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4년 만에 처음 먹은 딸기 이야기

박철의 <느릿느릿 이야기> 냉이와 딸기에 관한 추억

등록 2004.02.13 07:17수정 2004.02.13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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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지나 냉이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입춘지나 냉이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느릿느릿 박철
입춘을 지나 봄으로 가는 길목, 햇볕이 좋습니다. 우리집 다롱이가 햇볕이 좋아 해바라기를 하면서 꾸벅꾸벅 졸고 있습니다. 이럴 때에는 호미 들고 들에 나가 냉이나 달래를 캐기에 좋은 날씨인 것 같습니다.


우리 내외는 나물 뜯으러 참 많이 다녔습니다. 농촌목회가 그렇습니다. 교인들이야 아침에 밥만 먹으면 들에 나가서 진종일 일하다 해거름이 되어 들어오니 농번기 때는 사람 구경하기도 힘듭니다. 집집마다 쫓아다니며 일을 거들어 줄 수 없는 일이고….

겨울지나 봄이 오면 겨우내 얼었던 땅이 풀리고 여린 싹들이 땅을 비집고 나옵니다. 양지바른 곳에는 들나물이 많습니다. 제초제를 치지 않고 두엄을 주어 땅이 허벅진 밭에는 나물이 지천입니다. 강원도 정선에서 목회하던 시절, 아내와 나는 소쿠리를 들고 들로 나물 캐러 다녔습니다. 아내와 나는 안경을 썼는데 생김새가 뻔한 나물을 찾지 못해 여기저기 헤매다 보면 시간만 갑니다.

냉이는 국을 끓여 먹어도 좋고, 된장찌개에 넣어도 좋고, 된장이나 고추장에 무쳐 먹어도 좋습니다. 달래는 고추장에 설탕을 조금 넣고 식초 한방을 떨어뜨려 무쳐먹으면 입안 전체가 달래 향으로 가득합니다. 씀바귀는 쓴 맛이 강하기 때문에 끓인 물에 살짝 데치든지, 아니면 물에 하루정도 담가 두었다 초고추장에 무쳐 먹으면 밥맛도 나고 속병에도 좋다고 합니다.

호미 한 자루를 들고 들로 나갑니다. 비교적 냉이는 흔한 편이라 밥상에서 최고로 대접받는 봄나물은 역시 달래입니다. 아내와 나는 마을 동구 밖 서낭당 부근에 냉이가 많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몰래 잠입하여 달래를 캡니다. 죽어서 넘어진 나무 등걸 밑이나 큰 돌 사이로 달래가 빼곡합니다. 정신없이 달래를 캐는데, 사람들 지나가고 소리가 들립니다.

그러면 나는 창피해서 얼른 숨어버립니다. 잽싸게 나무 뒤에 숨거나, 아니면 서낭당 돌담에 납작 엎드렸다가 사람이 다 지나가면 또 달래를 캡니다. 아내가 큰아들 ‘아딧줄’을 임신해 배가 남산만한데 나물 캐는 재미에 푹 빠져있었습니다. 달래를 한 소쿠리 캐 가지고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아무것도 부러울 것이 없었습니다.


우리집 나물 얘기는 무궁무진합니다. 목사가 교인들 집 심방이나 열심히 다닐 것이지, 칠칠치 못하게 무슨 나물이냐고 타박할지도 모릅니다. 나는 낚시질도 좋아하는데, 낚시질은 교인들 보기에도 그렇고 해서 거의 다니질 못했지만 나물 뜯으러는 참 많이 다녔습니다.

우리 내외가 남양에서 살 때에도 아침밥 든든히 먹고 점심 도시락 챙겨서 동네 산으로 산나물을 뜯으러 다녔습니다. 나물을 잘 몰라서 주로 취나물이나 고사리를 뜯는데, 이산 저산 헤매고 나물을 뜯다보면 점심밥 먹는 시간도 아깝고 금방 저녁때가 됩니다.


아내가 냉이를 캡니다. 오늘 저녁은 냉이국을 먹을 수 있겠지요.
아내가 냉이를 캡니다. 오늘 저녁은 냉이국을 먹을 수 있겠지요.느릿느릿 박철
10년 전인가 우리가 남양에서 살 때였습니다. 동일방직 사건으로 유명하신 조화순 목사님이 별안간 찾아오셔서 저녁 밥상을 차리게 되었습니다. 너무 급작스러운 방문이라 찬거리를 살 시간도 없고 해서, 그동안 뜯었던 나물 반찬으로 아내가 저녁상을 차렸는데 나물만 총 아홉 가지였습니다.

조화순 목사님이 그걸 보시고 감사 기도를 했는데, 장장 10분 동안 기도를 하지 뭡니까? 저녁밥을 놓고 그렇게 진지하게 기도하는 분은 처음 보았습니다. 그 기도에 얼마나 위로를 받았는지 모릅니다. 오늘 밖에 나가보니 나무마다 물이 오르고 여린 싹들이 따뜻한 봄볕에 기지개를 펴고 있습니다. 지난해 아내가 느릿느릿 홈페이지 ‘가족이야기’에 올린 글을 보고 마음이 짠해진 적이 있었습니다.

봄볕이 너무 좋아 방에만 있으면 봄볕에 너무 미안할 것 같아 밖으로 나왔다. 시골에 살면서 봄나물 한번 구경 못했다고 식구들이 욕 할 듯도 싶어 호미와 바구니를 챙겨들고 마당가로 나섰다. 운동장가라 냉이라면 꽤 있을 듯싶었는데 막상 캐려고 보니 그렇지도 않았다.

그나마 여기저기 드문드문 있는 냉이를 캐는데 냉이인지, 냉이 비슷한 것인지 몰라 코에 대고 냄새를 맡아 가면서 냉이를 캔다. 시골에서 산 경력이 얼만데 아직도 이러나 싶어 나 자신이 조금 한심스럽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한 바구니를 캤다. 냉이를 씻으면서 뿌리가 잘라진 냉이를 보니 첫 목회지였던 정선, 특히 정선제일교회 P목사님 사모님 생각이 난다.

정선제일교회 P목사님 댁은 정선읍에 나오는 모든 목회자 부부의 쉼터였다. 후덕한 모습의 사모님의 그 친절함과 자연스러움은 첫 목회나간 전도사 아내에겐 사모의 모델이었다. 자상한 큰 언니처럼 이것저것 챙겨주시고 자신의 첫 목회지 이야기를 해주시며 작은 교회의 어려움을 이해하시고 격려해주시는 사모님이 너무 고마워서 나도 무엇인가를 해드리고 싶었다.

아내가 제일 좋아하는 딸기.
아내가 제일 좋아하는 딸기.느릿느릿 박철
그러나 나는 가진 게 너무 없었고 목사님 댁에는 부족한 것이 없어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교회 교우가 가져다주신 냉이가 눈에 띠였다. ‘아! 저거구나, 저거라면 나도 할 수 있지’ 그 생각이 미치자 전화를 드렸다.

“사모님, 냉이 잡수세요?”
“그럼. 먹지!”
“다음에 제가 냉이 캐다 드릴께요.”

전화를 끊고 들로 나가 냉이를 큰 소쿠리로 한 소쿠리를 캤다. 정성스럽게 씻고 또 씻어서 냉이 선별 작업을 시작했다. 뿌리가 떨어져 나간 것은 빼고, 뿌리에 검은 점 박힌 것도 빼고, 잎이 잘못된 것도, 작은 것도…. 다 빼고 제대로 된 모양의 냉이만을 고르니 작은 바구니로 하나밖에 안되었다. 그렇지만 내가 존경하는 사모님께 흠이 있는 냉이를 갖다 드릴 수는 없었다.

다음날 남편이 정선읍에 가는 편에 냉이를 보내 드렸더니 사모님이 아주 고마워하시더란다. 그 후 냉이를 씻을 때마다 그 사모님 생각이 많이 난다. 지나가는 말로 딸기가 먹고 싶다고 했는데, 작은 교회의 어려운 형편을 아시고 월요일이면 내가 온다고 월요일마다 딸기를 준비해 놓고 기다리셨다는 사모님, 그 사모님이 많이 보고 싶다. 그동안 언제나 고마운 마음만 갖고 있었던 그 사모님, 오늘은 그 사모님께 전화라도 드려야겠다.


그후 아내가 P목사님 사모님께 전화를 했더니 냉이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했답니다. 그 때가 생각납니다. 아내의 부탁으로 내가 자전거를 타고 가, 갖다 드렸었습니다. 그 다음에 만났을 때, 사모님은 "이렇게 깨끗하게 다듬은 냉이는 처음 보신다"면서 활짝 웃고는 장에 나가 비싼 딸기를 서너 근 사주셨습니다.

자전거 꽁무니에 딸기를 달아매고 신이 나서 자전거 페달을 밟았습니다. 아내는 그걸 먹으면서 울었습니다. 정선에서 4년 동안 목회하면서 처음 먹어 본 딸기였습니다. 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기억하고 느릿느릿 홈에 올려준 아내에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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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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