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속하의 아우가 무림천자성이 점령한 월빙보로 보내지게 되었습니다. 아시다시피 그곳은 극도로 위험한 지역입니다. 속하는 그곳에 제자들을 파견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거품을 물며 헛소리를 지껄이던 저놈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습니다.”
“맞습니다. 저놈이 나서서 그러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빨리 결정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래서 어쩌려고요?”
“속하들도 저놈을 징계할 수 있도록…!”
단원들은 모두 같은 생각이라는 듯 일제히 한 발짝씩 앞으로 나섰다. 그들 모두는 병장기의 손잡이를 쥐고 있었다. 그냥 두면 조잡재는 오늘 중으로 피 떡이 되어 숨질 것이 뻔해 보였다. 이를 본 일타홍은 손가락 하나를 들어 좌우로 흔들며 입을 열었다.
“본 군사에게도 생각이 있으니 일단 물러서세요.”
“…?”
단원들은 일타홍의 말에 멈칫하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저 쥐새끼 같은 놈을 죽이는 것은 손바닥을 뒤집는 것보다 쉬운 일이에요. 그 동안 저놈과 일당들에 의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으며, 얼마나 많은 불편 부당한 일을 당했는지 설마 모른다고는 않겠지요?”
“…?”
단원들의 일타홍의 의도를 몰라 섣부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자칫 조잡재를 징계할 기회를 잃을까 싶었던 것이다. 그런 그들을 한번 훑어본 일타홍은 다시 입을 열었다.
“단주께서 명령하시길 저 쥐새끼에겐 개과천선의 기회조차 주지말고 효시하라 하셨어요.”
“아!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속하게 저놈의 목을 벨 수 있는 기회를 주십시오. 단 칼에 베어 버리겠습니다.”
대원들 가운데 하나가 듣던 중 반가운 소리라는 듯 검을 뽑아들며 앞으로 나섰다. 이 모습을 본 조잡재의 하의는 축축하게 젖어들고 있었다. 겁에 질려 소변을 지려버린 것이다.
일타홍은 앞으로 나서는 단원에게 멈추라는 손짓을 한 뒤 다시 입을 열었다.
“본 군사 역시 저놈이 살 가치조차 없는 쥐새끼 같은 놈이라는 데에 이견(異見)이 없어요. 따라서 지금 당장이라도 죽여 없애 단주의 명에 따라야겠지만 본녀에겐 다른 복안이 있어요.”
“무슨…?”
단원들은 영리하기로 이름난 일타홍에게 어떤 기발한 착상이 있는지 궁금하다는 듯 일제히 시선을 모았다.
“본 군사는 월빙보 치안을 위해 파견될 제자 명단에 저놈의 일가친척들을 모조리 포함시킬 계획이에요. 제자들 중 저놈과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는 자들은 모조리 보낼 거예요.”
“저어, 그게 가능한가요? 파견될 제자들은 이미 모두 정해진 것으로 아는데…?”
아우가 포함되어 있다면서 가장 먼저 나섰던 단원의 말에 일타홍은 복면을 벗었다.
“호호! 본녀가 누군지 잊었나요?”
일타홍이 교소(嬌笑)를 터뜨리는 순간 조잡재의 입에서 헛바람이 흘러나왔다.
“아니? 너, 너는 다향루의…? 네, 네 아비는 호법인데…?”
“호호! 본녀를 알아보는군. 그렇다면 이제 이곳을 살아나갈 생각은 버려야 한다는 것도 알겠지?”
“…!”
조잡재는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을 깨달았다. 설사 얼굴을 보았다 하더라도 아는 척을 하지 말았어야 하였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으므로 이제 죽은목숨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일타홍은 조잡재를 경멸의 눈초리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저놈의 말대로 아버님께서 요직에 계시니 파견될 제자들의 명단을 바꾸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닌 듯싶어요.”
“…”
“최근 전서구들이 분주하게 오간 것을 알 거예요. 그게 왜 왔다갔는지 아나요? 호호! 모르는 게 당연하지요. 자, 들어봐요.”
단원들은 물론 조잡재까지 자신을 바라보자 일타홍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단주께서 이르시길 악인록에 기록된 자들을 진보, 개혁, 보수, 수구로 다시 분류하라 하셨어요. 그래서 다시 분류를 했지요. 그 결과가 어찌 되었는지 궁금하지 않나요?”
“궁금합니다. 말씀해 주십시오.”
“호호! 악인록에 기록된 자 가운데 구 할 이상이 수구로 분류되더군요. 그건 우리가 제대로 조사를 했다는 걸 의미해요.”
“…?”
“본 군사는 이번 분류를 하는 동안 수구들의 가족 사항까지 파악해 보았어요. 그래서 이번 월빙보 치안 유지를 위한 제자 명단에 그들 전원이 포함되도록 할 거예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이미 결정되었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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