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사금파리 부여잡고 5

장판수

등록 2005.01.07 17:07수정 2005.01.07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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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지!!!!”

장판수는 순간적으로 사납게 내달리는 말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고삐를 힘껏 움켜잡았지만 마음 같아서는 허리춤에 차고 다니는 돌 주머니를 끌러 아버지와 같이 싸우고 싶었다. 정신없이 내달린 정혼과 장판수의 말은 얼마 지나지 않아 가쁜 숨을 몰아쉬며 멈추었다. 제대로 여물도 먹이지 못한 터라 말의 힘이 다한 것이었다.


“갈아 탈 말은 구할 수 없으니 말은 쉬게 하고 걷자꾸나. 네 아버지는 곧 쫓아올 것이다.”

그러나 정혼의 말은 장판수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장판수가 여태껏 오던 길을 되짚어 말머리를 돌려 내달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얘야! 그리로 가면 안 된다!”

정혼은 말에 올라 장판수를 뒤쫓으려 했으나 허둥대는 바람에 등자에서 말을 헛디뎌 엉덩방아를 찧어 버렸다. 그 동안에 장판수는 정혼의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거리로 멀어져 갔다.

장판수가 달려갔을 때 모든 상황은 이미 끝난 상태였다. 장한본은 피를 흘린 채 바로 누워 죽어 있었다. 장판수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흐느끼며 아버지의 몸을 살폈다. 장한본의 손에는 피 묻은 편곤이 굳게 쥐어 있었다. 장판수는 그 손을 펴서 편곤을 떼어 놓으려 했지만 굳게 잡은 채 죽은 지라 쉽게 펴지질 않았다. 장판수는 그 차디찬 손을 잡은 채 중얼거렸다.


“아바지, 이 난리가 끝나면 오마니도 찾고 동생도 찾을 기라요, 그런 뒤에 내래 아바지 대신 갑사가 될기라요. 아바지, 안심하시라우요.”

그 순간 장판수의 말을 마치 들었다는 듯 죽은 장한본의 굳은 손에서 스르르 힘이 풀려 편곤이 떨어졌다. 뒤늦게 달려온 정혼이 이 광경을 보고서는 숙연히 엎드려 장한본의 명복을 빌었다. 땅을 팔 도구도 없어 장한본의 시체는 얕게 파인 땅에 흙만 올려놓은 모양새로 가매장되었다. 장판수는 그 무덤 앞에서 오열했다.


“후에 이장해야 마땅하니 이곳을 잘 기억해 두어라. 지금은 갈 길이 멀다.”

정혼은 장판수를 다독이며 길을 떠날 것을 재촉했다. 장판수 역시 마냥 통곡만 하고 있는 게 능사인줄 알 정도로 철이 없지는 않았다. 아버지가 무엇을 위해 목숨을 바쳤는지를 똑똑히 보았기에 더욱 그러했다.

“아버지의 시신조차 당장 제대로 거두지 못하는 불효자식이 물러갑네다. 반드시 이곳으로 돌아올 터이니 불편하시더라도 기다려 주시라우요.”

정혼과 장판수는 그로부터 20일이 지난 후에야 강화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정혼은 장계에 미처 적지 못한 용골산성의 일은 물론 모문룡의 명나라 군사가 저지른 패악 상에 대해서도 낱낱이 고했다. 하지만 조정에서는 모문룡에게 글을 보내 ‘휘하 병사들이 조선의 백성들과 장계를 가지고 온 사람을 살해 했다’는 점을 알리는 것 외에는 별다른 조치를 취할 수 없었다. 정혼은 상소로 인해 용천으로 유배를 갔지만 장계를 전한 공이 있으므로 그 죄가 감해졌고 장판수에게는 겨우 베 열 필이 내려졌다.

“이런 거 필요없습네다. 내래 갑사(甲士)가 되고 싶습네다.”

베를 가지고 온 정혼에게 장판수는 그렇게 요구했다. 정혼은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장판수를 타일렀다.

“갑사가 되려면 무예에 뛰어나야 하는데 너는 아직 나이도 어린데다가 아버지처럼 무예조차 올바로 갖추지 못하였지 않느냐?”

“아버지의 못다 이룬 뜻입네다. 전 꼭 갑사가 될 것입네다.”

정혼의 말에도 장판수는 자기가 직접 높은 사람에 가서 뜻을 전하겠노라고 고집을 부렸다. 정혼은 장판수의 아버지에게 빚을 진 것이라 마찬가지라 장판수의 말을 무시할 수는 없다고 여겨 지필묵을 얻어 한참동안 장문의 소개장을 쓴 뒤 장판수에게 건네었다.

“지금으로서는 내 부탁을 들어 줄 수가 없구나. 이 소개장을 들고 평양으로 가서 그곳 이진걸이란 사람을 만나거라. 그 분이 널 도울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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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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