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겹살에 소주 한 잔 어때요?

<내 추억속의 그 이름 210> 삼겹살

등록 2004.12.13 15:23수정 2004.12.13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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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익어가고 있는 삼겹살
잘 익어가고 있는 삼겹살이종찬
"요즈음 삼겹살 한 근에 얼마죠?"
"9000원입니다. 작년 이맘 때 소고기 값도 이보다 조금 더 쌌지요. 아마도 제가 이 장사 시작한 뒤에 지금이 가장 많이 오른 가격일 겁니다."
"그렇네요. 올 봄에만 하더라도 삼겹살 한 근에 4000원 했는데, 불과 몇 개월 사이에 두 배도 넘게 올랐네요."
"제 깐 게 오르면 얼마나 더 오르겠어요. 곧 예전처럼 떨어질 겁니다."



매주 일요일 저녁이 되면 우리 가족은 늘 삼겹살을 구워 먹는다. 큰딸 푸름이와 작은딸 빛나가 일요일 저녁만 되면 으레 정해진 행사처럼 삼겹살을 구워달라고 나를 마구 보채기 때문이다. 그것도 그냥 보채는 것이 아니다. 두 딸은 일요일 저녁에 삼겹살을 구워먹지 않으면 마치 큰 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호들갑을 떤다.

간혹 형님댁이나 처가에서 가족들의 모임이 있는 일요일 저녁, 두 딸을 데리고 집을 나서면 두 딸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오늘 저녁 내 삼겹살 날아갔다!"란 소리를 내뱉는다. 그뿐만이 아니다. 어떤 때는 두 딸이 배가 부르다며 아예 따라 나서려 하지 않을 때도 제법 있다.

이제 내년 봄이면 중2가 되는 푸름이와 중학교에 입학하게 되는 빛나는 어릴 적부터 삼겹살을 참 좋아했다. 그것도 약간 탈 정도로 바삭바삭하게 구운 삼겹살을 소금을 푼 참기름에 찍어 파저리, 밥과 함께 상추에 싸먹는 것을 특히 좋아했다. 그 때문에 우리집 냉장고 냉동실에는 삼겹살이 떨어지는 날이 거의 없었다.

내가 푸름이와 빛나만 할 때는 고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비릿한 것을 몹시 싫어했다. 그런 까닭에 육류든 생선이든 고기라고 하는 것은 아예 입도 대지 않았다. 심지어는 밥상 위에 오른 고기 냄새가 싫어 밥그릇과 반찬 두어 가지를 들고 방구석 저만치 돌아 앉아 밥을 먹기도 했다.

"니는 부처 새끼 될라꼬 그라나? 와 이 비싼 고기로 안 묵노? 다른 아(아이)들은 고기가 없어서 환장을 하는데."
"고기만 보모 속에서 구역질이 올라오는데 우짤낍니꺼."
"사람이란 기 원래부터 잡식성이라서 가끔 고기도 묵어야 된다카이. 그라이 아침 조회하다가 자빠지지."
"고기가 싫은 거로 우짤낍니꺼?"



나는 어릴 적 빈혈이 조금 심했다. 동무들과 땅따먹기를 오래 하다가 허리가 아파 일어서면 눈앞이 노래지면서 수많은 별들이 반짝거렸다. 초등학교에서 아침조회를 하느라 열중 쉬어 자세로 제자리에 오래 서 있다가 나도 모르게 땅바닥에 그대로 쿵 하고 넘어지기도 했다. 그 당시에는 나뿐만 아니라 그런 동무들이 제법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게 고기를 먹지 않아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저 급하게 먹은 음식이 체했거나, 몸에 기생충이 있어서 그런 줄로만 알았다. 나뿐만이 아니었다. 동무들도 눈앞이 노래지면서 별이 뜰 때마다 아까 먹은 밥이 소화가 되기도 전에 기생충이 다 훔쳐먹어서 그런 것이라고 여겼다.


삼겹살은 금방 밭에서 수확한 상추로 싸먹는 것이 맛이 있다.
삼겹살은 금방 밭에서 수확한 상추로 싸먹는 것이 맛이 있다.이종찬
내가 어릴 적 우리 마을에는 고기가 몹시 귀했다. 그나마 생선은 마을 앞을 흐르는 도랑가나 가까운 봉암 바다에 가면 서너 마리쯤 쉬이 잡을 수 있었지만 소고기나 돼지고기는 보기가 어려웠다. 특히 소고기는 우리 마을에서 키우는 송아지나 소가 병들어 죽을 때가 아니면 정말 구경조차 하기 어려웠다.

"우리 선생님께서 병들어 죽은 소는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산 속에 꼭꼭 파묻어라 카던데예?"
"팔자 늘어진 소리 하고 있네. 이때가 아니모 운제(언제) 소고기 맛을 볼끼고. 이것도 그냥 주는 줄 아나? 쌀 몇 되박캉 겨우 바꿔 온 기다."
"그거 묵고 몸이 아프모 우짤라고예?"
"팍팍 낋이가(끓여가지고) 무모(먹으모) 까딱 없다카이."


그나마 병들어 죽은 그 소의 고기도 살점을 맛보기는 어려웠다. 집에서 키우는 소나 송아지가 병들어 죽으면 그 주인은 소의 내장을 모두 긁어낸 뒤 부위 별로 고기를 도려내 마을사람들에게 쌀 몇 되박을 받고 골고루 나누어 주었다. 하지만 그런 고기조차도 많이 가지고 올 수가 없었다. 마을사람들 모두 골고루 나눠 먹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죽은 소를 잡는 날, 우리 마을 곳곳은 온통 소고기국 끓이는 냄새로 가득 찼다. 하지만 막상 소고기국을 한 그릇 받아들고 숟가락으로 아무리 휘저어도 고기는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저 둥둥 떠다니는 벌건 쇠기름 속에 콩나물만 가득 들어 있었다. 말 그대로 소가 발을 씻고 지나간, 소고기 냄새만 가득한 희멀건 국물뿐이었다.

하지만 돼지고기는 일 년에 두어 번쯤 두툼한 살점을 제법 맛 볼 수 있었다. 그나마 우리 마을에서 돼지는 흔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마을사람들은 돼지를 소처럼 그리 귀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또 소는 일 년에 한 번씩 송아지를 꼭 한 마리만 낳았지만 돼지는 일년에 두어 번씩 한꺼번에 새끼를 여러 마리 낳았다.

게다가 소는 농사일 때문에 한 집에 꼭 한 마리씩 키웠지만 돼지는 닭 키우듯이 제법 많이 길렀다. 그런 까닭에 초상이 난 집이나 결혼식을 하는 집에서는 돼지 서너 마리 잡는 것쯤은 예사로 생각했다. 우리 마을에서 돼지를 잡는 날이면 이웃 마을사람들까지 몽땅 몰려들어 돼지고기를 맛보았다.

하지만 지금처럼 삼겹살을 얇게 떠서 불판에 구워먹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저 가마솥에 푹 삶아 소금에 찍어 먹거나 고기를 듬성듬성 썰어 넣어 돼지국밥을 끓여 먹었다. 돼지고기가 소고기보다는 조금 흔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먹고 싶을 때마다 마음껏 먹을 수 있는 그런 고기는 아니었다.

"니는 와 안 묵노? 돼지고기로 묵으모 몸에 두드레기라도 일어나나?"
"아나! 내 꺼까지 다 묵고 돼지처럼 살이나 좀 푹푹 찌거라."
"진짜가? 이 맛난 돼지고기로 진짜로 내가 다 묵어도 되것나? 니 나중에 절대 후회 안 할끼제?"
"그 대신 내로(나를) 대장으로 모실 수 있제?"
"하모(그래). 인자부터 내는 니로 대장이 아이라 아예 은진미륵으로 모시면서 니 뒤에만 졸졸 따라댕길끼다."
"은진미륵?"


그랬다. 어릴 때 나의 별명은 은진미륵이었다. 다른 아이들보다 얼굴이 조금 크고 고기를 아예 입에 대지 않는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었다. 동무들과 마을 어르신들은 나만 마주치면 '은진미륵! 오데 갔다 오노?'하며 나를 놀려먹었다. 그래서 그런지 어릴 때 나는 '은진미륵'이란 그 별명이 정말 듣기 싫었다.

삼겹살이 있는 밥상
삼겹살이 있는 밥상이종찬
내가 삼겹살을 처음 먹기 시작한 것은 스무살 무렵의 어느 추운 겨울날이었다. 그 당시 나는 창원공단에 다니고 있었다. 그때 현장노동자들은 툭, 하면 회식을 핑계로 공단상가에 모여 삼겹살을 구워먹었다. 하지만 나는 한 점도 먹지 않았다. 그 자리에 있는 것도 싫어 회식비를 미리 내고 그냥 빠져나오기 일쑤였다.

그런 어느 날, 날씨가 몹시 추운 12월의 저녁 무렵이었다. 공장에서 야근을 마치고 공단상가 주변을 지나는데 어디선가 삼겹살 굽는 냄새가 풍겨오기 시작했다. 근데, 갑자기 그 삼겹살이 먹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아니, 삼겹살 냄새가 어찌나 맛있게 나던지 도저히 그냥 집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여기 소주 하고 삼겹살 좀 주이소."
"몇 인 분 드릴까예?"
"1인 분만 주이소."
"1인 분은 팔지 않습니더. 고마 3인 분 하이소. 3인 분도 얼마 안 됩니더."


사실, 그때부터 내 입맛이 바뀌기 시작했다. 삼겹살을 가끔 먹기 시작하다보니, 그동안 그렇게 비릿하게만 보이던 생선도 제법 입에 맞았다. '은진미륵'이란 나의 오랜 별명도 내가 고기를 먹기 시작하면서 차츰 사라져갔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생선이든 육고기든 사족을 못 쓸 정도로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다.

내 아내도 고기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어떤 때 두 딸과 함께 삼겹살을 구워먹다가 백화점에서 일하는 아내 생각에 삼겹살을 조금 남겨둘 때가 있다. 하지만 밤 10시쯤 집으로 돌아온 아내는 그 삼겹살을 본 척 만 척했다. 근데 두 딸은 누굴 닮아 삼겹살을 그리도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다.

지난 일요일 저녁 무렵에도 냉장고 냉동실을 열어본 빛나가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내 주변을 자꾸만 얼쩡대기 시작했다. 오후 6시쯤 되자 푸름이도 "아빠, 밥 안 먹어?"하면서 나를 바라보았다. 오늘 삼겹살을 구워 먹으려면 지금부터 상추도 씻고 파저리도 만들어야 하는데 왜 컴퓨터만 앞에만 앉아 있느냐는 그런 투였다.

"아빠, 오늘 할머니 댁에서 밥 먹는 거야?"
"아니, 왜?"
"냉장고에 아무 것도 없잖아."
"냉장고에 왜 아무 것도 없어?"
"삼겹살도 없고, 상치도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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