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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산광산에서 십여리 떨어진 호미봉(好尾峰) 중턱에 위치한 개화군 본영(本營). 언뜻 보기엔 그저 규모가 작은 여느 광산과 다름 없는 풍경이었다. 갱이 곳곳에 파져 있고 군데군데 인부들의 막사가 흩어져 있으며 철광석 등이 어지러이 쌓여 있었다. 제련소와 풀무간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와 망치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운산광산과의 좁은 산길을 제외하면 산물(産物)을 실어낼 마땅한 통로가 보이지 않았다. 병풍처럼 둘러친 능선 속에 오막이 박혀 있는 모습 또한 광산지로서 그리 적합한 입지는 아니었다. 흡사 화적떼의 산채나 관의 눈을 피해 사는 천주교인들의 피난지로나 적당한 지형이었다.
본영의 사격장에 100여명이 넘는 인원이 운집해 있었다. 전날 회의에 참석했던 원로들과 집행부를 비롯한 본영의 장교들과 흑호대 오장(伍長)들, 그리고 산총(散銃)과 오혈포(五穴砲)의 제작에 참여한 군기소(軍機所) 야장이들까지 그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런 대대적인 시범행사를 열기까지는 이미 여러 번의 시험 사격을 거쳤을 텐데도 제작 책임자인 군기소 소장 박 서방의 얼굴은 잔뜩 긴장해 있었다. 권 영수를 비롯한 원로들과 본영의 장교들까지 모인 자리에서 자그마한 실수라도 보일까 염려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박 서방은 연신 옆 자리에 앉은 권기범의 눈치를 살피며 시범회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이미 보총(步銃)과 마병총(馬兵銃), 대포(大砲)와 소포(小砲) 그리고 발화통(發火桶)의 시범까지 여러 차례의 시범회를 이곳에서 치룬 터였지만 새로운 무기를 내놓을 때마다 어린 자식을 물가에 내 놓은 양 떨리고 조마조마하는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다.
드디어 사수들이 사대(射臺)에 들어섰다. 그늘을 만들기 위해 천장을 초가로 얹고 모서리 좌우를 나무판으로 막아 산봉우리나 능선에선 사수들을 감지할 수 없게 한 사대였다.
종이 울리고 사대 위쪽의 군사가 붉은기를 흔들자 호미봉 정상과 좌우 능선에서 흰기가 나부꼈다. 총소리가 들릴 만한 위치에 사람의 흔적이 감지되지 않는다는 신호였다. 만약 사대의 붉은기에 붉은기로 응수한다면 즉각 사격을 중지해야 한다. 인근에 나뭇꾼이나 약초꾼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준비~이!”
사관이 칼을 들어 구령을 붙였다.
[처저적]
동이를 비롯한 다섯명의 사수가 산총(散銃)을 들어 어깨에 견착했다. 보총(步銃)보다 구경이 크고 총열이 위 아래로 나란히 붙은 짧은 뭉툭한 모양의 총이 일제히 과녁을 향했다.
“방포!”
[타타탕-]
거의 어른 엄지손가락이 들어갈 만한 커다란 위쪽 총구에서 엄청난 불꽃과 흰 연기가 뿜어졌다. 겨우 다섯개의 총열에서 터져 나오는 폭발음이 온 사대를 흔들어댔다. 보총(步銃)의 파열하는 듯한 소리보다는 둔탁한 발사음이었으나 더 웅장한 맛이 있었다.
야장이와 원로들 몇 사람은 귀를 막았다.
“준비~이!”
[처저적]
다시 사관의 구령이 울리자 장전 절차도 없이 사수들이 조준을 마쳤다.
“방포!”
[타타탕-]
다시 아래쪽 총구에서 쏟아져 나온 흰 연기와 폭음의 파도가 사대를 휩쓸었다.
“우와~”
하얀 화연(火煙)의 층이 걷히자 삼십 보 앞의 과녁을 응시한 사람들 사이에 작은 술렁임이 일었다. 먹물을 칠한 사람 모양의 송판 과녁이 산산이 뜯겨 있었다.
“재-장전!”
사수들이 총의 어깨판 위를 꺾은 후 꼭 엄지손가락 굵기와 길이 만큼이 되는 총환을 각각의 위 아래 약실에 밀어 넣었다.
“방포!”
[탕]
“방포!”
[탕]
다시 두차례의 일제 발사가 연거푸 이루어지고 사대의 사수들이 총을 거치했다. 사수들이 자기 과녁을 뽑아 사람들 앞에 내보였을 때 여기저기 경탄의 말이 터져 나왔다.
“아니 저게 어찌된 게야?”
“저 헤집어진 송판이 단 네방의 총탄 때문이란 말이야?”
“와.....”
사람 크기의 검은 과녁은 수십군데의 생채기를 입고 짓뜯겨져 있었다. 그게 사람의 몸이었다면 형체를 알 수 없을 만큼 헤집어졌을 것이다.
사람들이 입을 벌리고 놀라는 사이 박 서방이 일어났다.
“이것이 산총이라는 것입니다. 수백개의 철환(鐵丸)을 넣은 소포(小砲)용 유산탄(流散彈)의 원리를 응용한 총입니다. 여덟치 가량 되는 총환에 단일 탄두 대신 한푼 가량 크기의 작은 납구슬을 삼십여개를 넣습니다. 총구를 벗어난 이 납구슬들이 거리에 비례에 넓게 퍼지며 날아가게 됨으로써 근거리에서는 강한 저지력을, 원거리에서는 안정적인 명중률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작은 납구슬이라면 멀리 있는 표적에는 효험이 없을 듯 하옵니다만?”
설명을 들은 개화군의 젊은 장교 하나가 물었다.
“그렇습니다. 제가 원거리라 함은 약 오십보 이내를 일컫는 말입니다. 칠십보 이상을 넘는다면 살상력은 기대하기가 어렵습니다. 삼십보의 거리라면 한자 반 지름의 원 안에 삼십개의 납환이 거의 들어갈 것이니, 오늘 세발을 적중시킨 이 과녁을 예로 하면 여기엔 적어도 팔십여개 이상의 구멍이 나 있다고 볼 수 있지요.
그러나 오십보 거리라면 두자 가량의 지름을 가지는 탄막을 형성하게 되고 사람 크기의 표적에는 삼십개의 납구슬 중 반 수 가량만 적중하게 될 것입니다. 칠십보 이상이라면 적중하는 납구슬의 수효가 3할을 채 넘지 못할 것이니 기껏해야 7~8개의 구멍만이 남을 것이며 그나마도 납환이 위력을 상실한 터라 큰 상처를 남기리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대략 사거리가 오십보 이내가 된다 이 말씀이오니까?”
박 서방의 설명이 끝나자 젊은 장교가 정리하며 물었다.
“그렇다고 볼 수 있지요”
“보총의 유효사거리가 삼백보이고 마병총이라 해도 이백보가 넘습니다. 그렇다면 겨우 오십보 거리의 유효사거리를 갖는 이 총을 사용할 이유는 없지 않겠습니까?”
이번에 다른 청년 장교가 의문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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