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정통무협 단장기(斷腸記)- 43회

등록 2004.10.28 07:59수정 2004.10.28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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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가화의 무공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에 올라있다. 송하령이 지혜롭고 사려가 깊다는 사실은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그녀들이 소림에 가져가는 물건은 값을 따질 수 없는 무가지보(無價之寶)요, 중원을 뒤흔들만한 중요한 것이다. 그녀들이 가져갈만한 물건은 절대 아니다.

강남서가는 힘이 있다. 차라리 강남서가의 고수들과 관군을 동원하는 것이 이치에 맞는다. 그렇게 했다면 자신들은 처음부터 그것을 노리는데 신중했을 것이고, 소림에 전해지는 것을 재고해 보았을 것이다. 물론 그녀는 처음부터 막을 생각을 가지지도 않았다. 그것을 이용하는 편이 옳다고 생각했었다. 만약 그녀가 반드시 막아야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아무리 보호한다 해도 그녀는 막았을 것이다.


“분명 우리가 알지 못하는 내막이 있어요. 우리가 노릴 것이라 생각 못할 서인 가주가 아니예요. 그럼에도 그는 지금까지 지켜만 보고 있어요.”
“서가주가 이미 눈치 채고 있는게 아닐까?”

사내의 말에 그녀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사내 역시 자신의 말을 확신할 수 없다.

“서장군가에서의 일은 완벽했어요. 그 놈이 약속을 지키지 않아서 문제였지 서장군가에서는 아직 모르고 있음이 확실해요.”

서장군가의 일이라면 서달대장군가의 일이라는 말이다. 그곳에서 그들은 무슨 일을 벌이고 무슨 실수를 하였다는 것일까? 더구나 그 놈이란 누구를 가르키는 것일까?

“그 놈은 강사제(姜師弟)가 뒤쫒고 있으니 조만간 해결될게다.”
“오사형은 분명 잘 해낼거예요. 하지만 그것으로 인해 우리가 계획한 첫 번째 거사가 미루어 졌어요. 더구나 그들에게도 준비할 시간을 준 것이죠.”
“그들이 우리를 확실하게 알고 있을까?”
“확실하지는 않을 거예요. 그것 때문에 그들의 눈과 귀를 잠시 막아 시간을 벌자고 철골개를 잡으려 한 것인데, 그를 놓친게 정말 아쉽군요. 소림과 무당이 어떻게 알았는지 결정적인 순간에 나타난 바람에 대어를 놓쳤어요. 모두 제가 생각이 짧은 탓이예요.”


개방의 방주인 철골개(鐵骨丐) 구한(具漢).

개방에 몸담기 시작한 이래 개방의 전통을 무시한 인물로 더욱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그는 깨끗한 거지이다. 그 사실 하나로 선배개방도들에게 뭇매와 욕설 속에서 지냈지만 그는 선천적으로 강골의 신체와 비상한 머리를 가졌다. 그 이유로 전임방주의 눈에 들어 후개(後丐)로 발탁되었고 전임방주의 뒤를 이어 방주가 되었다.


개방의 비전절기(秘傳絶技)의 오할 이상을 깨우쳐 개방 역대 방주 중 첫손을 꼽을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받는 그다. 헌데 그를 사로잡으려 했다는 그녀의 말은 무엇인가?

“네 탓이 아니다. 구파일방(九派一幇)...그들의 정보력과 힘은 우리가 예상한 것보다 치밀하고 강하다. 더구나 그들의 결속력은 알려진 것보다 훨씬 단단하다.”
“그것까지 생각해야 했어요. 하지만 소림의 살아있는 전설이라는 광무선사(廣武禪師)와 십팔나한(十八羅漢)이 나서고, 무당의 현진자(玄眞子) 등이 나선 것은 뜻밖이죠.”

소림의 광무선사와 무당의 현진자 등이 손가장에 나타난 것은 우연이 아닌 듯 싶다. 그들이 움직였다는 것은 무림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중대한 사안이 있었다는 말이다.

“소림의 광무가 나섰다면 우리 사형제 중 최소 두 명은 나서야 했을 것이다. 더구나 십팔나한과 무당의 현진 등이라면 하남지부(河南支部) 절반 이상이 움직였어야 가능했겠지.”

셋째사형의 판단은 옳다. 만약 그녀가 소림의 광무선사와 십팔나한, 무당의 현진자 등이 움직일 것이라 예측했더라도 그녀는 그렇게 처리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남지부는 중요하다. 그들 중 반을 움직인다는 것은 중원전체에 자신들을 공표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문제는 그들이 경계하고 있다는 점이예요. 그렇지 않다면 그런 정도의 인물들을 보내지도 않았겠죠.”
“우리측 피해는...?”
“광무와 십팔나한, 현진자가 나타났다는 말에 급히 철수하라고 해 피해는 거의 없어요.”
“그들이 우리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그는 짧은 턱밑 수염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사실 확실한 대답을 얻기 위해 물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사매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들은 아직 많이 알지 못해요. 하지만 이미 주목하고 있어요. 문제는 그들이 천지회(天地會)와 정보를 공유한다면 우리를 파악하게 될꺼예요. 천지회는 이십여년이 넘도록 우리를 주시해 왔으니까요.”

천지회(天地會).

오중사걸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 졌다가 대명 초 대표적인 반황실단체로 발전한 오중회가 명태조 사후 명칭을 바꾼 단체. 회주(會主)가 누군지 모르며, 그 회원조차도 파악되지 않은 단체로 황실 비밀조직인 천관에서도 가장 신경 쓰고 있는 곳이다.

“하지만 둘째사형께서 일을 마치고 무사히 귀환한다면 별문제가 되지 않을거예요. 우리의 계획은 차질없이 진행될 것이고 우리가 원하는 염원(念願)은 반드시 이루어질 거예요.”

그녀가 이루어 질 것이라고 말한다면 그 일은 이루어진다. 그녀는 총명하다. 너무나 총명하다. 죽은 제갈공명이 그녀의 몸으로 다시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천적으로 말을 하지 못하게 태어났지만 그녀의 혜안(慧眼)은 이미 전 중원을 꿰뚫어 보고 있다.

“헌데 부탁을 하나 해야겠구나.”

사형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부탁이란 말을 하지 않는다. 그의 위치는 그저 지시나 명령을 내리면 되는 지위다. 부탁이란 말은 사적인 일을 뜻할 수 있다.

“......?”
“풍운삼절을 꺽은 그 청년....내 염화심력을 견디어 낸 그 청년이 누군지 알고 싶구나.”

부탁이란 말에 움찔했던 소녀가 하얀 이를 보이며 웃었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으셨군요. 아니면 상대할만한 자라고 느끼셨거나.”

그는 웃었다. 그의 말 한마디에 그의 마음을 아는 사람은 오직 사매 뿐이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럴 런지도 모르지. 하지만 지금까지도 그 자를 반드시 죽였어야 한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다.”

그의 본능은 그 자를 반드시 죽여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었다. 왜 그런지 몰랐다. 자신이 그런 느낌을 가진 인물은 세손가락을 넘지 않는다. 하지만 왜 무명소졸인 그에게 그런 느낌을 가졌는지 자신이 생각해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자세히 알아 봐야겠군요.”

사형은 사람을 볼 줄 아는 사람이다. 그런 사형이 주시하고 있는 자라면 분명 무언가 있는 자다. 사내는 지금까지 사매를 바라보던 눈길을 돌려 그 옆의 소녀에게 시선을 돌렸다.

“당새아(唐璽兒)!”

삼백안을 가진 요사스런 여인.

“예. 주인님.”

그녀는 정말 기이한 여자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자신 만의 목소리가 있다. 하지만 대답을 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전혀 달랐다. 조금전까지 청초한 여인의 목소리를 대신한 그녀의 목소리는 맑고 깨끗했다. 청초한 여인의 얼굴을 연상케 하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녀가 아닌 자신의 말을 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끈적거리고 나직했다. 듣는 이로 하여금 나른하며 기이한 욕정이 일어나게 하는 목소리였다. 한 여자의 입에서 이렇듯 상반된 목소리가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은 믿기 어렵다.

“너무 늦었구나. 아가씨를 모시거라.”

사매는 자신을 걱정해서 염화심력의 후유증에서 벗어나는 자신을 지켜 보았을 것이다. 그 시각은 짧은 것이 아니라 꼬박 하루다. 그녀는 몸이 약하다. 그녀가 무공을 익힐 수 있었다면 여자로서는 최고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무공을 익힐 수 없는 몸이다.

“알겠습니다. 주인님.”

그녀는 무릅을 꿇고 사내에게 절을 했다. 그리고는 의자에서 일어서는 여인을 부축했다.

당새아.....
그녀에게 있어 사내의 말은 곧 하늘이다. 그가 죽으라는 말 한마디에 그녀는 당장 죽을 수 있다. 요사스런 그녀의 두 눈엔 더욱 영롱한 빛이 일렁거리고 있었다.
(11장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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