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산대놀이 8

땡추들

등록 2004.03.04 17:23수정 2004.03.04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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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귀 사내는 뭐가 대수냐는 듯 큰 소리로 말했다.

"저런 중놈이 뭐가 두렵다고 그러는 거요? 형님은 그냥 구경만 하슈!"


사마귀 사내가 잽싸게 칼을 들고 혜천에게로 뛰어가는 순간 옆에 있던 건장한 젊은 스님이 눈을 한번 끔적이더니 앞으로 내달렸다.

"아앗!"

사마귀 사내와 젊은 스님이 한번 엇갈리더니 칼이 공중으로 솟구치며 땅에 떨어졌고 사마귀사내 역시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끔적아, 그러지 말고 좀 살살 말로 달래거라."

혜천의 말에 '끔적이'라고 불린 젊은 스님은 사마귀 사내에게 잡고 일어나란 의미로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사마귀 사내는 이를 잡지 않고 엉덩이를 끌며 뒤로 허둥지둥 물러나기 바빴다.


"저 놈은 대체 뭡니까? 너무 빨라 어떤 수에 당했는지도 모를 지경이오."

옴 땡추가 혀를 끌끌 차며 사마귀 사내를 나무랐다.


"그래 길래 내가 뭐라고 했느냐. 저 놈들이 어떤 놈들인지는 내가 겪어봐서 안다."

그러니까 약 한달 전, 옴 땡추와 콧수염 땡추, 혹 땡추가 이름 없는 암자에 기거하고 있는 혜천스님을 찾아간 것이 그들의 첫 만남이었다.

"비록 머리 깎고 승복을 입었다 하더라도 속세의 사람임을 알아볼 눈은 있다네. 작은 암자에 양식도 넉넉하지 않으니 그만 내려가게나."

하산을 종용하는 혜천스님의 말에 옴 땡추는 버티기로 일관했다.

"저희를 받아들이지 않으셔도 여기 계속 있을 것입니다. 양식이야 저희들이 알아서 할 터이옵니다."

"맘대로들 하게나."

혜천스님은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묵상에만 전념할 뿐이었다. 혜천스님의 수발은 젊은 스님인 끔적이와 동자승이 들고 있었는데 이들 역시 수행을 닦음에 있어 게으르지 않았다. 땡추들은 암자 옆에 겨우 이슬이나 막을 만한 움막을 지어 놓더니 처음에는 제법 묵상도 하고 불경도 읊는 등 그럴 듯하게 수행하는 흉내를 내었다.

하지만 사흘이 지나자 그곳에서 먹고 자고 하는 생활만을 반복하며 심지어는 꿩, 토끼 등을 잡아다가 암자 옆에서 구워먹기까지 했다. 혜천스님은 아무려면 어떠냐는 식으로 상관하지 않았지만 끔적이는 기분 나쁘다는 인상을 노골적으로 지으며 그들을 노려보곤 했다.

"거 밭일하느라 수고가 많던데 같이 듭시다."

가끔씩 어디서 구하는지 해가 진 후에는 술까지 홀짝거리는 땡추들의 말에 끔적이는 불쾌하다는 표정과 태도만 보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새파란 놈이 버르장머리가 없구먼. 저런 놈은 이 어르신의 매운 주먹맛을 봐야 정신을 차리지."

혹 땡추가 시비를 걸기 위해 술에 크게 취해 비틀거리며 일어서자 콧수염 땡추가 이를 말렸다.

"야 이놈아! 명색이 중이 되어 절간에서 술하고 고기를 쳐 먹으니 그런 거 아니냐!"

"아! 형님! 어디 우리가 원래 중이오! 이래봬도 한양에서 이필호라고 하면…."

혹 땡추의 말이 더 이어지려는 찰나 옴 땡추가 벌떡 일어서더니 혹 땡추의 뺨을 사정없이 갈겨대었다.

"야 이놈아! 술 쳐 먹고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냐! 냉큼 들어가 잠이나 자거라!"

끔적이는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지만 더 이상은 알 수가 없었고 한동안은 땡추들의 술판이 벌어지지 않았다. 그러기를 또 며칠이 지난 후 땡추들은 혜천스님이 묵상을 하고 있는 면전에서 고기를 구우며 대낮부터 술판을 벌였다.

때마침 끔적이와 동자승은 밭일을 나간 뒤라 그들에게는 거리낄 것도 없었다. 술이 거나하게 취한 그들은 노래를 부르고 소리를 지르며 의도적으로 혜천스님의 심기를 자극했지만 그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아우들아! 내 재미있는 얘기를 해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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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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