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암 최익현의 유허비오창석
면암 최익현은 1876년 일본과의 강화도조약 체결에 반대했다가 이곳에서 3년여 귀양살이를 했으며, 이외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유배'라는 형벌의 시간을 보냈다. 이곳이 귀양 온 이들에게 형벌의 공간이었듯이 여기에 살던 사람들에게도 그 의미는 크게 다르지 않았을 성싶다.
이곳은 신석기 시대 유적까지 발견되는 오랜 역사를 가졌지만, 역사의 격변기마다 강제 이주와 입도(入島)가 반복되는 수난을 겪었다. 그런 고립과 단절의 역사는 많은 생채기를 남겼다.
80년대까지 조기를 중심으로 하는 '흑산도 파시'가 열렸을 때만 해도 이곳은 풍요로웠다고 한다. 많을 때는 2천여척의 배들이 예리항에 정박했다고 하니 '개들이 입에 돈을 물고 다닐' 정도로, 불야성의 항구에는 선원과 술집과 아가씨들로 넘쳐 났다. 영화 주제가였던 이미자의 '흑산도 아가씨'(1969년)는 고립과 절망의 심경을 잘 드러내고 있다. 사람들은 그 가사가 술집 여인들이 인생의 종착역으로 생각한, 절해고도의 섬에까지 흘러 온 서러운 삶을 노래했다고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