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산대놀이 25

좌충우돌 백포교

등록 2004.04.06 17:19수정 2004.04.06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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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도둑이 자주 출몰하느냐고 물었네."

우락부락한 사내는 백위길의 눈을 마주보더니 느닷없이 웃음을 터트렸다.


"성균관 유생이 나라의 큰 도적이 되면 이들을 도운 반촌인들도 도적이 될 수 있겠지!"

우락부락한 사내는 그 말만을 남긴 채 냉큼 자리를 떠나 버렸다. 백위길도 더이상 그 사내에게 물어본다는 것이 무리임을 알고 반촌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도둑에 대한 얘기를 캐묻고 다녔다.

"이보시오."

한 반촌인이 주위 눈치를 살펴보며 백위길을 시선을 끌고자 고기 뭉치를 흔들어대며 그를 불렀다. 백위길이 가까이 다가가자 그 반촌인은 속삭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도둑에 대해 아는 얘기가 있소. 여기서는 곤란하니 모르는 척 날 따라오시오."


백위길로서는 캄캄한 밤중에 불빛을 본 것만큼이나 반가운 소리였다. 앞 뒤 가릴 것도 없이 백위길은 재빨리 앞서가는 반촌인을 뒤따라갔고 그가 안내한 곳은 외진 곳에 위치한 헛간이었다.

"이곳이외다. 어두우니 조심하시오."


백위길은 두근거리는 심정으로 헛간에 한발을 들여놓으며 가슴이 벅차 올랐다. 반촌에 가서 도둑을 잡아왔다면 이순보도 백위길을 다시 볼 것이고, 포장인 박춘호가 포도대장에게 공이 크다며 보고를 올릴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순간 백위길은 어두운 헛간에서 불이 번쩍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그대로 까무룩 정신을 잃고 말았다.

"깨어났나? 포졸 나부랭이?"

백위길은 머리가 욱신거리는 것을 느끼며 부스스 허리를 일으켜 세웠다. 백위길의 손발은 묶여 있었으며 그의 눈 앞에는 방금전 자신을 안내한 반촌인과 처음 만난 우락부락한 사내가 서 있었다.

"여기가 어딘지 알고 그렇게 설쳐대는 건가? 우리한테 걸려든 게 아마 포도청으로서는 천만다행일지도 모르겠군. 반촌에 포교가 설치고 다닌 다는 걸 유생들이 알았다면 상소를 올리고 권당(捲堂 : 성균관 유생들의 동맹휴학)으로 한바탕 난리가 나면서 포도대장부터 박살이 났을 텐데 말이지…."

백위길은 우락부락한 사내가 하는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고 한편으로는 괘씸한 생각이 앞섰다.

"감히 상것들이 내가 포교인 줄 알면서도 이러는 건가!"

우락부락한 사내는 한바탕 크게 웃더니 칼을 쑥 뽑아들어 백위길의 목에 겨누었다.

"잘 듣게나 이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아. 여기서는 자네 같은 포교 따위가 죽어 시체로 나뒹군다 해도 아무도 관심조차 가지지 않을 걸세. 하지만 우리가 어디 소를 잡지 사람을 잡나? 오늘은 이만 고이 보내줄 터이니 다음부터는 반촌에 얼씬도 하지 말게!"

우락부락한 사내는 백위길의 목에 겨누었던 칼을 내려 재빨리 묶인 것을 풀어주었는데, 그 손놀림이 매우 날렵했다. 백위길로서는 간담이 서늘한 일이었지만 그래도 한줄기 미련만은 버리지 못했고 설마 저들이 포교인 자신을 해치려들겠나 싶은 마음에 크게 소리쳤다.

"너희들이 바로 도적인가 보구나!"

우락부락한 사내는 또 다시 껄껄 웃으며 칼을 한 번 과장되고 멋스럽게 휘두른 후 칼집에 넣었다.

"이보게나. 반촌 사람들은 도둑질 따위는 하지 않아도 넉넉하게 먹고 살 수 있다네. 어디서 헛된 풍월을 들었는지는 몰라도 여긴 도둑 따윈 없다네. 반촌에서 다시 그런 소리를 해대고 다니면 그땐 정말 소 대가리와 함께 푸줏간에 내 걸릴 수도 있으니 조심하게나. 인연이 닿으면 다음에 좋게 봅세."

백위길은 허탈한 표정으로 유유히 떠나는 반촌인들의 뒷모습을 바라 볼 수밖에 없었다. 머리에서 부풀어오르고 있는 주먹만한 혹이 행동을 부자연스럽게 만들고 있어 더이상은 힘들다고 백위길은 속으로 자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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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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