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따서 껍질을 버리고 씹는 일도 많았지요.김규환
어머니는 추석 전날 하던 일을 멈추고 하늬바람이 살랑이는 신작로를 따라 부산히 논으로 달려가셨다. 나는 영문도 모르고 "엄마, 엄마!" 불렀다. "핑 댕겨올텡께 집에 있거라" 잠시도 옆에서 떨어지기 싫던 나는 "한꾼에 가잔께요"하며 마구 달려가서 몸빼바지를 잡고 늘어졌다. 코흘리개 나를 팽개치고 갈 수 없었던지 달고는 갔지만 어머니 발걸음은 빨라 바람을 일으킬 지경이었다.
"엄마, 소쿠리 들고 뭣하러 가시요?"
"올개심니 할라고 근다."
"그거시 뭐시다요?"
"조상님께 우리 돌봐줘서 고맙다고 올해 난 쌀을 상에 올리는 것이여."
"엄니 글면 낫을 들고 가야제 왜 소쿠리만 갖고 간다요?"
"몇 줌만 훑으면 됭께 글제."
달음질을 하여 논에 도착했다. 안쪽과는 달리 바깥 논두렁 쪽은 깜부기 투성이였지만 이삭이 훨씬 크고 탐스러웠다. 도착하자마자 어머니는 누렇게 익어가는 벼를 쭉쭉 훑었다. 어머니는 두꺼운 손톱으로 벌써 열댓 개를 넘기고 있었지만 나는 재그랍다 못해 손끝에 박히듯 억세어 한두 개를 잡고 씨름하고 있었다.
"엄마 손가락이 패일 것 같으요."
"글면 이삭 모가지를 뽑그라."
"알았어라우."
어머니가 알갱이를 따고 지나간 뒤를 따라 한 걸음 뒤에 붙어서 꼿꼿이 서 있는 벼 모가지를 뽑았다. 가지런히 하느라 더디기만 했다. 한 되쯤 되었을까 어머니께서는 나락 따기를 멈추고 내 쪽을 향해 오시면서 나락 모가지를 서둘러 마저 뽑으시더니 집으로 가자고 하셨다. 내 손엔 빗자루 하나가 들려 있으니 칼싸움거리로 안성맞춤이었다.
집으로 오신 어머니는 솥에 물을 붓고 벼를 쪘다. 찐 벼를 키에 펴서 넌다. 서너 시간쯤 지났을까 다른 일을 하시다가 적당히 마르자 절구통에 넣고 절구질을 해대니 약간은 푸르스름하며 누런 현미 쌀이 알알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엄마 한 줌 묵어도 되끄라우?"하며 겨와 쌀이 뒤섞인 한줌을 "후후" 불며 까불어 '올개쌀'을 툭 털어 넣었다. 쌉싸름하면서도 구수한 냄새를 풍기는 몰캉몰캉한 쌀을 씹는 즐거움에 빠졌다.
곧 어머니는 쌀 두어 줌을 챙기고 가져온 벼 이삭을 가지런히 묶어 문지방에 거셨다. 두 손 모아 빌었다. 자식들 잘 되라고 그러셨겠지.
'올개심니'는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송편과는 인연이 없던 남부지방 대부분은 차례상에 묵은 쌀과 '올개쌀'을 섞어 메를 지어 올리는 걸로 대신했다.
푸른 밥, 올벼쌀로 만든 쌀밥을 모처럼 먹었다. 입안에 풋풋한 향기가 가득 퍼졌다. 다음날부터 며칠간 나는 남은 '올개쌀'을 주머니에 넣고 한 줌씩 털어 넣어 씹는 재미로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