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버린 그림자
"그래, 이제는 일을 벌여가야 할 때가 온 것이로군."
옴 땡추는 막 만들어져 반짝이는 엽전을 보며 키 작은 사내와 똥싸게 땡추를 보며 싱긋이 웃음을 지었다.
"그 아이는 지금 어디쯤 있다고 들었느냐?"
"혹시라도 뒤를 따르는 자가 있을까 하여 돌아서 가긴 했지만 이젠 전주에 거의 당도하였을 것입니다."
"이승(二僧)이는 항상 꼼꼼하게 일을 처리하지. 도중에 계집을 흘려버리긴 했지만 말이야."
"그리고 대마도에 갔다온 일 말이옵니다. 운 좋게도 대마도주를 만났사옵니다."
"그래?"
옴 땡추는 뜻밖이라는 듯 허리를 곧추세워 키 작은 사내의 말에 바싹 귀를 기울였다.
"그 놈들에게 좋은 조건만 마련된다면 뒤를 충분히 흔들어 놓을 수 있을 듯 하옵니다."
옴 땡추는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을 지으며 다시 허리를 접었다.
"왜인(倭人)들의 말은 믿을 수 없느니라."
"이렇게 약조의 증표까지 받아왔사옵니다."
키 작은 사내가 내어놓은 것은 화려한 문양이 손잡이에 새겨진 단도였다. 옴 땡추가 이를 뽑아보니 시퍼런 날이 사방을 노려보는 듯 했다.
"좋은 칼이로구나."
"우리가 한양을 친다는 소식이 전해오면 움직일 것이옵니다."
"그렇지. 만약을 위한 방비책으로 왜인들을 이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 대마도야 우리가 관계를 끊어버리면 굶어죽을 판이니 뒤탈도 없을 터이고. 그리고 계집을 빨리 잡아야 할 테인데."
"그 계집에 너무 신경을 쓰는 것 아니옵니까?"
옴 땡추는 큰일날 소리를 한다는 듯이 손을 훽훽 내저었다.
"지금 우리는 목숨을 내놓고 있는 것일세! 조금이라도 틈을 보였다가는 내일이라도 당장 거사를 그르칠 수 있는 것일세."
"이게 다 그 별감 놈 때문 아닙니까? 그놈도 금강산으로 끌어들이는 게 어떻습니까?"
"그 자가 별감에 지나지 않으나 쉬이 건드릴 자는 아니네. 그나저나 이제 여기를 떠나 전주로 내려 가 보아야겠네만. 일단 사방에 통문을 돌려 전주 김맹억의 집으로 오라고 하게. 그리고 대체 계집을 잡을 방도는 생각해 두었나?"
"제가 인근에 떠돌이들을 알고 있사온데 그 자들이 계집을 잡는데 적격일 듯 하옵니다. 어차피 계집 혼자 어딜 가겠사옵니까?"
똥싸게 땡추의 말에 옴 땡추는 무릎을 탁 쳤다.
"그렇군! 그 계집이야 다른 곳에 연고가 없을 것이니 어영부영 이리로 들어올 것인 즉 그때 잡으면 되겠지."
"단지 걸리는 건 별감 놈과 백가 포교 놈입니다."
똥싸게 땡추는 옴 땡추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별감 강석배만큼은 없애버려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어차피 아이도 우리 손에 있는 판국이고… 궁중의 일이야 이젠 더 이상 들을 것도 없지 않습니까?"
옴 땡추는 두 사람의 눈앞에 난데없이 자신의 두 손을 뒤집어 펼쳐 보였다.
"이 손에서 뭐가 보이나?"
마치 선문답 같은 말에 키 작은 사내와 똥싸게 땡추는 서로 얼굴만 바라볼 뿐이었다.
"이 손에는 그간 죽어간 사람들의 피가 묻어있네 그러니 여기서 피를 더 묻힌다고 해서 티가 나는 것은 아니겠지. 하지만 이제 거사를 앞두고 쓸데없는 피를 묻혀 흘리고 다니지는 않겠네. 아우들이 걱정하는 바는 잘 알겠으나 계집의 처리를 사당패에 맡겼듯이 그 두 놈도 처리 할 수가 있네."
옴 땡추의 자신만만한 말에 눈치 빠른 키 작은 사내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리 처리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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