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함께 서해바다에 간 까닭은?

입시교육에 빼앗긴 단란했던 저녁시간

등록 2005.03.17 23:56수정 2005.03.18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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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격포 채석강

격포 채석강 ⓒ 안준철

아들과 함께 서해바다에 다녀왔다. 아들과 단둘이서만 여행을 해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내는 여행 얘기를 꺼내자 호들갑을 떨며 좋아했다. 자기가 끼는 것보다는 두 남자만 여행을 가는 것이 훨씬 분위기가 좋을 거라는 말까지 했다.

아내가 그렇게 말한 것은 아내 나름대로 계산속이 있어서였다. 그런 아내의 속내와는 상관없이 나는 아들과의 여행이 기다려졌다. 문득, 풀밭에서 마냥 즐겁게 뛰놀던 다섯 살배기 아들의 모습이 생각나기도 했다.

아들 녀석과 풀밭에서 놀다가
언덕배기 꽃그늘에 잠깐 숨었다
잠깐이었다, 아주 잠깐
아들 녀석 애처로운 눈에
눈물 고인 것도
내 가슴 저미어
고개 내민 것도.

-시, 「잠깐 사이」 모두


그 무렵, 나는 아들을 데리고 방천 둑길로 산책을 나가곤 했다. 맑은 시내가 흐르는 둑길 아래에는 토끼풀이 유난히 많아서 산책을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이면 아들의 손가락과 팔목, 심지어는 목덜미와 이마에까지 온통 시계꽃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집에 가까워져서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리기 시합을 하기도 했는데, 그러다보면 아들도 나도 마치 저녁노을이 내려앉은 것처럼 눈 주위가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것을 본 아내는 누가 부자지간이 아니랄까봐서 그렇게 붕어빵이냐고 놀리며 깔깔대기 일쑤였다.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나는 아내와 상의하여 안방에 있던 텔레비전을 없애버렸다. 글을 깨치기가 무섭게 책에 빠져든 아들 곁에서 우리 내외도 함께 책을 읽거나 대화를 하며 저녁 시간을 보내기로 한 것이다.

텔레비전이 사라진 집안 풍경은 사뭇 달라져 있었다. 처음에는 텅 빈 저녁 시간이 길게만 느껴졌지만 차츰 맛있는 독서와 음악과 대화의 시간들로 채워지면서 우리의 저녁 시간은 풍성해져만 갔다.


a 격포 해수욕장

격포 해수욕장 ⓒ 안준철

어느 날인가는 아내가 갑자기 내 앞에 종이 한 장을 내밀더니 아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저녁을 꼭 집에서 먹겠다는 내용의 각서를 쓰라고 했다. 그만큼 아내는 나를 아들 곁에 두고 싶어 했다. 나는 장난 섞인 기분으로 각서를 써 주었고, 그 후로는 밖에 볼일이 있는 날에도 꼭 집에서 저녁을 먹고 나갔다.

하지만 직장 동료들과의 회식자리가 문제였다. 대개는 예외 규정이 적용되기도 했지만, 몇 번인가는 집에서 가짜 식사를 하고 밖에 나가 진짜 식사를 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아들은 나를 닮아 유난히 초저녁잠이 많았다. 저녁 9시가 채 못 되어 눈꺼풀이 내려와 잠자리에 들곤 했는데, 그 대신 새벽 4시 반이면 자명종소리와 함께 어김없이 일어나 아침 공부를 시작했다. 그때마다 잠을 깨워주는 역할은 내가 맡았다. 아들은 5분가량 내 품에서 뜸을 들인 뒤에 세수를 하고 맑은 정신으로 두 시간 가량 아침 공부를 한 뒤에 학교에 가곤 했다.

어둑한 학교 운동장을 몇 바퀴 돌고 들어와 공부를 하기도 했다. 물론 아들 곁에는 늘 내가 있었다. 학원을 다니지 않아도 제 스스로 하는 아침 공부 덕에 성적도 꽤 좋은 편이었다. 모든 것이 충만하고 행복한 나날들이었다.

행복한 삶에 균열이 온 것은 아들이 고등학교에 입학한 뒤부터였다. 입학식이 끝나고 집에 돌아온 아들의 안색이 어두워보였다. 저녁 식사를 하면서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자 아들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a 격포 채석강에서

격포 채석강에서 ⓒ 안준철

“저 이제 집에서 저녁 밥 못 먹어요. 내일부터 보충수업하고 밤 10시까지 자율학습도 한대요. 담임선생님께 희망자 조사를 먼저 해야 하지 않느냐고 말씀드렸더니 희망자 조사는 다음 주에 한다는 거예요.”

아들은 보충수업이나 자율학습을 학생의 희망여부에 상관없이 강제로 실시한다는 사실보다도, 보충수업을 먼저 하고 나중에 희망자 조사를 하는 뒤바뀐 순서에 대하여 아무런 의식도 없이 당연한 듯이 말해버린 담임선생님의 태도에 마음의 상처를 입은 듯했다. 아들의 말이 이렇게 이어졌다.

“저녁은 꼭 집에서 먹고 싶다는 말씀을 드리려고 했어요. 저는 혼자 공부해야 더 잘된다는 말씀도 드리고 싶었고요. 그런데 담임선생님이 어떤 표정을 지으실지 겁이 났어요.”

아무튼 그날로 충만하고 행복했던 저녁 시간은 끝이 나고 말았다. 나는 지금도 아들과 저녁 식탁에 마주 앉을 수 없었던 시간들이 아쉽게만 느껴진다. 단지 아이들을 학교에 오래 붙잡아두기 위해서 소중한 가정교육의 기회를 빼앗아버린 처사도 못마땅하다. 그런 뒤틀린 심사 때문이었을까? 나는 아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날 이런 말을 해준 기억이 난다.

“축하한다. 대한민국 입시지옥에서 무사히 빠져나온 것을. 이제 대학교에 가거든 네가 하고 싶은 진짜 공부를 마음껏 해 보거라.”
그날 씩씩한 목소리로 “예”라고 대답한 아들은 잠시 후 이렇게 말에 꼬리를 달았다.

“저 사실은 아빠 엄마 몰래 하고 싶은 것 다 하면서 학창시절 보냈어요. 아빠가 그러셨잖아요.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요.”

그런 넉살로 나의 꼬인 마음을 풀어준 아들은 이제 대학교 3학년이 되었다. 아들은 2학년 때까지는 작곡 공부를 열심히 하고 3학년이 되면 임용고사 준비를 하겠다고 약속을 한 적이 있는데, 아내는 이번 여행을 통해서 그 사실을 상기시켜주기를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런 아내의 기대를 저버리지는 않았지만, 그보다는 오랜만에 만난 아들과 바다를 즐기기에 더 여념이 없었다.

덧붙이는 글 | 월간지 <사과나무>에 실린 내용을 일부 고쳤습니다.

덧붙이는 글 월간지 <사과나무>에 실린 내용을 일부 고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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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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