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산대놀이 93

복마전

등록 2004.08.02 08:59수정 2004.08.02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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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마전(伏魔殿)

"역모라!"


우포도대장 서영보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심각한 일인만큼 공개된 곳이 아닌 방안에서 종사관 한상원이 채수영의 진술을 토대로 직접 공초를 작성하는 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렇사옵니다. 박충준, 김계호, 안유겸, 신성문, 이필호 등은 반가(班家: 양반가)로서 이런 일을 꾀했으니 과히 역모라 할 수 있사옵고 장응인은 화적(火賊) 출신으로서 여러 무뢰배들을 거느리고 있사옵니다. 속히 수를 쓰셔야 합니다."

"허나 네 죄도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대 역시 반명(班名: 양반의 이름)에 올라있는데 조용히 넘어갈 일이 아니다."

"이미 각오하고 있사옵니다."

채수영은 눈을 지긋이 감은 채 웅얼거렸다. 역모의 규모가 큰지라 서영보는 이 일을 의금부에 보고하는 한편 포교들을 불러 공초에 적힌 사람들은 물론 수상한 자들은 모조리 잡아 오라 일렀다. 백위길은 이야기를 듣자마자 나는 듯한 걸음으로 별감 강석배의 집으로 향했다. 그곳에 바로 혜천과 끔적이, 애향이가 숨어있기 때문이었다.


"거, 일이 묘하게 되어가는군."

혜천은 알 수 없다는 듯 머리를 갸웃거렸다. 백위길은 강석배의 집이라는 게 불편한지 한시바삐 애향이를 집으로 데려가겠노라고 성화를 부렸다.


"강석배도 믿을 수 없사옵니다. 어떻게 공초에는 빠졌지만 그 자 역시 박충준이란 자와 어울려 다닌 자가 아니옵니까?"

끔적이의 말이 한편으로는 옳으니 혜천으로서는 애향이를 여기 둬야한다고 말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 즈음 이순보와 김언로는 역모를 꾀한 자를 잡는다는 핑계를 대며 간밤에 잡았던 무예청 별감을 앞세우고 다니며 욕을 보였다.

"네 놈이 포교를 해치려 했으니 분명 역모를 꾀한 무리들과 한패가 틀림없다! 어서 네 놈이 사는 집으로 가자!"

무예청 별감은 질려버린 표정으로 별감과 하속들이 사는 곳까지 끌려왔고 그 곳에서 포교들은 끔적이를 사로잡아 놓았을 때 포도청에 드나든 승정원 하속들과 마주쳤다. 김언로는 마침 잘 되었다는 표정을 지으며 하속들을 모조리 잡을 것을 명했다.

"이, 이게 무슨 짓들이오?"

"역모를 꾀한 놈들이 있었다. 네 놈들도 수상하니 일단 포도청으로 가자!"

"이 무슨 짓이오! 함부로 이런 짓을 하고도 무사할 것 같소이까? 호조판서께서 아시면…."

"호조판서께서 역모를 먼저 아시고 알려주신 일인데 뭔 잔말이 이리 많으냐!"

김언로는 하속 하나를 함부로 후려치자 이것이 신호라도 되는 듯 포졸들이 그들을 꽁꽁 묶어 버렸다. 우포도청에서 역모를 꾀한 자들을 잡아들인다는 소문이 돌자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좌포도대장 이석구가 포교 신석상을 불러 호통을 쳤다.

"네 놈들은 어찌 했기에 그런 일조차 제대로 몰라 공을 우포도청에 넘겨 주느냐! 당장 포졸들을 이끌고 의심가는 자들은 닥치는 대로 잡아오너라!"

오후 무렵이 되자 한양거리는 여기저기서 포졸들과 행인들간에 실랑이가 벌어졌고 포교들의 횡포도 심해지기 시작했다. 의금부에서는 채수영을 상대로 공초를 확인한다며 국문을 벌였지만 이는 형식적일 뿐이었고 호조판서 박종경이 옆에서 지켜 보며 공초 내용을 조정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강화도에 유폐되어 있는 성득을 한양으로 데려와 모반을 꾀하려 함이 아니더냐? 이를 위해 여러 흉측한 말들을 만들어 낸 것이렸다?"

박종경이 이런 식으로 말하면 채수영은 고개를 끄덕이는 수준이었고 박종경은 공초에서 자신과 관련이 있을 듯한 부분은 먹으로 지워 버리기까지 했다.

"자, 다 되었으니 깨끗이 베껴 써서 주상 전하께 속히 알리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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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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