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러운 불의 노래 '달집 태우기'

낙안읍성 축제 3일째에 타오른 달집

등록 2005.05.06 22:40수정 2005.05.07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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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집이 타면서 현주민과 관람객들의 소원지가 하늘로 날아가고 있다. ⓒ 서정일

순천낙안읍성 축제 3일째, 첫날부터 생뚱맞은 표정으로 무뚝뚝하게 행사장 한편에 서 있던 달집이 드디어 가슴을 열고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무겁게 내려앉아 있던 하늘도 불기운에 화들짝 놀라 줄행랑이다. 관광객들이 정성들여 써 놓은 소원 종이는 연기되어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무서운 기세로 삽시간에 하늘 높이 날아오른다.

5월 6일, 그 어느 것에 비해 뜨겁게 그리고 화려하게 달집은 등장했다. 하지만 그동안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서 있었음을 안다. 행사장이 꾸며질 때 가장 먼저 한편을 차지하고 있었건만 지나다니는 사람 그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비가 내린 전날, 달집은 혼자 그 비를 고스란히 맞고 처량하게 서 있었던 것.

그 설움의 표현인가? 대나무가 타면서 내는 소리는 굉음에 가깝다. 멀리서 들으면 그건 울부짖음 같다. 솟구치는 불기둥은 온천지를 삼킬 듯 타오르지만 또 이내 마음을 추스른다. 그것은 우리네 민초들의 삶의 모습을 꼭 닮았다. 그리고 농악에 맞춰 강강술래를 부른다. 한 바퀴 두 바퀴 줄지어 돌아가던 관람객들, 어둠이 찾아오자 한 사람씩 자리를 빠져나간다. 낙안 땅에 다시 찾아든 어둠. 그렇게 달집태우기는 끝이 났다.

이날은 어려워 식을 올리지 못한 이들을 위해 전통혼례가 있었다. 그리고 펼쳐진 도립국악단의 국악한마당, 소박한 민중들의 삶을 노래하며 때론 슬프게 때론 경쾌하게 가락을 이어간다.

한민족의 피가 우리의 몸속에 흐르고 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박수와 환호는 공연 중간에도 끊임없이 이어진다. 현대의 그것이 표면적으로 우리의 거죽을 둘러싸고 있지만 가슴속엔 아직도 우리 것이 남아있음이랴. 덩실덩실 춤까지 추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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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립국악단 단원들이 사물놀이 가락을 연주하고 있다. ⓒ 서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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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를 데리고 온 관람객이 횃불을 들고 있다 ⓒ 서정일

이날 공연을 펼친 도립국악단은 무용과 민요, 극과 사물놀이 등 신명나는 장단을 보여줬다. 전통과 현대의 리듬 감각을 새롭게 조화시켜 현대인의 정서에 맞게 재구성한 작품이라 설명하는데 보고 듣다보면 어느새 깊이 빠져드는 묘한 마력이 있었다.

관광객과 현지 주민들의 손에 횃불을 들게 하고 성곽을 돌게 한 것도 그 마력 때문이다. 그리고 성곽을 돌고 구석진 곳에 있는 달집에 불을 지른 사람들은 공연을 보면서 이미 마음의 불을 댕긴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이날따라 달집은 왜 그렇게 큰 소리를 내면서 서럽게 울었을까?

제12회 순천낙안읍성축제는 여느 때와 다른 방식으로 진행된다. 2007년도 문화관광부 지정축제로 선정되기 위해 그동안 지역적인 축제방식을 과감히 탈피한 것. 덕분이 훨씬 짜임새 있고 세련된 축제로 변했지만 토속적인 주민행사는 대폭 축소돼 아쉬움을 남겼다.

덧붙이는 글 | 순천낙안읍성 축제 (5/4-5/8)
http://www.nagan.or.kr

덧붙이는 글 순천낙안읍성 축제 (5/4-5/8)
http://www.naga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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