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모 연재소설 <수메리안> 68

등록 2004.05.25 14:36수정 2004.05.25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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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건조대 끝머리로 다가갔다. 거기에는 어제 기록한 것들이 널려 있었다. 딜문의 마지막 부분이었고 비손 강변으로 설정한 것이었다. 그는 그것들을 수거하기 시작했다. 만약 다시 쓰게 된다면 그 서판들은 파기해야 할 것이다.

교장은 서판들을 안고 작업실로 돌아왔다. 실내는 점토판을 긁어대는 갈대 촉 소리만 자욱했다. 그는 책상 위에다 들고 온 서판들을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아무도 그를 쳐다보지 않았다. 모두가 고개를 숙인 채 필경에만 몰두하고 있을 뿐이었다.


"자, 잠깐 중단들 하시고 주목해주시오."
교장이 일깨우자 교사들은 비로소 갈대 촉을 놓고 고개를 들었다. 교장은 바구니에 든 사제장의 서판을 집어들며 말했다.
"오늘 부사제장이 사제장의 유품들을 가져왔소. 그 유품둘 중 이 서판들이 바로 딜문에 관한 것들이오."
"딜문에 관해서는 이미 필경이 끝났지 않습니까?"
교감이 말했다.

"그래서 다시 의견을 나누어보자는 것이오. 사제장께서 거론한 딜문은 두 군데였소. 그 중 한 군데는 우리가 답사한 곳이지만 다른 한곳은 정 반대편에 있소. 어쨌든 내말보다는 직접 서판을 읽는 것이 이해가 더 빠를 테니 지금부터 읽어보겠소. 여러분들은 이 내용을 듣고 자기 생각을 정리해주길 바라오."

교장이 서판을 들고 읽기 시작했다.
'......나는 각 도시의 사제와 학자들을 만날 때마다 딜문은 어디에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추측만 분분할 뿐 거기가 어딘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 추측 또한 막연하거나 지정학적으로 타당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같은 장소를 여러 사람이 지목한 곳은 두 군데였다. 그중 한 곳은 바닷길 저 아래(바레인 쪽)라 했고 또 한군데는 비손 강가(니네베 쪽)에 있다고 했다.

나는 먼저 바닷길로 가보았다. 에리두에서 배를 타고 사흘간 항해를 하자 곶처럼 바다 앞으로 불쑥 나온 육지가 보였다. 사나흘 간의 항해, 섬 같이 돌출한 육지, 야자나무 숲, 틀림없는 그곳인 것 같았다.

나는 곧 뭍으로 올라가보았다. 야자나무 숲 안쪽으로 띄엄띄엄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하지만 골격이나 피부가 우리 검은 머리 사람들과 판이하게 달랐다. 딜문에는 단물이 솟는 우물이 있다고 했는데 그곳에서 얻어 마신 물은 소금기가 많았다. 더욱이 없다던 전갈이 곳곳에 기어 다녔다. 나는 더 이상 돌아다닐 수가 없었고 결국은 그 전갈에 쫓겨 철수하고 말았다.


그곳이 질병도 고통도 없다던 지상낙원, 그 딜문이란 말인가? 사람들은 지쳐보였고 젊은이들조차도 이빨이 내려앉은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곳은 딜문이 아니라고.
그러나 모르겠다. 신들이 하사한 최초의 지상낙원조차도 영겁의 세월과 홍수를 겪으면서 이런 땅으로 변할 수 있는지는'

교장은 다 읽은 서판을 내려놓고 다음 장을 집어 들었다.


'비손 강가에 종려나무 군락지가 있었다. 하류에는 마을이 있었지만 상류는 넓은 지역이 인적 없는 자연동산과도 같았다. 새와 짐승들이 많았고 그럼에도 전갈은 없었다. 한데 특이한 것은 그 종려나무 숲 위쪽으로 긴 토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곳이 만약 딜문이라면 그 토성은 어떤 목적으로 쌓은 것일까? 엔릴 신께서 하급 신들을 독려해서 수로를 파게 했다지만 그것은 수로를 팔 때 생긴 둑 같지는 않았다. 수로의 둑이라면 강과 가까워야 했는데 그것은 강과 떨어진 곳에, 그것도 강을 에워싸듯 길게 이어져 있었다.

나는 거기에서 이틀을 보냈다. 밤에는 짐승들의 동태를 관찰하느라 늦게 잠들었고 아침에는 동이 트기도 전에 눈을 떠야 했다. 새소리 때문이었다. 딜문의 새는 조용히 지저귄다고 했는데 그곳 새들은 어떻게나 요란하고 시끄러운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이곳도 딜문은 아닐 것이다. 신이 주신 아름다운 낙원, 그처럼 완벽했다는 지상낙원이 이토록 방자한 자연으로 변해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무엇보다도 신성함이 남아 있는 장소가 단 한 곳도 없었다.

그 어두운 새벽, 나는 실망을 해서 그곳을 떠났고 그때 내 마음의 소리가 들려왔다. 딜문은 다른 곳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포기하지 말고 더 찾아보아라. 불과 5,6백년 전 길가메시 왕도 다녀왔다지 않는가. 너의 '낙원 찾기'란 너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과업이며 수행의 길이지 않느냐….'

교장은 읽은 서판을 내려놓았다.
"이것이 전부요. 사제장의 낙원 찾기가 계속되었는지 어땠는지는 모르겠소만 딜문에 관한 서판은 이것이 전부라고 부사제장이 말해주었소. 자, 그럼 이제 여러분들의 생각을 말해보구려."

먼저 룸마가 자기 의견을 밝혔다.
"바닷길 저 아래라면 현실성이 없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말을 타고 온 선조가 어떻게 바다까지 내려가서 터를 잡았겠습니까?"

선조가 동방에서 말을 타고 왔다고 설정한 것은 새로 찾아낸 두 장의 그림 토판에서 근거한 것이었다. 한 장의 토판에는 다리가 긴 말과 짧은 말 사이에 화살표의 깊은 음각으로 새겨졌고 그 방향은 짧은 말 쪽으로 되어 있었다. 그것은 검은머리 사람들이 처음 이 지방에 올 때 다리가 긴 말을 끌고 왔는데 여기에는 나귀밖에 없었다는 뜻이었다.

그것을 뒷받침하는 확실한 증거로 이 지방에서는 아직도 큰 말을 생산할 수 없고, 지금 이용되고 있는 군마들조차도 불과 십여년 전부터 구아라(사마르칸트 쪽)에 터를 잡고 집중적으로 생산하기 시작한 것들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에는 가슴이 크고 귀가 작고 다리가 긴 말 한 마리와 그 옆에 다리만 긴 여러 마리의 평말이 그려져 있었다. 그것은 장군과 일반 기병들의 말이 다르다는 표시였고, 귀가 작은 천리마가 현재도 중원이나 소월씨(小月氏= 사마르칸트에서 돈황 쪽으로 솔가해간 대월씨 국의 후손 국가) 국에서도 이용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터라 쉽게 천리마와 군마를 구분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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