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국수와 수제비의 살가운 포옹

<음식사냥 맛사냥 39> '아빠표 수제비칼국수'

등록 2005.08.11 15:13수정 2005.08.12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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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제비칼국수 드셔보셨나요?
수제비칼국수 드셔보셨나요?이종찬
"아빠! 비가 와."
"근데, 왜? 또 수제비 타령이야?"

"그때 아빠가 다음에 비가 오면 수제비칼국수 끓여준다고 했잖아."
"수제비칼국수? 그게 그렇게 먹고 싶어?"


"응. 올해 여름에는 수제비만 몇 번 끓여먹고, 수제비칼국수는 한번도 끓여먹지 않았잖아."
"아빠! 돈 줘. 내가 얼른 가게에 가서 밀가루 사올게. 응? 응? 응?"


게릴라성 집중폭우가 한반도 남쪽을 오르락 내리락거리고 있다. 덩달아 양동이로 퍼붓듯이 쏟아지는 장대비에 밤낮 몸살을 앓을 정도로 지독했던 무더위도 한풀 꺾인 듯하다. 장대비가 퍼붓고 지나간 자리. 비내음이 묻어나는 텃밭 곳곳에서 짙푸르게 자라고 있는 풀잎마다 동글동글 맺힌 물방울이 진주구슬보다 훨씬 더 아름답다.

텃밭 둑을 따라 푸르게 푸르게 기어가는 호박넝쿨 아래에는 노오란 호박꽃이 감추어둔 애호박이 탐스럽게 매달려 있다. 그래. 시커먼 비구름이 오락가락하는 오늘 저녁에는 저 탐스런 애호박을 따서 수제비칼국수나 끓여 먹어야겠다. 저 싱싱한 애호박을 반달모양으로 예쁘게 썰어 팔팔 끓고 있는 수제비칼국수에 넣으면 두 딸들이 얼마나 잘 먹을까.

때 아닌 집중폭우가 오락가락하고 있던 지난 7일(일) 오후 6시, 큰딸 푸름이와 작은 딸 빛나의 성화에 못이기는 척하고 수제비칼국수를 만들기 시작했다. 사실, 나 또한 오랜만에 수제비칼국수를 끓여먹고 싶기도 했다. 게다가 마땅한 반찬거리도 없었다. 두 딸 또한 늘 먹는 된장찌개나 김치찌개보다 조금 색다른 음식을 먹고 싶어 하는 게 분명했다.

소금물을 푼 밀가루에 달걀과 식용유 3~4방울을 떨어뜨리고 반죽을 하면 면발이 부드럽고 쫄깃하다
소금물을 푼 밀가루에 달걀과 식용유 3~4방울을 떨어뜨리고 반죽을 하면 면발이 부드럽고 쫄깃하다이종찬

수제비칼국수는 그 무엇보다도 맛국물을 잘 우려내야 한다
수제비칼국수는 그 무엇보다도 맛국물을 잘 우려내야 한다이종찬
수제비칼국수는 수제비와 칼국수의 두 가지 쫄깃한 맛을 한꺼번에 느낄 수 있는, 우리집에서 만드는 나만의 특별 음식이다. 평소에도 밀가루 음식을 참 좋아하는 내가 '아빠표 수제비칼국수'란 새로운 음식을 만들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앞이다. 서울의 어느 아파트에서 살던 그해 여름, 잊을만 하면 비가 자꾸만 쏟아지곤 했다.


그 잦은 비 때문에 나는 그해 여름에도 툭, 하면 수제비나 칼국수를 자주 끓여먹었다. 게다가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그런 여름날이면 이상하리만치 김이 모락모락 나는 수제비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렇게 수제비를 끓여먹고 나면 칼국수가 또 못 견디게 떠올랐다. 그렇다고 하루 걸러 수제비나 칼국수를 번갈아가며 끓여먹기도 귀찮게 여겨졌다.

그때, 아파트 베란다에서 번개가 반짝, 하고 쳤다. 내가 밀가루 반죽을 얇게 밀어 칼국수를 마악 썰고 있을 때였다. 아니나 다를까. 번개가 치면서 내 머리 속에서도 번갯불처럼 반짝, 하고 떠오르는 음식이 있었다. 그 새로운 음식이 바로 수제비칼국수였다. 그때부터 나는 수제비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칼국수 같기도 한 그 음식의 이름을 '아빠표 수제비칼국수'라고 불렀다.


"아빠! 오랜만에 끓이는 수제비칼국수니까 많이 끓여. 혹시라도 남으면 내일 아침에 또 먹게."
"밀가루 음식은 금방 끓여서 먹어야 제 맛이 나지, 내일 아침까지 두면 불어터져서 먹지 못해. 맛도 없고."

"걱정하지 마! 내가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먹고 말 테니깐."
"아빠! 좀 전에 엄마한테 전화가 왔어. 엄마도 수제비칼국수가 먹고 싶다고 다 먹지 말고 조금 남겨두라는데?"


감자와 호박은 반달모양으로 썰고, 대파는 비껴 썰고, 마늘은 다진다
감자와 호박은 반달모양으로 썰고, 대파는 비껴 썰고, 마늘은 다진다이종찬

반죽을 약간 되직하게 해야 면발을 썰 때 서로 달라붙지 않는다
반죽을 약간 되직하게 해야 면발을 썰 때 서로 달라붙지 않는다이종찬
사실, 수제비칼국수를 만드는 법은 그리 어렵지 않다. 들어가는 재료는 수제비나 칼국수를 만드는 것과 꼭 같다. 국물멸치와 무, 다시마, 양파, 매운고추, 대파뿌리를 넣어 잘 우려낸 맛국물에 감자를 넣고 밀가루 반죽을 그냥 손으로 뜯어 넣은 뒤 양파, 호박 등 각종 재료를 넣으면 수제비요, 칼질을 해서 국수가락을 만들어 넣으면 칼국수가 되는 것이다.

다만, 다른 점은 잘 숙성된 밀가루 반죽을 어떻게 조리하느냐에 달려 있다. 수제비칼국수의 반죽을 만들 때는 칼국수 반죽처럼 약간 되직하게 반죽해야 한다. 그래야 반죽을 약간 두텁게 밀어 1cm 쯤 칼로 넓직하게 썰어도 서로 달라붙지 않는다. 게다가 칼국수처럼 국수가락을 너무 길게 썰지 않아도 된다. 그래야 수제비 같기도 하고 칼국수 같기도 한 수제비칼국수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날, 나는 수제비칼국수를 만들 때 쫄깃쫄깃한 수제비맛을 살리기 위해 국수 가락 일부를 손으로 저민 수제비처럼 약간 넓직하고 짧게 잘랐다. 그리고 부드럽고 미끈거리는 칼국수 맛을 함께 살리기 위해 국수 가락 일부를 칼국수처럼 얇고 길게 잘랐다. 사랑스런 두 딸에게 수제비맛과 칼국수맛을 한꺼번에 느끼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어 잘 우러난 맛국물에 반달 모양으로 예쁘게 썰어둔 감자를 넣은 뒤 수제비 모양의 국수가락과 칼국수 모양의 국수가락을 한꺼번에 집어넣고 국자로 휘이 저었다. 국자로 그렇게 몇 번 휘이 저어야 국수가락이 엉겨 붙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2~3분이 지나자 국수가락이 노랗게 익어 맛국물 위에 떠올라 이리저리 헤엄치기 시작했다.

맛깔스럽게 잘 끓고 있는 수제비칼국수
맛깔스럽게 잘 끓고 있는 수제비칼국수이종찬

자, 쫄깃한 수제비칼국수 한그릇 드세요
자, 쫄깃한 수제비칼국수 한그릇 드세요이종찬
그즈음 푸름이와 빛나가 입맛을 마구 다시며 주방 주변을 자꾸만 얼씬거렸다. 내가 수제비칼국수가 끓고 있는 냄비에 채 썬 양파와 반달 모양의 호박, 다진 마늘을 넣자 푸름이가 상을 펴고, 빛나가 상 위에 수저와 빈 그릇을 올렸다. 둘 다 얼른 먹고 싶다는 투였다. 하지만 나는 결코 서두르지 않았다. 음식이란 것은 마지막까지 정성을 다해야 한다고 하지 않던가.

사실, 여러 가지 다른 음식을 만들 때도 그러하겠지만 수제비칼국수를 끓일 때에도 마지막 마무리가 가장 중요하다. 자칫 서두르다가 달걀을 풀어 넣는 것을 놓친다거나 참기름 서너 방울 떨어뜨리는 것을 놓치게 되면 수제비칼국수만의 독특한 맛을 잃게 되기 십상이다. 게다가 간을 짜게라도 맞추면 애써 만든 음식을 완전히 버리게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아빠! 나는 수제비칼국수 국물보다 건더기를 더 많이 줘."
"수제비칼국수의 참맛은 국물에 있다는 것도 몰라?"

"아빠! 나는 국물도 적당히 넣어줘. 그리고 나 먼저~"
"푸름이가 언니니까 빛나를 먼저 줘야지?"

"알았어. 그 대신 빛나보다 훨씬 더 많이 줘?"
"맛있어?"

"역시 아빠표 수제비칼국수가 최고야."
"나는 아빠가 만들어주는 음식은 뭐든 맛있어."


쫄깃쫄깃 씹히는 맛 끝내주는 수제비칼국수
밀가루 반죽 때 달걀, 식용유 넣어야 부드럽다

▲ 수제비칼국수
ⓒ이종찬

재료/ 밀가루, 감자, 호박, 대파, 양파, 마늘, 집간장, 달걀, 소금, 식용유, 참기름. ※맛국물(국물멸치, 다시마, 무, 매운고추, 양파, 대파뿌리)

1. 밀가루에 소금물을 적당히 붓고, 달걀을 깨뜨려 넣은 뒤 식용유를 3~4방울 떨어뜨려, 표면이 매끈해질 때까지 잘 반죽한다.

2. 냄비에 국물멸치와 다시마, 무, 매운고추, 양파 반 쪽, 대파뿌리 한 쪽을 넣고 센불에서 팔팔 끓이다가 김이 뽀얗게 피어오르면 중간불에서 1시간 정도 우려내 맛국물을 만든다.

3. 감자와 호박은 반달모양으로, 양파와 대파는 채 썰고, 마늘은 다진다. 이때 반달 모양으로 썬 감자는 찬물에 잠시 담궜다가 물기를 빼야 색깔이 쉬이 변하지 않는다.

4. 30분 정도 숙성시킨 반죽을 동그랗게 뜯어내 밀가루를 묻혀가며 얇게 펴서 칼로 1cm 정도 넓직하게 썬다.

5. 맛국물을 중간불에 올리고 감자를 넣은 뒤 수제비칼국수를 넣는다. 이때 위에 뜨는 거품은 모두 걷어낸다.

6. 수제비칼국수가 위로 떠오르면 호박과 양파, 대파, 다진 마늘을 넣고 1∼2분 정도 중간불에서 끓인다.

7. 맛깔스럽게 잘 끓고 있는 수제비칼국수에 달걀을 푼 뒤 집간장으로 간을 맞추고 참기름 서너 방울을 떨어뜨리면 끝.

※맛 더하기/ 수제비칼국수는 반죽을 할 때 약간 되직하게 해야 썰기에도 좋고, 서로 들러붙지 않는다. / 이종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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