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정통무협 단장기 166회

등록 2005.04.21 07:57수정 2005.04.21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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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이 자를 죽이거나 잡아간다면 나충일은 자신들에게 약속한 금액보다 훨씬 더 많은 보수를 줄 것이 틀림없었다. 그들은 서로의 시선을 마주쳤다. 이미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네놈들은 이곳에 오는 게 아니었다. 내가 손을 쓰지 않아도 이리 천방지축 날뛰면 어차피 네놈들은 죽을 테지만 내 손으로 걷는 게 네 놈들에겐 더 나을 터."


달빛에 드러난 황원외의 얼굴은 구릿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몸집은 왜소했지만 그에겐 야수와 같은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더구나 서서히 치켜 올린 도 끝에선 도기가 일렁이고 있었다. 관외이흉은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날이 얇은 안령도 속에 그의 몸이 감춰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들 역시 험한 강호에 발을 디딘지 이십년이나 지난 노련한 인물들이었다. 황원외란 자는 말로 듣던 그런 자가 아니었다. 둘째가 선수를 쳤다.

"미친 놈. 살려 두려했더니 네 몸을 갈기갈기 찢어주마."

츄르르르----!

철편의 끝에 달린 반자 길이의 철편이 마치 삼두사(三頭蛇)의 모습처럼 갈라지면서 황원외의 하체를 노리며 짓쳐갔다. 황원외가 철편을 피해 신형을 떠올리자 철편은 그의 발을 물려는 살아있는 뱀처럼 머리를 치켜 올리고, 동시에 짧은 쌍검을 든 첫째가 신형을 허공에 띠우더니 황원외의 상체를 향해 쏘아오면서 돌연 그것을 비수처럼 그의 양 어깨를 노리며 날렸다. 싸우는 중에 자신이 든 병기를 던지는 것은 사실 최후의 수단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 수단을 예상하지 못한 황원외가 당황한 듯 몸을 비틀며 날아오는 쌍검을 쳐냈다.

따 --따 --땅---!


그 순간 철편은 그의 종아리를 스치고 지나가면서 찢겨져 나간 옷 사이로 선혈이 터져 나왔다. 어디 그 뿐이라! 쌍검을 쳐내자마자 곧 바로 공기를 가르는 위맹한 소리와 함께 주먹만한 두개의 철환이 그의 허리 쪽을 향해 날아왔다. 자모쌍환(子母雙環)이었다. 크기는 비슷하나 무게가 달라 움직임이 불규칙한 탓에 사용하기도 어려웠지만 당하는 상대로서는 공격방향을 파악하기 어려워 막기 힘든 기형병기였다.

언뜻 황원외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어렸다. 관외이흉이 지독한 자들이라는 소리는 들었다. 하지만 이토록 독랄한 공격을 쉴 새 없이 해올 줄은 예상하지 못한 터였다. 하지만 관외이흉은 손을 쓰면 반드시 상대가 정신 차리기 전에 끝내야 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자들이었고, 그것이 거친 관외에서 터득한 생존비결이기도 했다. 철편을 휘두르는 둘째의 왼손에는 어느새 다섯 개의 쇄심전(碎心箭)이 들려져 황원외의 전신을 노리며 쏘아지고 있었다.


"흡…!"

황원외는 당장이라도 온몸이 난자될 것 같았다. 그는 다급히 신형을 돌리며 구자번신(鷗子飜身)의 신법으로 몸을 회전시킴과 동시에 몸을 둥글게 말아 자모쌍환과 쇄심전을 가까스로 피해냈다. 황원외는 그 동안 실전 없이 지낸 칠년 동안의 공백이 얼마나 큰지 깨달았다. 또한 관외이흉의 성명절기나 그들이 사용하는 초식이 무언지 전혀 알지 못한 채 상대한 자신을 자책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실수는 자신이 선수를 놓쳤다는 점이었다. 말도 필요 없이 이들이 숨기고 있는 병기를 모두 끄집어내기 전에 끝냈어야 했다. 이미 선수를 빼앗긴 그는 더욱 가중되는 그들의 공격에 반격은커녕 피해내기에 급급했다. 숨 돌릴 틈도 없이 몰아쳐 오는 그들의 공격에 위태로우면서도 버티어 나가는 것은 그의 보법(步法)을 가미한 빠른 신법 덕이었다.

촤르르--- 쇄--액

철편의 공격은 너무나 날카로웠다. 그것을 쳐 내기에는 가벼운 안령도를 가지고는 어려움이 있었다. 더구나 피할 곳을 미리 예상하고 간간히 날아오는 쇄금전은 그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이미 도(刀)를 사용하는 자라고 느끼는 순간 던져버린 쌍검 대신에 자모쌍환을 사용한 공격은 아예 상대에게 다가들지 못하게 만들고 있었다.

황원외는 허공에 떠오른 신형을 다시 한번 도약시켰다. 동시에 날아오는 쇄금전을 안령도로 비껴 쳐냈다. 그것은 그의 가슴으로 날아오던 자모금환과 맞부딪쳤고, 마침내 그들의 연수에 조그만 틈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그가 수세에 몰리면서도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렸던 단 한번의 기회였다. 그는 자신의 허리를 파고드는 철편을 무시하고 신형을 거꾸로 하여 내리 꽂혔다.

번쩍---!

그의 도가 어둠 속에서 기이한 한줄기 도기를 뿜었다. 그와 동시에 철편이 그의 허리에 감기며 사정없이 살점을 뜯어냈다. 맹렬한 고통을 느끼며 그는 자모쌍환을 회수하는 인물 옆으로 내려섰다. 그의 신형이 비틀거렸다. 철편의 충격은 살점만 뜯어낸 것이 아니었다. 쇠뭉치로 맞은 듯한 충격과 같이 정신이 아찔해왔다. 아마 이 순간 철편이 또 다시 날아왔다면 그는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을 것이다. 하지만 철편을 든 관외이흉은 자신의 동료를 믿었다. 철편을 맞고 비칠거리며 떨어지는 황원외의 가슴을 자모쌍환이 뚫어줄 것이었다.

헌데 그 순간 자모쌍환을 회수한 자는 자모쌍환을 날리려다 말고 갑자기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 앞이 캄캄해 지며 자신의 코끝을 타고 내리는 뜨뜻한 액체의 감촉을 느꼈다.

(왜?)

그것이 그가 이 생애에 있어 마지막 느낀 감정이었다. 그의 미간에는 손가락 한마디 크기의 혈흔이 나타났고, 가느다란 핏줄기가 얼굴을 타고 흐르는 것이 보였다. 언제 안령도가 자신의 미심을 파고들었는지 알지 못하는 가운데 그의 몸은 고목처럼 뒤로 넘어갔다. 그것을 본 둘째의 눈이 치켜떠지며 짐승과도 같은 고함과 함께 흉포하게 철편을 휘둘러 왔다. 미세해 보이는 도기가 허공을 가른 것 같았지만 언제 당했는지 모르게 첫째가 당한 것이다.

타다---타다닥---!

황원외는 자신의 하체가 피로 축축하게 젖어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 보다 먼저 그는 자신의 대혈을 노리며 쏘아오는 공격을 막아내야 했다. 몸을 한차례 빙글 돌리며 철편을 안령도로 쳐 내면서 급히 상체를 눕히며 쇄심전을 피해냈다. 관외이흉의 둘째는 그가 몸을 눕히자 곧바로 달려들었다. 그의 왼손에는 기이한 한자 길이의 가느다란 봉(棒)처럼 생긴 것을 들고 있었는데 황원외가 몸의 탄력으로 신형을 세우자 곧 바로 철편과 함께 왼손에 든 그것을 날렸다.

슈우육-----

부상당한 황원외였지만 첫째가 죽자 한결 여유가 있었다. 그는 날아오는 물체를 도로 처내다가 황급히 신형을 뒤집어 물러났다. 등짝에 철편이 때리는 충격을 느꼈지만 그는 재차 도를 휘둘러 반이 끊어진 그 물체를 다시 자르며 호흡을 멈췄다. 봉처럼 생긴 그 물체는 길이가 짧고 가는 선홍사(線虹蛇)였다. 여러 가지 색깔이 요사스럽고 등에 한줄기 붉은 선이 그어진 선홍사는 맹독으로 인하여 한번 물리면 열 발자국을 걷지 못하고 죽는다 하여 십보추혼사(十步追魂蛇)라고도 불리는 독사였다.

그것은 관외이흉의 둘째가 몸에 지니고 다닌다는 세 가지 병기 중 지금까지 한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비장의 무기였고, 첫째가 죽자 그는 마지막 무기를 사용했던 것이다. 처음 쳐낼 때 반토막이 났지만 그것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황원외에게 달려들었고 그 때문에 그는 황급히 물러나며 조각냄과 동시에 호흡을 멈춘 것이다.

비릿한 내음이 장내를 휩쓸고 지나갔다. 선홍사의 독은 지독해서 그 비릿한 내음만으로도 치명적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황원외의 입에서 한모금의 선혈이 토해졌다. 견디어 내고 있었지만 등짝에 작렬한 철편에 의해 외상 뿐 아니라 내상도 입었다는 증거였다.

"우욱--!"

하지만 참았던 핏덩이를 뱉어내자 그는 오히려 가슴이 시원해짐을 느꼈다. 동시에 그는 천천히 관외이흉의 둘째를 향해 걸어갔다. 단 일도로 끝내야 했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면 자신이 당할 터였다.

입가에 피를 흘리며 다가서는 황원외를 보며 둘째는 흉신악살을 보는 듯 치를 떨었다. 지독한 것으로는 이미 정평이 나 있는 자신이었지만 상대는 지독한 것 이상의 투혼이 있었다. 그는 두려움을 떨쳐 버리듯 다가드는 황원외를 향해 쇄금전을 다섯 개 쳐냄과 동시에 철편을 맹렬히 휘둘러 갔다. 동시에 그는 다시 왼손에 쇄금전 다섯 개를 쥐며 기회를 노려 다시 날리려 했다.

하지만 황원외의 도와 합치된 신형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랐다. 그의 도가 위에서 내려오는 것을 본 둘째가 몸을 돌리며 철편으로 그의 복부를 노리면서 왼손으로 쇄심전을 그의 가슴을 향해 날리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굉렬한 빛이 자신의 머리를 파고든다고 느끼며 그것으로 그의 사고는 멈춰야 했다.

"……!"

그의 동공에 초점이 사라지고 쓰고 있던 학관이 양쪽으로 갈라지며 미세한 혈흔이 그의 정수리로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입 언저리까지 번지는 듯싶더니 그의 신형이 뒤로 넘어갈 즈음 그의 머리는 양쪽으로 갈라졌다.

쿵---!

그의 몸이 선채로 뒤로 넘어가자 두 쪽으로 갈라진 머리에서 허연 뇌수가 사방으로 튀었다. 언제나 손가락 한마디의 혈흔만을 남기던 황원외의 안령도가 머리 전체를 두 쪽 냈다는 것은 그가 너무 지쳤고, 정교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는 도를 꽂고는 비틀거리는 몸으로 주위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흘린 피야 나중에 처리하면 되겠지만 병기와 시신은 치워 놓아야 했다. 그는 양쪽 옆구리에 관외이흉의 시신을 들고는 비틀거리며 장내를 떠나기 시작했다.

헌데 어둠 속에서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여인이 있었다. 바로 죽은 관외이흉과 함께 이곳에 들어 온 선화라는 여인이었다. 그녀는 소리 없이 나직하게 탄식을 불어냈다. 황원외가 모습을 나타낸 것도 의외였지만 그의 무공은 정말 놀랄 정도로 고절했다. 관외이흉을 혼자서 감당해 낼 정도의 인물이라고는 전혀 생각해 본 바도 없었다.

그녀는 잠시 갈등했다. 지금 부상당한 황원외를 공격한다면 죽이거나 사로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황원외를 잡으러 온 것이 아니었다. 그를 잡고나면 그들은 이곳에서 나가야 했다. 그녀는 도톰하고 윤기가 흐르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그리고는 은밀하게 신형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녀가 움직이고 난 후 또 다시 그녀의 뒤를 소리 없이 따르는 인물이 있었다. 바로 의혹스런 표정을 띠우고 있는 담천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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