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소원 낸 삼성, 시간은 누구 편일까

[김종배의 뉴스가이드] 열쇠는 헌재와 국회가 쥐고 있는데...

등록 2005.07.01 08:57수정 2005.07.01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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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은 역시 강했다.

자산 2조원 이상 기업집단에 속한 금융·보험사의 계열사 의결권을 15%로 제한하는 공정거래법 조항에 대해 삼성그룹 3개 계열사가 헌법소원을 낸 시점은 지난달 28일, 신문이 이를 보도한 시점은 30일이었다.

기사의 가치 비중은 낮았다. 극히 일부 신문을 빼고는 모두가 헌법소원 사실을 경제면에 후진 배치했고, 크기도 2~3단으로 줄였다. 누가 봐도 의미 축소, 파장 축소를 기대한 편집 태도였다.

신문이 '알아서 기어야 했던' 연유가 광고 때문이란 사실을 다시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오죽했으면 기자들이 광고주의 압력이 가장 세다고 입을 모으고 있을까.

궁금한 점은 삼성이 초강수를 들고 나온 배경이다. '장사' 이외의 영역에서는 '돌출 행동'을 극력 자제해왔던 재벌의 관행을 깨고 '삐져나오는' 수준을 넘어 '벌떡 일어서는' 수준의 돌출 행동을 한 배경이 뭘까 자못 궁금해진다.

신문은 이에 대해서도 입을 다물고 있다. <한겨레>가 경제면 한 면을 털어 자세히 분석한 게 거의 전부다. 하지만 <한겨레>가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은 삼성의 '위헌 주장', 즉 공정거래법 조항이 재산권과 평등권을 침해했다는 주장에 대한 반박 논리다. 삼성의 돌출 배경에 대해서는 기사 말미에서 간략하게만 짚고 있다.

<한겨레>가 분석하는 삼성의 돌출 배경은 한가지다. "삼성 애버랜드의 금융지주회사 편입 문제라든지, 다음 국회에서 다뤄질 예정인 금융산업법 개정안 같은 중대 사안을 삼성 쪽에 좀더 유리하게 풀기 위한 계산"이라는 것이다.


정보가 없으니 <한겨레>가 던져준 실마리에서부터 길을 놓아야 할 것 같다. 관련해서 눈길을 끄는 '별도' 기사가 하나 있다. 금융산업법 개정안이 지난달 30일 차관회의를 통과했고 다음 주에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국회에 제출될 예정이라는 기사다. 정부의 개정안과는 별도로 열린우리당의 박영선 의원도 개정안을 국회에 이미 제출해놓은 상태라는 정보도 들어있다.

정부의 개정안과 박영선 의원의 개정안은 다르다. 정부안은 재벌 소속 금융회사가 금융감독위원회의 사전 승인을 받지 않고 계열사 지분을 5% 이상 소유할 경우 의결권 행사를 금지한다는 것이고, 박 의원의 안은 초과 지분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데서 더 나아가 아예 매각토록 하는 것이다.


이 두 안이 삼성의 '재산권 침해' 주장에 위배된다는 점 외에 눈여겨 봐야 할 점이 하나 있다. 정부안이든 박영선 의원 안이든 국회에서 그대로 처리될 경우 삼성은 후계 구도에 적지 않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삼성카드는 삼성그룹의 사실상의 지주회사격인 애버랜드의 지분 25.6%를 보유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산업법이 개정돼 5% 이상 초과 지분을 매각하거나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할 경우 이건희 총수 일가의 그룹 지배력은 약해진다.

그런 점에서 헌법소원은 아주 유효적절한 고리가 될 수 있다. 의결권 제한에 대한 위헌 논란에 불을 지피면 금융산업법 개정 논의에 제동을 걸 수 있다. 국회에서 "헌법재판소 결정을 보고 난 뒤에 논의하자"는 주장이 탄력을 받을 경우 삼성은 시간을 벌 수 있다.

이같은 추측을 뒷받침하는 또 다른 내용도 있다.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은 지난달 30일 CBS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국회에서 정상적인 토론이 막다른 골목에 부닥칠 때면 항상 삼성이 있었다"고 말한 바 있다. "삼성 로비팀의 국회 활동은 잘 알려진 사실"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물론 반대 측면도 있다. 삼성이 호기 있게 헌법소원을 냈지만 만약 합헌 판결이 나오면? 이에 대해 <한겨레>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어떻게 나든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크다는 계산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얻는 것' 목록의 맨 앞자리에는 앞서 말한대로 '시간'이 오를 것이다. 그것도 '한시적인 기간'이 아니라 '전세를 뒤엎을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다. 재벌 계열 금융·보험사의 의결권 제한을 입법화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4년이다. 애초에 '의결권 완전 금지'에서 시작된 논의가 변질에 변질을 거듭하면서 '의결권 제한'으로 선회했고, '의결권 제한'의 방법만 놓고도 1년 반이 걸렸다. 더구나 이 기간 중에 헌법소원과 같은 제동 요인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고리가 걸린 상태다. 이런 상황이라면 '잠시'가 '하염없이'가 되지 말란 법이 없다. 대충 1년 반만 끌면 대선 국면이고 거기에 1년만 더 보태면 정권이 바뀐다. 정권이 어느 세력에게 넘어갈지, 또 그에 따라 의결권 제한 문제가 어떻게 풀릴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무도 모르는 여러 가능성 중에는 '의결권 제한 폐지'가 포함될 수도 있다.

열쇠는 헌법재판소와 국회가 쥐고 있다. 시선이 이들의 발로 향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이들이 가속 페달을 밟을지, 브레이크를 밟을지를 지켜보기 시작했다.

관련해서 한가지 정보를 환기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윤영철 헌법재판소장은 97년 9월부터 삼성전자 법무팀 상임 법률 고문을 지낸 전력이 있다. 경실련이 2000년에 윤 소장에게 직접 물어 들은 정보라고 한다. 일부 경제학자들과 시민단체는 이 점도 주목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헌법재판관 후보로 결정된 조대현 변호사를 반대하고 있다. 조 변호사가 행정수도 특별법 위헌 소송 때 정부측 대리인을 맡았던 전력을 문제 삼아 행정중심도시 특별법에 대한 위헌 소송에 제기된 만큼 공정한 판단을 기대할 수 없다는 논리다.

그럼 윤영철 소장의 전력과 삼성의 헌법소원과의 관계는? 논의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주목해야 하는 대목 가운데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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