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산대놀이 67

쫓고 쫓기는 자

등록 2004.06.17 09:03수정 2004.06.17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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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녕 모르옵니다."

백위길은 이순보가 자신을 은근히 놀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기 시작했다.


"정녕 모른다니...... 그 말을 믿어 보겠네. 앞으로 알려고도 하지 말게나. 그리고 애향이는......"

"전 꼭 이포교님이 그 일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알아야겠습니다."

백위길은 단호한 어조로 말했고 이순보는 어이없다는 눈초리로 백위길을 쳐다보았다.

"자네 정체가 대체 뭔가? 포교가 된 것도 그렇고 시전의 왈패 두목과도 우연히 만났다는 식으로 말하니 자넬 믿을 수 없네."

이순보는 말에 백위길은 눈을 부릅뜨며 벌떡 일어나 외쳤다.


"저도 이포교님을 믿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애향이는 제 처가 될 사람이니 앞으로 그런 말은 꺼내지도 마시오!"

말을 마친 백위길은 이순보를 남겨두고 방을 나가 버렸다. 혼자 남은 이순보는 막걸리를 죽 들이키더니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멍청한 놈인 줄 알았더니 여자만 아니라면 아직 이용할 만 하군."

자리를 박차고 나온 백위길은 애향이가 있는 기방으로 달려갔다. 이순보에게 들은 말도 있거니와 술기운을 빌어 할 말을 하기 위함이었다.

"애향아! 애향아!"

기방에 도착해 애향이를 찾던 백위길은 아무도 나오지 않자 불이 켜진 방을 차례로 열어보기 시작했다.

"에구머니나!"

"뭐, 뭐냐!"

금주령에도 불구하고 기방에서 남몰래 질펀하게 술판을 벌이고 있던 양반과 기생들이 뜻밖의 일에 혼비백산하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행수기생 윤옥은 소란이 벌어졌음을 뒤늦게 깨닫고선 백위길을 말리러 뛰어나갔지만 이미 백위길은 술시중을 들던 애향이를 끌어내어 마당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애향아! 나와 혼인하자구나!"

애향이는 뜻밖의 일에 어이가 없다는 듯 백위길을 바라보았다. 뒤에서는 윤옥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백위길과 애향이를 싸잡아 욕하고 있었다.

"아이고! 저 년이 오늘도 결국은 큰일내네! 이 백가 포교 놈아! 남의 장사를 망쳐도 유분수지 이게 무슨 행패냐! 애향이 이년! 당장 저 포교를 돌려보내!"

기방에서 술을 마시던 양반들은 윤옥이 포교라고 소리치자 놀란 가슴을 달래며 구렁이 담 넘어가듯 슬그머니 나가기 시작했다.

"에구! 정서리, 김진사, 최생원 님들! 그냥 계시오! 내가 다 알아서 이 사람은 조용히 내보내리다!"

양반들은 윤옥의 말에도 불구하고 뒤도 안 돌아보며 평소 습관처럼 하던 헛기침 마저 소리를 죽인 채 빠져나가기 급급했다.

"대답하거라! 나랑 혼인하겠느냐!"

애향이는 백위길을 측은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대답하거라!"

"......어디서 술을 자셨는지 모르겠사오나 나중에 조용히 얘기했으면 하옵니다."

애향이의 말에 백위길은 실망하며 헛웃음을 쳤다.

"그래...... 난 이 나이가 되도록 장가도 못한 포교 놈이고...... 넌 어쩔 수 없는 기생 년일 뿐이구나!"

백위길의 야속한 말에 애향이는 있는 힘껏 두 손을 펼쳐 백위길의 가슴팍을 밀쳐 버리고선 기방을 뛰쳐나갔다. 윤옥은 혀를 끌끌 차며 백위길을 나무랬다.

"에구...... 이젠 포교까지 애향이에게 미쳐 날뛰는구먼. 저 년이 뭐 그리 잘났다고...... 이보슈! 혼인은 무슨 혼인! 냉수 먹고 속 차리슈! 애향이는 빚 때문에 어찌 되었건 간에 첩으로 들어가야 한다오!"

윤옥의 말에 백위길은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듯 정신이 멍해졌다.

"빚이라니...... 나도 모르는 빚이 언제 있었단 말이오?"

"에끼 이 사람아 그것도 모르면서 기생 서방 하겠다고 이 난리를 부려! 확 소금이라도 뿌리기 전에 여기서 냉큼 나가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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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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