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여 차례나 중국을 드나들며 중국을 탐구하고 있는 중국통 김영수씨.조성일
“생각해보니까, 앞에서 말씀드린 제게 감동을 준 또 하나의 역사서 <사기>를 쓴 위대한 역사가 사마천이 2100여 년 전 궁형을 받았을 때 나이가 마흔 아홉이었어요. 사마천이나 백양이나 모두 애초 인생에서 방향을 전환한 점도 비슷합니다. 사마천이 <사기>를 쓸 때 애초에는 한 무제를 찬양했지만 나중에는 비판자로 바뀌었고, 문학을 하다 역사가로 삶이 바뀐 백양 역시 중국 역사의 비판자가 되었잖아요.”
그래서 김영수씨는 ‘사마천과 사기’에 관해서도 글을 써서 지금 한 출판사에서 출간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
역사는 선택적 기억이다!
“<맨얼굴의 중국사>는 중국 민족 자신에 대한 침통한 출격(공격)입니다. 그리고 중국 민족, 인민, 백성에 대한 순백의 사랑이 담긴 사랑이 역사서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통렬하게 비판한 것입니다. 백양의 중국에 대한 사랑의 깊이를 입으로 말할 수 있는 차원을 넘어선다고 봅니다. 그가 <추악한 중국인>을 쓴 것도 말로만 떠드는 진정성이 의심되는 여느 지성인과는 비교할 수 없는 큰 산이라는 걸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맨얼굴의 중국사>에 이끌려 백양에 푹 빠져 ‘자발적 문하생’이 된 김영수씨는 지난해 2월 대만으로 건너가 “넓고 깊은 산”과 직접 마주했다.
| | | 김영수는 누구인가 | | | 50여 차례 중국 오가며 집중탐구한 중국통 | | | | 백양의 문하생을 자처하면서<맨얼굴의 중국사>, <추악한 중국인>를 옮긴 김영수씨의 이름은, 출판가에서는 ‘철수’와 함께 한국에서 가장 흔한 이름 ‘영수’가 될 만큼 저술과 번역서 목록이 여러 권 된다.
역사나 인문 쪽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한번쯤 관심을 가졌을 <지혜로 읽는 사기> <간신은 비를 세워 영원히 기억하게 하라> 등의 저서와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인 <모략> <모략론> <간신열전> <간신론> <임어당 산문집> 등의 번역서가 그의 손을 거쳐 세상에 나왔다.
해군이었던 아버지의 잦은 전출로 경남 진해에서 인천, 서울로 옮겨 다니면서 학교를 다녔던 그는 순전히 수학을 못해서 역사를 공부하게 되는데, 전공하고 보니 체질에 맞아 아예 대학원에 진학, 한·중 관계사를 전공한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박사 학위 논문을 쓰지 않은 그는 이후 지금까지 50여 차례 중국을 오가며 중국을 집중적으로 탐구하고 있는 중국통이다.
전 영산원불교대학교(지금은 선학대학) 한때 교수로 재직했던 연유로 지금 전남 영광에서 살고 있는 그는 매주 수요일이면 서울로 올라와 친구들을 ‘찐하게’ 만난다.
백양의 <백양판 자치통감> 번역에도 도전하고 싶어 하는 그는 요즘 애초 전공인 한국사로의 귀향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 조성일기자 | | | | |
“백양 선생을 막상 만나자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준비해간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냥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습니다. 간절히 보고 싶어서 만났으면 그걸로 그만 아닌가 하는 심정이었습니다.”
‘세기의 거물’을 향한 김영수씨의 그리움이 얼마나 절절했으면 이럴까. 그의 말에서 ‘백양 선생’ 대신 ‘그녀’ 또는 ‘그 사람’으로 치환해도 무방할 이 애절한 ‘연정’은, 사랑하면 모두 ‘시인’이 되게 하듯 김영수씨에게는 그동안의 학문적 여정에 대한 재점검의 기회였고, 날을 새롭게 벼리는 기회였다.
인터뷰 들머리에서 누설했던 ‘닭’ 아닌 또 다른 ‘꿩’이었다는 김영수씨에 대한 기자의 인상비평에서 암시했듯 자칫 이 기사가 김영수씨에 대한 인물탐험이 될 위험성이 있을 것 같아 이쯤하고 다시 본래의 얘기로 돌아가자. <맨얼굴의 중국사>가 취하고 있는 사관이 한쪽으로 치우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그에게 옮긴이의 입장을 물었다.
“역사는 선택적 기억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나열보다 핵심 부분을 골라 엮어야 하는데, 이때 역사가의 주관적 선택이 절대적인 힘을 발휘하지요.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매우 주관적인 역사서라 할 수 있기에 치우쳤다는 지적이 정확하다고 봅니다.”
그의 말을 듣고 보니 이 책은 지금까지 우리가 갖고 있던 역사에 대한 개념(객관적이라는 강한 믿음) 자체를 바꾸라고 강요하는 듯한 대단히 ‘불온한’ 역사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통 역사서를 참고하여 쓴 반정통의 역사서라고 생각하면 맞을 겁니다. ‘사실’은 하나이지만 ‘진실’은 여러 개 일 수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역사는 과연 객관적인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침통한 자기반성 통해 중국인에게 던지는 경종
이달 말경 출간될 백양의 또 다른 저서 <추악한 중국인>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원제가 <醜陋的中國人>(추하고 더러운 중국인)인 이 책은 1984년 미국 아이오 대학에서 ‘추악한 중국인’이란 제목으로 강연한 내용을 묶었다.
백양은 이 강연에서 중국인의 ‘더러움, 어지러움, 시끄러움’을 비롯하여 ‘내부투쟁’과 ‘단결하지 못하는 민족성’ 등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중국 전통문화에는 여과성 병균이 있어 우리 자손을 감염시켜 지금까지 치료하지 못하고 있다”고 결론지었다.
“이 책은 백양 선생이 침통한 자기반성을 거친 다음 자기 민족을 향해 던지는 경종 같은 기록입니다. 백양은 중국의 나쁜 면이 ‘장독문화’에 기인한다고 주장하는데, 싱싱하던 재료들이 장독에 들어가면 다 삭아서 흐물흐물해지잖아요. 그런 민족성을 비판한 것이죠.”
출판사에 협조를 얻어 <추악한 중국인>의 교정지를 구해 읽어보니, ‘중국인’을 ‘한국인’으로 바꿔 읽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더라고 하자 김영수씨는 무릎을 쳤다. 자신도 번역하면서 수차례 그런 생각을 했다고 했다.
"<추악한 미국인>이 나왔을 때 미국 국무부에서는 자신들의 행동지침서로 삼았고, <추악한 일본인>이 나왔을 때 일본에서는 대사였던 저자가 현직에서 그만둬야 했는데, 이게 바로 동양과 서양 문화의 차이 같다는 백양 선생의 지적에 공감합니다. 우리 역시 이 책을 반면교사를 읽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지난해 백양 선생으로부터 “살만큼 살았다. 기다리고 있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받았다는 김영수씨는 이 ‘사랑의 역사서’가 주는 감동은 “사랑은 반성에서 시작되고, 그 반성은 진보를 위한 출발점”이라는 깨달음을 받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