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소설] 호랑이 이야기 71

호종단과의 만남 3

등록 2004.09.14 18:37수정 2004.09.14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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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였습니다. 바리와 백호 주변의 땅이 울렁거렸습니다. 그러더니 시커먼 진흙이 스멀스멀 땅 위로 올라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바리와 백호 주변을 둘러싸기 시작했습니다. 그 진흙괴물은 천천히 주변을 맴돌기만 할뿐 아무런 공격도 하지 않았습니다. 바리는 백호 옆으로 다가가 한팔로 목을 끌어안았습니다.


키 큰 사람이 다시 말했습니다.

“인사들 하렴. 지금 네가 보고 있는 것은 이 땅의 기운을 찾아 돌아다니는 흙무더기들이다. 겁내지는 말거라, 사람을 해치거나 그러는 녀석들은 아니야, 단지 내 역술서가 시키는 대로 새로운 물이 흐르는 곳을 찾아 헤매는 그런 존재들이야.”

바리가 말했습니다.

“우리에게 다시 이 땅의 샘물을 돌려달라고 부탁드리러 왔어요. 이 땅에 흐르고 있는 기와 물줄기는 누구 한사람의 몫이 아니에요, 이 땅에 살고 있는 나무님들과 꽃님들과 그리고 그분들과 같이 살아 숨쉬는 다른 동물들과 우리 인간들 모두의 것이에요.”

호종단이 말했습니다.


“누가 그런 이야기를 하더냐? 이 땅엔 아무도 주인이 없다고 하더냐?”

“아무도 그런 이야기를 해준 사람은 없어요, 이 땅은 우리가 전부 하나가 되어 사는 땅이에요, 누구도 자기 마음대로 이 땅의 기운을 모아 가질 수는 없는 거예요. 전 그걸 알아요, 그리고 제가 만난 가신 님들과 나무님들과 꽃님들이 전부 저에게 그 얘기를 해주신 거예요.”


수단이라는 강아지만 가끔씩 고개를 흔들고 있을 뿐 키가 큰 호종단은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있기만 했습니다.

수단의 목덜미를 쓰다듬고 있는 손의 움직임만, 그가 바리와 여전히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호종단이 말을 이었습니다.

 “나도 이 땅이 누구의 소유가 되건 간에 관심은 없다. 호랑이들의 소유가 되던, 너희 같은 인간들의 소유가 되던, 아니면 내가 살아있을 때 섬기던 송나라 황제의 소유로 다시 돌아간다 하더라도, 난 단지 그 사람을 통해서 내가 못 다 이룬 꿈을 이루고 싶은 뿐이야. 아마 그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면, 난 지금도 저 바다 밑 어딘가에서 유령들과 함께 살고 있을 거야, 내가 원하던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어.”

 지금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던 백호가 드디어 입을 열어 말했습니다.

 “역술서를 누가 만든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 책은 이 땅에 흐르고 있는 기를 모으고 한 사람의 이익만을 추구하기 위해서 쓴 책은 분명 아닐 것이요, 그 책은….. 이 땅에 사는 모든 존재들이 하나가 되어 같이 행복을 누리도록 나온 책일 테지요, 나무 씨앗은 자라서 나무가 되고, 들판에 태어난 염소들이 행복한 염소들로 자랄 수 있도록 이 땅의 질서와 규율을 정리해 놓은 책일텐데, 그것이 어찌 한 사람의 소유로 들어가 그 나쁜 호랑이들의 소원을 들어주고자 사용되어야한다는 말이요.”

“네 녀석도 호랑이 아니더냐!”

 호종단은 갑자기 활활 타오르는 목소리로 백호를 향해 소리를 질렀습니다.

 “네 녀석도 호랑이가 아니냐고! 이 세상에 이제 어느 호랑이도 너처럼 인간 세상에 빌붙어서 살고자 하지는 않는다, 그것이 바로 질서야, 이제 네가 알고 있던 이 땅의 질서는 끝난 것이다. 네가 이 땅에서 저 계집아이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단 말이다!”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가늘면서 부드러웠지만, 아주 화가 많이 난 사람처럼 힘이 실려 있었습니다. 만약 어딘가에서 혼자 있을 때 이런 소리를 들었더라면 분명 무서워서 덜덜 떨었으리라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백호가 말했습니다.

 “난 이 땅의 질서가 어찌 되던 아무런 상관이 없소, 당신 호종단이 이루지 못한 소원을 이루고 사는 것처럼, 나 역시 내가 해야 할 일만을 추구하며 살뿐이지. 다른 사람들의 영혼을 끌어 모아서 새로운 질서로 끌어 모으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지 당신이 더 잘 알지 않소!”

 그 목소리는 주변을 울려 마치 표효하는 소리처럼 들렸습니다.

 바리가 입을 열었습니다.

 “맞아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요, 백호가 아무리 힘이 센다 한들 그 많은 호랑이들과 맞서서 싸울 힘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저는 너무 어려서 호종단 아저씨가 원하는 것이 무언인지 다 이해할 수가 없어요. 하지만…..”

  바리는 다시 눈물이 나오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억지로 눈물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할 모양인지 일부로 하늘을 쳐다보면서 굳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습니다. 하늘색깔이 파랬습니다.

 “저희 친구들이 너무 가엾어요, 우리 부모님하고, 혜리하고 그리고 보육원 친구들하고….. 그 착한 영혼들이 호랑이들의 영혼에 들어앉아서 울고 있는 것을 보았어요. 아마 그 붉은 눈의 호랑이들 속에는 그렇게 혼자 슬피 울고 있는 영혼들이 들어 앉아있을 거예요. 제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냥 그 친구들을 다시 안아주고 싶은 것뿐이에요.”

 바리는 고개를 움직여 호종단을 똑바로 쳐다보려 했습니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단호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습니다.

 “전 우리 부모님을 만나고 싶다는 것뿐이에요. 만약 돌아가셨다면 모르겠지만, 엄마 아빠는 돌아가신 것도 아니고, 나쁜 호랑이들에게 붙잡혀서 어딘가에서 그렇게 쭈그리고 앉아계실 것이 분명하단 말이에요. 모든 사람들을 다 그렇게 억지로 호랑이들로 붙잡아 놓을 수는 없어요, 이 세상은… 전부 호랑이들만 사는 세상이 될 수는 없어요. 그렇죠? 착한 우리 엄마 아빠는 그렇게 나쁜 호랑이가 되어있을 수는 없어요.”

 지금까지 바리와 백호 곁에서 겁을 주는 것처럼 맴돌고 있던 진흙괴물은 순간 땅으로 꺼져버렸습니다. 그리고는 정적이 감돌았습니다. 호종단의 가늘고 부드러운 소리가 그 정적을 깨뜨려버렸습니다.

 “좋은 말이군. 그래.”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지 호종단과 수단이 조금씩 흔들려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바리는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았지만, 여전히 흔들리며 일그러져 보이기만 했습니다.

그것은 아지랑이가 아니었습니다. 호종단이 서있는 곳에서부터 땅이 조금씩 흔들거리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호종단과 바리 사이에 있던 땅도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무슨 일을 하려는 것인지… 바리는 순식간 두려운 마음에 들었지만, 무언가 바리의 머리 속에서 그 두려운 마음을 지우개로 지운 듯 금방 사라져 버렸습니다. 호종단의 발 밑에서부터 흙이 조금씩 땅으로 꺼져 내리는 것이 보였습니다, 한 무더기씩 흘러내리는 흙덩어리들은 지평선까지 퍼질 만큼 긴 줄을 그리면서 바리 쪽으로 점점 더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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