보게.”
“예? 아, 예.”

방조선의 안색이 하얗게 질린 것은 허보두가 넘긴 서찰을 펼친 직후였다. 그 안의 내용대로라면 선무삼의의 모든 세력이 주석교에 의하여 조종당하는 꼭두각시이며, 무림천자성의 기밀을 빼내온 간세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 어떻게 이, 이런 일이…? 이, 이건 말도 안 돼! 어, 어르신 이,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아시잖습니까?”
“뭘? 본좌가 뭘 안다고 하는 거지? 그 문서는 본성 비문당주가 친필로 쓴 것이고, 전면에 그어진 붉은 사선 세 개는 극비 중에서도 극비문서라는 표식이야. 자넨 본성 당주께서 이런 장난을 즐겨하신다 생각하는가?”


“아, 아닙니다. 소인이 어찌 당주님을… 소인의 말씀은 하늘이 무너져도 이것만은 사실이 아닌 것이라 생각하기에…”
“흠! 정녕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하는가?”

“그, 그럼요. 금대준이는 어릴 적부터 소인이 키운… 정말 그럴 리가 없습니다요. 어르신! 정말 믿어 주십시오.”
“좋네, 그간의 안면도 있고 하니 자네를 한번 믿어보지.”
“휴우…! 가, 감사합니다.”


방조선을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주르르 흘러내림을 느낌과 동시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것은 다 용서가 되어도 주석교의 간세라면 이야기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곡도들이 항의하는 것 따위는 전혀 두렵지 않다.

막강한 금력 혹은 그보다도 훨씬 더 막강한 배경인 무림천자성의 비호(庇護)로 얼마든지 빠져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석교의 간세라는 것이 확인되면 무림천자성으로부터 버림을 당하게 될 것이고, 그 다음엔 분노한 곡도들이 던진 돌에 처참하게 맞아죽는 수가 있다.

물론 삼의 가운데 최고라 자부하던 의방의 모든 것을 한꺼번에 잃게 될 것이다. 그리고는 영원히 사서에 남게 될 것이다.

대(代)가 끊길 터이니 누구하나 수치스럽게 여길만한 후손도 남지 않겠지만 두고두고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될 것이다.

아마도 왜문과 선무곡을 병탄시켰던 이완용보다도 더 욕을 먹으면 먹었지 덜 먹지는 않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왜 그렇게 명성을 쌓아 올리려고 애를 썼던가? 지금 이 자리에 오르기 위하여 수많은 음모의 밤을 지냈고, 수많은 헛소리를 하였으며, 수십 번도 더 얼굴에 철판을 뒤집어쓰고 뻔뻔스럽게 굴었다. 그것은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함만은 아니었다.

자신의 말 한마디에 부화뇌동(附和雷同)하는 사람들을 보며 권력을 마음껏 향유(享有)하고픈 욕망 때문만도 아니었다.

대대손손 잘먹고 잘살게 하기 위함이었고, 수백 년 후까지도 자랑스런 가문의 영광이 미치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산산이 조각날 듯한 상황이다.

그러니 어찌 식은땀이 흐르지 않겠는가! 하여 아주 힘든 일을 한 사람 마냥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있었던 것이다.

“대신…”
“……!”

방조선의 안색은 허보두가 잠시 말을 끊은 사이에 또 다시 창백해졌다. 하긴 이 정도로 하고 끝난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던 상황이다. 하여 뭔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함과 동시에 허보두의 입이 열렸던 것이다.

“대, 대신. 뭐, 뭐, 뭐, 뭡니까?”

방조선은 말을 더듬으며 머릿속에서 흘러나와 이마를 가로지른 뒤, 막 눈꺼풀 위에서 눈으로 떨어지려던 식은땀을 훔쳐냈다.

“자네, 우리 분타에서 좀 지내야겠네.”
“예에…?”

말은 분타에서 지내라는 것이지만 실상은 사실이 확인 될 때까지 감금될 것이라는 것은 짐작 못하는 방조선이 아니었다.

아무리 석두(石頭)라고는 하지만 제 신상에 이롭지 못한 것에는 유난히도 민감하기 때문이다.

“왜? 싫은가? 싫다면 어쩔 수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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