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은 진보를 위한 출발점이다!"

<맨얼굴의 중국사> <추악한 중국인> 우리말로 옮긴 김영수씨

등록 2005.05.19 20:17수정 2005.05.21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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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얼굴의 중국사>를 우리말로 옮긴 김영수씨.
<맨얼굴의 중국사>를 우리말로 옮긴 김영수씨.조성일
애초 김영수씨를 인터뷰하기로 했던 것은, 그가 우리말로 번역해 내놓은 <맨얼굴의 중국사>가 ‘중국 지성계를 파란으로 몰아넣은 논쟁적 중국사’라는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자를 직접 만나 인터뷰했으면 금상첨화겠지만 지은이가 대만에 살고 있어 ‘꿩 대신 닭’이라는 의미가 컸음을 솔직히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기자는 김영수씨와 인터뷰를 하기로 하고 준비에 들어갔고, 그 과정에서 개인적으로 관심을 더 끄는 또 다른 책 <추악한 중국인>도 그가 번역해 곧 나올 예정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렇다면 이왕지사 두 책을 묶어서 함께 얘기를 나누는 것이 좋을 듯싶어 이 인터뷰는 두 책을 함께 다루었다.


본격적인 인터뷰 속으로 들어가기 전에, 인터뷰를 끝낸 후의 소감 한 마디를 미리 누설하면, 김영수씨는 ‘닭’이 아니었다. 그는 그 나름의 세계를 구축해가는 ‘꿩’이었다.

백양, 중국 가장 뼈아프게 비판한 인물

<맨얼굴의 중국사>(전5권)와 <추악한 중국인>(이상 창해 펴냄)의 지은이는 루쉰의 <아Q정전> 이래 중국을 가장 뼈아프게 비판한 인물로 평가받는 백양(柏楊, 중국어로는 ‘보양’으로 발음되나 이 인터뷰 기사에서는 출판사가 사용한 ‘백양’으로 표기)이다.

<맨얼굴의 중국사> (전5권) 표지.
<맨얼굴의 중국사> (전5권) 표지.도서출판 창해
“역사서를 읽고 받은 감동이, 시간이 흘러도 조금도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갈수록 커지는 경험을 두 번씩이나 했는데, 한번은 사마천의 <사기>였고, 또 하나는 이 책 <맨얼굴의 중국사>였습니다.”

그러면서 김영수씨는 <맨얼굴의 중국사>는 자신에게 있어 기적이었다고 했다. 그는 이 책을 읽고 “역사를 연구하고 역사서를 저술하는 역사가의 태도라는 문제를 놓고 깊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사실 역사서로서 <맨얼굴의 중국사>는 단점 또한 적지 않다고 봅니다. 그러나 읽고 난 후의 충격은, 어떤 점이 그러냐고 물으시면 딱 꼬집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단점을 단점으로 생각하지 못하게 할 만큼 컸습니다.”

다만 그는 지은이의 특별한 문체 때문일 수도, 파격적인 서술방법 때문일 수도,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을 겪은 지은이의 독특한 역사관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런 것들로는 자신이 받은 충격을 설명하기 힘들다고 했다.


김영수씨가 이 책을 만난 것은 2001년 1월 3일 늦은 오후였다고 한다. 실질적인 21세기가 시작되던 역사적인 순간을 중국에서 보내게 된 그는 ‘신나는 밤’을 보낸 덕분에 축 늘어져 있다가 허기를 때우고 습관처럼 서점에 들렀다가 그곳에서 겉표지가 붉은색과 푸른색으로 된 두 권의 책 <중국인사강(中國人史綱>(<맨얼굴의 중국사> 원제)을 발견하고 별다른 생각 없이 집어 든다.

그런데 이 책은 대륙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경우로, 지은이가 대만인이었다. 그는 책을 사들고 숙소로 와서 다섯 쪽에 걸친 서문을 읽었다. “9년 하고도 26일에 걸친 긴 고난의 세월 ……"로 시작되는 서문이 그를 사로잡았고, 그렇게 그는 백양과 극적으로 만났다.

화장기 지워낸 중국 역사서

여기서 잠깐, 백양과 <맨얼굴의 중국사>에 대한 사전지식을 제공하는 것이 좋을 듯싶다.

1920년 중국 하남성에서 태어난 백양은 그의 나이 열여덟에 항일전쟁에 참여하게 되는데, 훗날 대륙에 공산당 정권이 들어서자 목숨까지 바칠 만큼 존경하는 장개석을 따라 대만으로 건너간다.

<맨얼굴의 중국사> 지은이인 백양.
<맨얼굴의 중국사> 지은이인 백양.김영수
거기서 그는 중국문화의 병리현상을 냉철히 진단하는 한편, 대만 사회와 관료집단의 추악한 이면을 신랄하게 공격하는 글을 발표했다. 눈엣가시로 여긴 장개석 정권에 의해 1968년 3월 7일 ‘인민과 정부의 감정을 도발’했다는 죄목으로 체포돼 ‘집행되지 않는 사형’을 선고받고 9년하고도 26일 동안 악명 높은 정치범 수용소인 ‘화소도’(火燒島, 훗날 백양의 노력으로 대만 인권운동의 상징이 되었다고 함) 등지에서 복역하다 석방된다.

그가 감옥에 있을 때 <25사>와 <자치통감>만을 참고하여 역사서를 썼는데, 그게 바로 <맨얼굴의 중국사>다.

<맨얼굴의 중국사>는 5천년 중국 역사를 다루면서 중국인조차 이해하는데 애를 먹어야 하는 연호를 모두 없애고, 태조니 고조니 하는 역대 제왕들의 시호 대신 직접 이름을 불러가며, 또 ‘병부시랑’ 같은 변화무쌍한 고대의 관직 명칭을 ‘국방부 차관’식으로 현대화시켜서 서술했다.

그러면서 이 책은 상투적인 중화주의 입장에서 탈피, 화이관 세계를 강요하지 않고, 왕조 중심에서 벗어나 역사적 시공간의 의미를 새롭게 하는 등 화장하지 않는 진솔한 자기반성의 소리가 담긴 역사서이다.

이후의 그의 삶은 인권운동에 적극 나서는 한편 72권짜리 방대한 작업인 <백양판 자치통감>을 발표했다. 이 두 역사서가 문학가로 시작된 그의 삶을 역사가로 바꾸어 놓았다.

피비린내 나는 혁명의 도전장 같은 그의 글은 그를 대만과 마찬가지로 대륙에서도 영향력 있는 필자로 만들었다. <추악한 일본인>과 <추악한 미국인>에 빗대 쓴 <추악한 중국인> 역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2003년 중국의 대표적인 포털 사이트 ‘신랑’(新浪)이 전국의 독자를 상대로 조사한 결과 ‘중국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10권의 책’ 중의 한 권으로 선정되었다.

이런 이력의 소유자였기에 보수, 진보 모두에게서 환영을 받지 못했던 백양은 김영수씨에게는 괴인으로 여겨졌다. 역사서가 소설처럼 읽혀지며 대목마다 후련함에 미소 짓다가 그는 문득 지은이의 감옥 갈 때 나이 ‘마흔 아홉 살’이 뚜렷하게 느껴졌다.

50여 차례나 중국을 드나들며 중국을 탐구하고 있는 중국통 김영수씨.
50여 차례나 중국을 드나들며 중국을 탐구하고 있는 중국통 김영수씨.조성일
“생각해보니까, 앞에서 말씀드린 제게 감동을 준 또 하나의 역사서 <사기>를 쓴 위대한 역사가 사마천이 2100여 년 전 궁형을 받았을 때 나이가 마흔 아홉이었어요. 사마천이나 백양이나 모두 애초 인생에서 방향을 전환한 점도 비슷합니다. 사마천이 <사기>를 쓸 때 애초에는 한 무제를 찬양했지만 나중에는 비판자로 바뀌었고, 문학을 하다 역사가로 삶이 바뀐 백양 역시 중국 역사의 비판자가 되었잖아요.”

그래서 김영수씨는 ‘사마천과 사기’에 관해서도 글을 써서 지금 한 출판사에서 출간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

역사는 선택적 기억이다!

“<맨얼굴의 중국사>는 중국 민족 자신에 대한 침통한 출격(공격)입니다. 그리고 중국 민족, 인민, 백성에 대한 순백의 사랑이 담긴 사랑이 역사서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통렬하게 비판한 것입니다. 백양의 중국에 대한 사랑의 깊이를 입으로 말할 수 있는 차원을 넘어선다고 봅니다. 그가 <추악한 중국인>을 쓴 것도 말로만 떠드는 진정성이 의심되는 여느 지성인과는 비교할 수 없는 큰 산이라는 걸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맨얼굴의 중국사>에 이끌려 백양에 푹 빠져 ‘자발적 문하생’이 된 김영수씨는 지난해 2월 대만으로 건너가 “넓고 깊은 산”과 직접 마주했다.

김영수는 누구인가
50여 차례 중국 오가며 집중탐구한 중국통

백양의 문하생을 자처하면서<맨얼굴의 중국사>, <추악한 중국인>를 옮긴 김영수씨의 이름은, 출판가에서는 ‘철수’와 함께 한국에서 가장 흔한 이름 ‘영수’가 될 만큼 저술과 번역서 목록이 여러 권 된다.

역사나 인문 쪽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한번쯤 관심을 가졌을 <지혜로 읽는 사기> <간신은 비를 세워 영원히 기억하게 하라> 등의 저서와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인 <모략> <모략론> <간신열전> <간신론> <임어당 산문집> 등의 번역서가 그의 손을 거쳐 세상에 나왔다.

해군이었던 아버지의 잦은 전출로 경남 진해에서 인천, 서울로 옮겨 다니면서 학교를 다녔던 그는 순전히 수학을 못해서 역사를 공부하게 되는데, 전공하고 보니 체질에 맞아 아예 대학원에 진학, 한·중 관계사를 전공한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박사 학위 논문을 쓰지 않은 그는 이후 지금까지 50여 차례 중국을 오가며 중국을 집중적으로 탐구하고 있는 중국통이다.

전 영산원불교대학교(지금은 선학대학) 한때 교수로 재직했던 연유로 지금 전남 영광에서 살고 있는 그는 매주 수요일이면 서울로 올라와 친구들을 ‘찐하게’ 만난다.

백양의 <백양판 자치통감> 번역에도 도전하고 싶어 하는 그는 요즘 애초 전공인 한국사로의 귀향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 조성일기자
“백양 선생을 막상 만나자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준비해간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냥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습니다. 간절히 보고 싶어서 만났으면 그걸로 그만 아닌가 하는 심정이었습니다.”

‘세기의 거물’을 향한 김영수씨의 그리움이 얼마나 절절했으면 이럴까. 그의 말에서 ‘백양 선생’ 대신 ‘그녀’ 또는 ‘그 사람’으로 치환해도 무방할 이 애절한 ‘연정’은, 사랑하면 모두 ‘시인’이 되게 하듯 김영수씨에게는 그동안의 학문적 여정에 대한 재점검의 기회였고, 날을 새롭게 벼리는 기회였다.

인터뷰 들머리에서 누설했던 ‘닭’ 아닌 또 다른 ‘꿩’이었다는 김영수씨에 대한 기자의 인상비평에서 암시했듯 자칫 이 기사가 김영수씨에 대한 인물탐험이 될 위험성이 있을 것 같아 이쯤하고 다시 본래의 얘기로 돌아가자. <맨얼굴의 중국사>가 취하고 있는 사관이 한쪽으로 치우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그에게 옮긴이의 입장을 물었다.

“역사는 선택적 기억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나열보다 핵심 부분을 골라 엮어야 하는데, 이때 역사가의 주관적 선택이 절대적인 힘을 발휘하지요.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매우 주관적인 역사서라 할 수 있기에 치우쳤다는 지적이 정확하다고 봅니다.”

그의 말을 듣고 보니 이 책은 지금까지 우리가 갖고 있던 역사에 대한 개념(객관적이라는 강한 믿음) 자체를 바꾸라고 강요하는 듯한 대단히 ‘불온한’ 역사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통 역사서를 참고하여 쓴 반정통의 역사서라고 생각하면 맞을 겁니다. ‘사실’은 하나이지만 ‘진실’은 여러 개 일 수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역사는 과연 객관적인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침통한 자기반성 통해 중국인에게 던지는 경종

이달 말경 출간될 백양의 또 다른 저서 <추악한 중국인>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원제가 <醜陋的中國人>(추하고 더러운 중국인)인 이 책은 1984년 미국 아이오 대학에서 ‘추악한 중국인’이란 제목으로 강연한 내용을 묶었다.

백양은 이 강연에서 중국인의 ‘더러움, 어지러움, 시끄러움’을 비롯하여 ‘내부투쟁’과 ‘단결하지 못하는 민족성’ 등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중국 전통문화에는 여과성 병균이 있어 우리 자손을 감염시켜 지금까지 치료하지 못하고 있다”고 결론지었다.

“이 책은 백양 선생이 침통한 자기반성을 거친 다음 자기 민족을 향해 던지는 경종 같은 기록입니다. 백양은 중국의 나쁜 면이 ‘장독문화’에 기인한다고 주장하는데, 싱싱하던 재료들이 장독에 들어가면 다 삭아서 흐물흐물해지잖아요. 그런 민족성을 비판한 것이죠.”

출판사에 협조를 얻어 <추악한 중국인>의 교정지를 구해 읽어보니, ‘중국인’을 ‘한국인’으로 바꿔 읽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더라고 하자 김영수씨는 무릎을 쳤다. 자신도 번역하면서 수차례 그런 생각을 했다고 했다.

"<추악한 미국인>이 나왔을 때 미국 국무부에서는 자신들의 행동지침서로 삼았고, <추악한 일본인>이 나왔을 때 일본에서는 대사였던 저자가 현직에서 그만둬야 했는데, 이게 바로 동양과 서양 문화의 차이 같다는 백양 선생의 지적에 공감합니다. 우리 역시 이 책을 반면교사를 읽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지난해 백양 선생으로부터 “살만큼 살았다. 기다리고 있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받았다는 김영수씨는 이 ‘사랑의 역사서’가 주는 감동은 “사랑은 반성에서 시작되고, 그 반성은 진보를 위한 출발점”이라는 깨달음을 받았다고 했다.

<맨얼굴의 중국사> 옮긴이인 김영수(오른쪽)씨가  2004년 대만을 방문해 지은이인 백양과 만나 찍은 기념사진.
<맨얼굴의 중국사> 옮긴이인 김영수(오른쪽)씨가 2004년 대만을 방문해 지은이인 백양과 만나 찍은 기념사진.김영수

추악한 중국인

보양 지음, 김영수 옮김,
창해, 2005

이 책의 다른 기사

추악한 중국인은 폐병 3기

맨얼굴의 중국사 (전 5권)

백양 지음, 김영수 옮김,
창해,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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