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정통무협 단장기(斷腸記)- 5 회

등록 2004.08.16 07:38수정 2004.08.16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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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장 인연(因緣)

“대단한 사람이군요. 어떻게 깜쪽같이 사람을 속일 수가 있죠? 당신은 누구예요. 정말 만물표국의 표사가 맞기는 맞는거예요? 언제 표사가 된거지요? 일개 만물표국의 표사가 풍운삼절이라는 거물들과 상대할 수나 있는 거예요?”


여자란 참 이상한 동물이다. 도대체 이렇게 빨리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우선 기이하다. 또한 위기에서 벗어난 지 단 일각도 지나지 않아 저런 말을 할 수 있다는 것도 기이하다. 더구나 전신에 피범벅이 된 사람에게 할 말이 고작 그런 말이라는 게 더 더욱 여자란 이상한 동물이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그리고 대답을 들을 생각도 하지 않고 또 다시 질문을 해대는 저 여자를 보면 남자란 동물의 강맹함이나 대인대범함은 한순간에 날라가 버리고 마는 것이다.

“당신같은 사람이 일개 표사란 게 말이나 되는 거예요? 혹시 우리를 노리고 일행에 끼여든 사람은 아니예요? 무슨 목적이 있지요? 당신의 진정한 신분은 뭐예요?”

아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면 그녀의 입에서는 한시진 동안 계속되었을 것이다. 자청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가까스로 신형을 버티고 서 있는 상태였다. 당장이라도 쓰러져 쉬고 싶었다. 아직도 자신이 주저앉지 않고 버티고 있는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래도 그는 그녀의 입을 막기 위해서라도 대답을 해야했다. 생각같아서는 말로 그녀의 입을 막는 게 아니라 냄새나는 신발로라도 당장 틀어막고 싶기는 했다.


“알겠소. 그만하시오.”

그는 그녀의 질문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저쪽 소저도 궁금해 하는 것 같으니...”

그는 말끝을 흐리며 시비 차림의 소녀를 바라보았다. 비명을 지른 여자다. 그의 시선에 그를 바라보고 있던 그녀의 얼굴에 희미하나마 홍조가 떠오른 듯했다.

“나는 분명 삼년 전부터 만물표국의 표사가 맞소. 개인적으로 사정이 있어 그저 몸담았을 뿐 다른 목적은 없소.”

그녀는 기가 막혔다. 그녀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녀는 재차 무슨 말인가 물으려 했지만 자청은 그녀에게 말을 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녀에게 말할 기회를 준다면 따귀라도 갈겨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진정한 신분이라는 것도 없소. 어디에도 몸담고 있는 곳이 없으니.....”

왠지 허탈감과 이번 일에 나선 자신을 책망하는 투였다.

“서소저라 하였소? 내가 보기엔 나에 대해 묻는 것보다 빨리 움직이는게 우선일 것 같은데..”

그의 말에 그녀는 화들짝 자신의 처지를 깨달은 것 같았다. 이번은 저 사람 덕에 무사히 넘어갔지만 또 다른 추적자가 나타난다면 절대 안전할 수가 없다. 이미 자신들이 준비한 안전책은 거의 무용지물이 되었을 것이다. 이제부터는 더 이상의 도움을 기대할 수도 없다.

그 때까지 조용히 있던 시비 차림의 소녀가 조금 전 장절의 구섬분천이 펼쳐지자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지른 이후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어디로 어떻게 움직이지요?”

많은 의미를 함축한 말이었다. 이미 마지막으로 남은 다섯명의 표사는 중상을 입은 채 혼절해 있고, 자청마저도 심각한 상태임을 알아 본 말이었다. 게다가 표물을 실은 마지막 마차 한대는 움직일 수는 있다 하더라도 한 귀퉁이가 부서져 나가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상태다. 그래도 몸이 성한 사람은 여자 두사람 뿐이다. 자청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에게 대책이 있을리 만무다.

그러나 그는 뜻밖의 말을 꺼냈다.

“본래 표물은.....마차에 실은 황금 만냥이 아니라 소저가 맞소?”

시비 차림의 소녀를 보면 한 말이었다.

“..........!”
“..........!”

두 소녀의 얼굴에 기이한 기색이 흘렀다. 표물은 분명 황금 만냥이다. 그러나 그 안에 숨어 있는 의미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녀를 쫒는 자들은 물론 그녀 자신들도 확실히 알지 못한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요.”

대답은 서소저라 불리운 여자에게서 나왔다. 미모도 미모이려니와 그녀에게는 사람으로 하여금 편안하게 해 주는 솔직함과 대범함이 있었다. 열흘 동안 표물과 동행하면서 보건데 직관력과 판단력도 역시 뛰어난 것 같았다.

그녀는 아직도 갑자기 자신을 나타낸 자청에 대해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음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믿고 싶었다. 바로 앞에 있는 저 사람이 그녀들을 쫒는 자들과 한패라도 할 수 없었다.

“무슨 뜻이오?”

그녀는 앙증맞은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표물이 무엇인지 알아야만 하나요?”
“몰라도 상관없소. 다만 표물이 무엇이냐에 따라 가는 방법이 달라질 수 있소.”

그 말이 그 말이다. 당연히 진정한 표물이 무엇이냐는 중요하다.

“당신은 자신 있나요?.”

표물이 무엇인지 가르쳐주면 목적지까지 운반할 수 있냐는 말이다.

“자신 없소. 하지만 최선을 다할 것이오.”

오히려 솔직한 말이다. 그녀는 이번 일이 이렇게까지 어려운 것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집안 어른들도 이 일에 대한 중요성만 이야기했지 그 내막은 알려주지 않았다.

그녀는 현명했다. 남들이 재녀(才女)라 칭송이 자자한 그녀였다. 그녀는 이미 이번 일이 틀려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조금 전에 그녀는 확실히 그 사실을 깨달았다. 바로 자청이 자신을 나타내기 전까지 말이다. 이제 그녀는 결정을 해야 할 시기가 왔음을 깨달았다.

“좋아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그 말과 함께 그녀는 시비 차림의 여자에게 다가갔다.

“언니....”

시비 차림의 여자는 시비가 아니었다. 처음부터 그녀는 시비가 아니었다. 그녀는 거지 옷을 입혀 놓아도 거지가 될 수 없었다. 그녀에게는 고아한 기품이 있었다. 조용하면서도 단아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은연 중에 남들이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하는 우아함이 있었다.

“가화야....이제는...”

그녀들은 나직하게 말을 나누기 시작했다. 그녀들의 어깨에 걸려진 일들은 그녀들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찬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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