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검사 1호'에서 국가인권위원장으로

[정치 톺아보기 84] 조영황 변호사는 누구인가

등록 2005.03.31 18:17수정 2005.03.31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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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원위원회 위원장에 임명된 조영황 국민고충처리위 위원장 ⓒ 연합뉴스

김완기 청와대 인사수석은 31일 노무현 대통령이 조영황 변호사를 국가인권위원장에 내정했다고 발표하면서 인사 관련 참고자료를 배포했다. 그런데 조 변호사의 학력 란에는 '부산 금성중 졸업', 이 한 줄밖에 없었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차관급 이상 고위 공직자 중에서 시쳇말로 이렇게 '가방끈이 짧은' 인사는 없었다.

인사 발표가 있을 때마다 인사수석실이 배포한 참고자료에는 늘 고교와 대학,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대학원(석·박사) 학력이 들어가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랑 중학교 졸업 학력밖에 없었다. 혹시 인사수석실에서 실수로 학력을 누락한 것이 아닐까?

인터넷 인물정보에서 검색해보니 그의 학력이 '한 줄' 더 있기는 했다. '1957 부산 금성중 졸업, 1970 서울대 사법대학원 수료'. 조 변호사는 그 흔한 고입(高入) 혹은 대입(大入) 학력인정 검정고시도 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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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 부산 금성중 졸업, 1970 서울대 사법대학원 수료'가 학력의 전부

조영황 변호사는 1941년 전라남도 고흥군 포두면 출신이다. 그러나 부산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데서 알 수 있듯이 힘들고 어려운 소년을 시절을 보냈다. 그래서인지 조 변호사는 나중에 변호사가 되어 자신이 어렸을 때 경험했던 고생을 기억하며 고향의 어려운 학생들에게 정기적으로 장학금을 보내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중졸이 최종학력인 조 변호사는 군대를 다녀와 65년에 독학으로 제5회 사법·행정요원 예비시험에 합격했으며, 69년 사법시험에 합격하면서 법조인의 길에 들어서게 됐다. 사법시험에 합격한 덕분에 70년 서울대 사법대학원을 수료하게 되었다(현재의 사법연수원이 설치되기 전에는 사법시험 합격자들이 서울대 사법대학원에서 연수과정을 마쳐야 했다).

부산상고 졸업 후에 사법시험에 합격해 법조계에 입문한 노무현 대통령과 비슷하다. 그러나 다른 점이 있다면 조 변호사는 노 대통령과 달리 재조의 판검사로 임관을 하지 않고 곧바로 변호사 개업(71년)을 한 것이다.

평범하고 성실한 변호사였던 조 변호사가 일약 유명세를 탄 것은 지난 88년 부천경찰서 성고문 재정신청사건 때였다. 조 변호사는 당시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공소유지담당 변호사를 맡아 국민적 관심사였던 문귀동 피고인에 대한 실형 선고를 이끌어내 이른바 '대한민국 특별검사 1호'라는 별칭을 갖게 되었다.

물론 성고문 사건은 당시 검찰의 불기소 처분에 대해 법원이 직접 피의자를 재판에 회부하면서 지정한 공소유지담당 변호사였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에서 특별검사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당시 상황에서 공소유지담당 변호사는 현행법상 특별검사와 가장 기능이 유사한 제도라는 점에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특별검사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다는 점에서, 그에게는 늘 '대한민국 특별검사 1호'라는 별칭이 따라 다닌다.

조 변호사는 그 이후 백화점 사기세일 사건을 승리로 이끌면서 소비자 전문 변호사로 명성을 날리기도 했다.

조 변호사는 ▲89년 '소비자보호단체연합회' 회장 ▲92년 대통령 선거방송 특별심의위원 ▲93년 한국성폭력상담소 '성폭력 위기센터' 자문위원 ▲95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부정부패추방위원장 ▲99년 언론개혁시민연대 언론피해법률지원본부 본부장 등 주로 소비자·성폭력·언론 피해구제 분야에서 활발한 사회참여 활동을 펼쳐왔다.

"변호사도 정년이 있어야" 58세에 은퇴 선언

그러다가 조 변호사는 58세 되던 지난 99년에 전격적으로 '법조 은퇴'를 선언해 다시 한번 후배 법조인들에게 귀감의 표상이 되었다. 흔히 변호사(자격증)에게는 정년이 없는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변호사도 정년이 있어야 하고, 적당한 기회에 '업계'에서 은퇴하는 것이 법조인의 아름다운 삶이라는 그의 지론이었다.

조 변호사는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이제 나이를 먹은 만큼 오래 전부터 변호사 생활을 청산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면서 "남은 여생동안 고향사람들에게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 위해 이미 지난 3월에 간단한 민·형사사건 재판을 담당하는 시(市)·군(郡)법원 판사 임용을 신청해 놨다"고 밝혔다.

사법시험에 합격하면 판검사를 하다가 적당한 시점에 옷을 벗고 나와 전관예우로 한몫 잡는 것이 불문율처럼 간주되는 법조계 풍토에 비추어 보면 변호사로 시작해 검사(특별검사)와 판사(군판사)로 마무리한 조 변호사는 법조 인생을 거꾸로 산 셈이다.

'환갑에 능참봉'이라는 말도 있지만 '대한민국 1호 특별검사'까지 지낸 조 변호사는 그해 30년 변호사 인생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내려가 2000년 2월부터 2004년까지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 전남 보성·고흥 군판사로 4년간 봉사했다.

30여년의 변호사 생활 동안 사건브로커는 물론 동료, 선후배 판검사에게 사건을 청탁한 경우가 한 번도 없을 정도로 청렴하고 검소한 생활이 몸에 배어있어 후배들의 귀감이 되었던 조 변호사는 환갑을 앞두고 고향 사람들에게 봉사하기 위해 낙향을 해 후배 법조인들에게 다시 한번 잔잔한 감동을 안겨 주었다.

그는 고향에서 4년간 판사하는 동안에도 명절 등에 들어오는 선물들이 있으면 항상 직원들과 협의해서 양해를 구하고 돌려주었고 집에 '선물사절'이라고까지 붙여놓았다. 심지어는 '점심 한번 같이하자'는 제의도 4년간 미뤄 원성을 듣기도 했다고 한다.

흔히 사람들은 선한 사람을 지칭할 때 '저 사람은 법 없이도 사는 사람'이라고 얘기한다. 그런데 30년 법조 인생을 산 조 변호사야 말로 '법 없이도 사는 법조인'이다.

조 변호사는 군(郡)판사 시절에 판결문을 안쓴 것으로 유명하다. 물론 게을러서 판결문을 안쓴 것은 아니다. 조 변호사는 4년 동안 군판사로 봉사하면서 판결문을 안썼다. 고향 사람들끼리 낯 붉히고 법을 내세워 싸우지 않도록 '화해·조정'으로 재판을 마무리했기 때문이다.

판결문 안쓰는 것으로 유명한 '법 없이도 사는 법조인'

조 변호사는 2004년 광주지법 순천지원 보성·고흥군법원 판사로 법관직을 정년퇴임한 뒤에 고향에서 농사를 지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국가는 그가 농사꾼 노릇을 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참여정부는 그를 제6대 국민고충처리위원회 위원장(장관급)에 기용했다.

국민고충처리위원장은 원래 비상근이다. 그러나 조 변호사는 지난해 4월 위원장에 취임하자마자 본인 스스로 근무형태를 상근으로 전환했다. 위원장이 비상근이면 조직이 이완될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 따라 직접 상근하며 업무를 수행했다.

조 위원장은 지난해 4월 부임하자마자 고객(민원인) 만족도 위주로 업무 제도와 조직 시스템의 개혁을 추진했다. 비상임위원 주심 제도를 상임위원 중심 주심제도로 전환해 민원처리가 신속 결정되도록 의사결정 구조를 간소화했다. 고충위에 민원이 접수돼서 결정까지 2~3달 정도 걸리는데 제도개선 전담반을 두고 그 기간을 단축했다.

또 군판사 시절 판결문을 안썼던 것처럼 정부의 화해·조정 기능을 강화해 중재조정위원회 제도를 신설해 민원인과 피진정기관의 화해조정을 처음으로 시도했다.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하지 못할 일이 없다는 그의 철학이 고충처리에서도 작동한 것이다.

조 위원장은 또 재임중 '국가행정 옴부즈맨' 법률 제정을 주도해 대통령 직속으로 두는 것을 앞두고 있고, 아시아를 대표해서 IOI(세계옴부즈맨협회) 부총재로 피선되어 국제 위상 높이기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시 3년 미뤄진 농사꾼의 꿈

1년 사이에 이런 성과를 거둔 데는 그의 사람됨이 큰 작용을 했다는 것이 중평이다. 조 위원장은 가끔 노 타이에 운동화 차림으로 출근해 직원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한편으로 직원들 애경사를 직접 챙겨 직원들에게서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또 약속이 없는 날은 도시락 시켜서 사무실에서 점심을 해결했다(그는 법무법인 신화 대표 변호사 시절에도 동료 변호사와 함께 도시락을 이용하여 아낀 비용으로 정박아시설에 성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김광진 고충처리위 상근위원(1급)은 "일체의 가식이 없는 성실과 봉사가 몸에 밴 분으로 지난 1년 동안 정의와 상궤에 어긋나는 일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조 위원장은 고충처리위원장을 끝으로 공직에서 은퇴하면 다시 농사꾼으로 돌아갈 계획이었다. 그런데 '고졸 출신' 김완기 인사수석의 천거로 '중졸 출신' 조 위원장은 그 계획을 다시 3년 더 미루게 되었다. 개인에게는 '불행'일지 몰라도 국민에게는 좋은 일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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