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산대놀이 79

여인의 음모

등록 2004.07.08 08:43수정 2004.07.08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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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저도 모르는 일이옵니다."

김언로는 볼기짝을 어루만지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포장인 박춘호와 종사관인 박교선과 한상원은 꿀 먹은 벙어리 마냥 우두커니 서 있을 따름이었다.


"에이!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것들! 당장 내 앞에서 물러가라!"

김언로는 볼기짝을 어루만지며 박춘호를 찾아가 심지일의 일에 대해 어찌된 것인지 물어보았다. 박춘호는 피곤에 찌든 얼굴을 하고선 다른 소리를 내뱉었다.

"엉덩짝이나 간수 잘하게나. 그냥 짬을 내어 고향에 갔다왔다고 하면 될 것을 요령 없기는…. 쯧쯧."

그 즈음, 백위길은 초췌한 얼굴로 시전을 한바퀴 돌고 있었다. 포목상에서 잠시 발걸음을 쉬어가던 백위길에게 끔적이가 다급한 발걸음으로 다가왔다.

"혹시 우포청에서 김포교가 먼길에서 돌아오지 않았소이까?"


백위길은 무슨 일인가 싶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우리 스님을 포도청으로 데려온 것을 보셨겠군요!"
"아니오. 멀리서 도적을 잡아왔을 뿐이었다오."
"아니 그럴 리가…."


끔적이는 몹시 실망한 표정을 지으며 백위길의 옆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포도청에서 혜천스님 같은 분을 함부로 잡을 리는 없지 않겠소?"

끔적이는 한참 동안 우두커니 뭔가를 생각하더니 백위길을 부여잡으며 애원하듯 말했다.

"혹시 좌포도청에 줄이 닿는 사람이 있사옵니까?"
"아니 전혀 없소만…."
"그래도 포교이시니 좌포도청에 드나들 수 있지 않겠습니까? 부탁이오니 좌포청 옥에 스님이 있는지 알아봐 주시겠사옵니까?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든 할 터이니 제발 부탁드리옵니다."

원체 남의 부탁을 거절할 줄 모르는 백위길인지라 끔적이를 위로하며 좌포청으로 가 알아보겠노라고 약조를 하고 말았다. 끔적이는 말로만은 안심이 안 되는지 당장 좌포청 앞까지 동행하겠노라고 하고선 백위길을 끌 듯이 데려갔다.

"거, 계집 끼고 노는 것도 지겨우니 오랜만에 죄인들에게 판결을 내리겠다. 옥에 갇힌 죄인들을 모조리 이리로 끌어오너라!"

좌포도대장 이석구의 말에 포장 신석상은 부랴부랴 옥을 열고서는 죄인들을 데리고 나왔다.

"중놈은 여기에서 꼼짝 말고 있거라."

신석상은 혜천을 남겨놓고 죄인들을 몰고 가려 했지만 어느 새인가 술 냄새를 풀풀 풍기며 이석구가 뒤에 와 서 있었다.

"네 이놈! 어찌하여 중은 데리고 나가지 않는고?"

신석상은 매우 당혹스러워하며 그럴듯한 핑계거리를 생각해 내느라 쩔쩔매었다.

"그, 그것이…. 오늘 아침에 막 데리고 들어온 죄인인지라 따로 물어봐야 할 것도 있사옵고…."

"포도대장인 내가 죄인들은 모조리 데리고 나오라 하지 않았느냐! 네 놈부터 곤장이라도 쳐야겠구나! 우선 그 중놈부터 무슨 연유로 한양 거리를 쏘다니다 잡혀왔는지 문초부터 해야겠으니 단단히 준비해 놓아라! 거 재미있겠구나!"

신석상은 낭패라는 표정을 지으며 이석구가 가기를 잠시 기다린 다음 혜천을 보고 조용히 말했다.

"지금부터 내 말을 잘 듣거라! 포도대장에게는 그냥 중의 행색을 한 거렁뱅이라고 할 것이니 넌 그저 가만히 있다가 대답만 하면 된다. 어차피 피차간에 쓸데없는 소리는 안 하는 게 좋을 테니 말이다. 알겠느냐?"

혜천은 신석상을 조용히 바라보며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때그때 상황을 보아가며 내 나름대로 답할 것이오."

"이놈이!"

신석상은 주먹을 들어 혜천을 치려 했으나 그 순간 뒤에서 누군가 단단히 그의 손을 틀어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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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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