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쇠스랑으로 고랑을 고르고 있다.박철
"여보! 이제 나 집에 가도 되지? 힘든 일은 다 했잖아. 원래 밭일은 여자들이 다 하는 거야."
"그래, 마누라는 밭에 놔두고 혼자 내 뺄 생각을 해요?"
"다른 집도 밭일은 다 여자가 하드만. 다른 일은 다 하겠는데 쪼그려 앉아서 하는 일은 못 하겠어. 나 먼저 가서 밥 먹고 있을 테니 당신 혼자 천천히 하고 오시오. 내가 밥 먹고 또 올게."
"당신, 김장해서 다른 사람들한테 주면서 '이거 다 내가 농사지어 만든 거예요' 그렇게 말하려면 꾀부리지 말고 얼른 일부터 끝내요."
아내의 그 말에 꼼짝할 수 없었습니다. 이번에는 채반에 거른 고운 흙으로 구멍을 덮어 주는 일을 해야 합니다. 바람 한 점 없이 햇볕이 내리 쪼이고 잠자리들이 낮게 날아다니는 모습이 평화롭습니다. 배추, 무씨는 다 심었습니다. 이제 순무씨와 쪽파를 심는 일을 해야 하는데 배가 고파 더 이상 할 수 없었습니다.
우선 가까운 어머니 집에서 밥부터 먹기로 했습니다. 어머니는 오늘 외출을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다리를 쓰지 못해 늘 집에서만 지내시는데 우리 교회 장로님 한분이 바람 쐬어 드리러 차에 태워 모시고 나갔습니다. 주변에 이렇게 고마운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배가 고프니 밥이 꿀맛이었습니다. 밥을 먹으면서 내가 배가 고파 죽을 뻔 했다고 하니 아내가 실실 웃습니다. 내가 왜 실없이 웃냐고 물었더니 아내가 말합니다.
"당신 대단한 농사꾼 같아요. 배가 고파 죽을 정도로 일을 했으니 얼마나 일을 많이 한 거야? 누가 보면 진짜 농사꾼인 줄 알겠어요."
"당신 나 없으면 아무것도 못해. 그래도 3분의 2는 내가 했어. 그러지 마."
"아이고, 다 했다고 그러시지."
점심밥을 잘 먹고 나머지 일은 좀 쉰 다음 하기로 했지요. 집에 돌아와 쉬고 있는데 역시 아내가 먼저 일어섭니다. 내가 곧 내려갈 테니 먼저 내려가라고 했더니 아내는 꾀부릴 생각 말고 얼른 내려오라고 합니다. 한참 시간을 보내고 내려갔더니 아내가 쇠스랑으로 밭을 고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골이 단단히 났습니다.
"아니 이제 오면 어떡해요? 금방 내려오겠다는 사람이…."
아내 혼자 순무와 쪽파를 심을 밭을 삽으로 이르고 쇠스랑으로 다 골라 놓았더군요.
"수고 많으셨네. 혼자 밭일을 한 것이 억울해서 이렇게 골이 나셨나?"
내가 괭이를 들고 일을 막 시작했는데 지나가던 현구 엄마가 우리 내외가 일하는 모습을 보고 한마디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