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사금파리 부여잡고 75

남한산성-닭죽 한 그릇

등록 2005.05.17 17:00수정 2005.05.17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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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네가 본 것을 내게는 말할 수 없다는 것이냐?”
“송구하옵니다. 그것을 따로 필사한 것도 아니고 부정확한 일을 아뢸 수는 없는 일입니다.”

내관은 날카로운 눈매로 계화를 쏘아보았다. 내관은 청나라 진지에서 탈출해온 계화가 따로 아뢸 것이 있다고 한 것에 주시했고 이를 캐물은 결과, 어쩔 수 없이 성을 나가게 된 일과 긴히 전할 말이라는 것이 역모에 관한 일이라는 것 밖에는 알아낸 것이 없었다.


“그렇다면 누구에게 그 일을 아뢸 것이냐?”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주상전하께 직접 아뢰고 싶습니다.”
“네 정녕 무엄하구나. 어찌 너 따위가 주상전화를 독대해 경황이 없는 일을 함부로 아뢸 수 있다는 것이냐. 역모에 대해 알고 있으면서도 아뢰지 않는 것 또한 역모죄로 다스릴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느냐?”

계화는 마른 침을 삼켰다. 내관의 말은 위협일지 모르겠지만 일단 역모라는 말을 내뱉은 이상 주워 담을 수 없다는 사실 또한 분명했다.

“역적들의 연판장이 오랑캐의 진지에 있었습니다. 헌데 이상하게도 여진의 문자로 쓰여 있었사옵니다.”
“그러한데?”
“연판장은 이미 청의 황제 손에 들어갔습니다.”
“그 연판장에 쓰인 이름들이 기억나느냐?”
“그건 말씀드릴 수 없사옵니다.”

얘기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고 말았고 내관은 한숨을 쉬었다.

“나 외에 이러한 일을 발설해준 사람이 있느냐?”
“없습니다.”


내관은 계화를 돌려보내었고 한참을 서성거린 후 온조왕의 사당이 차려진 곳으로 은밀히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 곳에는 언제부터인가 안 첨지가 몸을 숨기며 내관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보시게. 대체 자네는 하는 일이 무엇인가?”


내관은 안 첨지를 보자마자 크게 화를 내며 소리쳤다. 안첨지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내관에게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송구스러울 따름입니다.”
“그 계집이 자네를 알고 있으니 다른 이에게 이러한 사실을 알린다면 어찌 되겠나? 계집 하나 죽이지 못하고 장 초관 그 놈도 아직 시퍼렇게 살아 있으며 평양감사는 무슨 꿍꿍이를 가지고 있는지 알 수가 없네.”
“곧 모두 해결 될 것이니 심려 마시옵소서.”
“심려를 안 하게 되었는가! 윗분들이 이런 일을 알고 직접 언급하게 되면 자네나 나나 끝장일세!”
“주상전하는 어떠신지요?”

안 첨지가 화제를 돌리자 내관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

“주상전하고 신하고 우리고 모두 앞으로 살길만을 찾을 뿐이네. 강화도가 함락되었으니 일은 급히 진행해야 되네.”

안 첨지는 갓을 고쳐 쓰며 사금파리 조각 하나를 내어 놓았다.

“여기에 맹세하건데 그 일은 반드시 성사될 것입니다. 오랑캐들의 세력이 강성해도 장 판수를 보내면 평양감사가 거느린 병력은 반드시 남한산성으로 달려올 것입니다.”

내관은 안 첨지가 내어놓은 사금파리 조각을 밀어내며 자신의 입에 손가락을 대었다.

“내 앞에 다시는 그것을 내보이지 말게나. 난 그 일과 무관하네.”

그 때 성을 뒤흔드는 대포소리가 요란히 울려 퍼졌다.

“저 놈들, 또 쏘아대는군. 포환은 떨어질 곳을 알 수 없으니 항상 두렵네.”

내관과 안 첨지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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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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