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에서 한 철 보낼만한 토굴 하나 없남유?"

[금강산 기행 5]

등록 2005.09.25 21:18수정 2005.09.26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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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북측 사내에게 신발을 통해 우월감을 표시하는 남측 사람의 시선을 가로막고 가족 얘기로 화제를 돌렸다.


"우리는 결혼을 늦게 해서 이제 초등학교 3~4학년, 열 살, 열한 살짜리 아들놈만 둘인디, 애는 있습니까?"

"세 살짜리가 하나 있디요."
"고향은유?"
"이곳 온정립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얼마 전에 남측에서 친일사전을 발간했잖습니까?"

그는 얼마 전에 남측에서 친일사전을 발간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너무 늦긴 했지만 아주 잘된 일이라고 했다.

나는 과거사 청산 얘기가 나오기만 하면 무조건 빨갱이로 몰아붙여 왔던 남측의 보수 세력들에 대해 얘기하려다가 그만두었다. 그들을 청산하지 못하는 한 누워서 침 뱉기였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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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원 이광수 아시디요? 본래 민족주의자였던 이광수가 친일을 했잖습네까? 하지만 말년에 뼈저리게 반성을 했디요. 우리는 그가 비록 친일파였지만 이미 용서했습네다. 미국에 있는 아들이 유골을 찾아 달라 요청했는데 우리의 위대하신 김정일 국방위원장께서 그 유골을 찾아낼 것을 지시해서 발굴해줬단 말입니다. 친일파였지만 우리 북측에서는 동포애로 용서하고 감싸 줬단 말이지요."


나로서는 북측에서 춘원 이광수의 아들에게 유골을 찾아 줬는지에 대해 사실 여부를 확인할 길이 없었으나 북측 사내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친일파들을 맹렬하게 비난 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용서를 얘기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제 겨우 친일인명사전을 내놓고 있었지만 이미 오래전에 말끔하게 친일파 청산을 했던 북측은 이제 용서를 말하고 있는 듯 보였다.

친일파 얘기만 나오면 빨갱이 운운하는 남측의 보수 세력들은 이 얘기를 듣고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지금이 때가 어느 땐데 경제나 살릴 일이지, 과거사 청산 운운 하고 있으니 한심할 노릇이지, 빨갱이들도 친일파에 대해 관용을 보이고 있는 이 판국에 무슨 얼어 죽을 친일파 타령들이야'

한마디로 쓸개 빠진 헛소리다. 그 관용은 북측처럼 친일파들을 청산한 이후에나 가능한 것이다. 이제 겨우 친일인명사전을 펴낸 남측으로서는 친일파에 대해 관용을 베풀 단계가 아니다. 남측에서는 시도만 했을 뿐 단 한 번도 속 시원하게 친일파를 청산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친일파 청산 문제는 이제 시작에 불과한 것이다.

그 사내, 북측의 환경감시원과 마주앉아 40분 정도 얘기를 나눴다. 상팔담 정상에는 더 이상 사람들이 올라오지 않았다. 온통 구름에 뒤덮여 주변 경치를 감상 할 수 없게 되자 다들 잠시 가쁜 숨을 내려놓고 하산했다. 실내화 운운하던 남측 사람도 이미 오래전에 내려갔고 검은 안경을 쓴 또 다른 북측 환경감시원과 도란도란 얘기하던 남측 사람마저 내려갔다. 상팔담에는 우리부부와 남측 안내원, 북측 산악구조대원과 환경감시원들만 남았다.

오르락내리락 하던 발길이 뚝 끊기자 다람쥐 한 마리가 내 발 아래로 다가와 얼쩡거렸다. 손을 내밀자 바싹 다가왔다. 하지만 손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이내 되돌아가 버렸다(금강산 다람쥐들은 사람들 손에 올라와 먹이를 먹고 갈 정도로 사람들을 두려워하질 않는다). 나는 문득 상팔담 저 만치 아래로 구름이 조금씩 걷히고 있는 것을 보았다.

구름 사이로 구룡폭포가 가물가물 보였다. 나는 잽싸게 카메라를 꺼냈다. 북측 사내와 오래 동안 얘기한 보람이 있었다. 구룡폭포는 구름 사이사이로 신비로운 자태를 들어내고 있었다. 구름 위에 떠서 구룡폭포를 내려다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a 상팔담에서 본 구룡폭포. 구름 사이로 잠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상팔담에서 본 구룡폭포. 구름 사이로 잠깐 그 모습을 드러냈다. ⓒ 송성영

몇 컷의 사진을 찍자마자 구룡폭포는 다시 구름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정상 담화를 나눴던 그 북측 사내에게 함께 내려가자고 했더니 밑에서 간식거리를 팔고 있는 동료들과 함께 뒷정리를 하고 따라 갈 터이니 먼저 내려가라고 했다.

구룡연 산행 길을 되돌아 반쯤 내려가고 있는데 그 북측 사내가 성큼 성큼 다가왔다. 검은 안경을 쓴 또 다른 환경감시원과 함께였다. 북측 사내의 걸음걸이가 가벼워 보였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상의가 펄럭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상의를 풀어 헤쳐 안에 흰 러닝이 훤히 보였다. 이틀 동안 북측 사람들을 여럿 보았지만 상의를 풀어헤친 자유분방한 모습은 그 사내를 통해 처음 보았다.

그와 얘기를 나눈 시간이 불과 한 시간도 채 안 됐지만 산에서 만난 인연 때문일까. 왠지 모르게 그가 친숙하게만 느껴졌다. 그 역시 내게 흐트러진 자세를 보일 정도로 가깝게 다가왔고 금강산은 그렇게 남북을 이어주고 있었다.

그 북측 사내와의 담화는 계속됐다. 아내는 검은 안경을 쓴 북측 환경감시원과 함께 얘기를 했다. 본래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생각나는 대로 말을 던져 주변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드는 아내, 푼수기 다분한 아내는 남측 사람들과 대화 하듯이 그 검은 안경의 북측 사내에게 앞뒤 가리지 않고 질문 공세를 퍼부었던 모양이다.

아내가 쏟아 놓은 질문은 '지금도 새벽별 보기 운동을 해가며 죽도록 일만 하느냐' 따위의 학창시절 악의적으로 배워야 했던 것들이었다. 그 사내는 어처구니가 없어 하면서도 친절하게 대답을 해주더라는 것이다. 북측 사람들은 모두가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는 남측의 공무원들이나 다름없다고.

대한민국의 평범한 통일 의식을 지닌 아줌마, 아내는 북측사람들을 만나 얘기하는 과정에서 북측에 대해 새롭게 눈을 뜨고 있었다. 북측 사람들 모두가 뻣뻣한 줄 알았는데 다들 부드러운 편이었다는 평을 내렸다. 학교에서 배운 것이 얼마나 엉터리였나를 실감하고 있었다. 특히 그 검은 안경의 사내가 말한 "하나 하나의 힘이 모아지면 큰 하나가 된다'라는 북측의 '하나 철학'에 감동했다고 한다.

북측 환경감시원들과 우리 부부의 대화는 점심 식사를 하기로 한 목란관까지 이어졌다. 나는 상팔담 정상에서 주변 사람들을 의식해 말하지 못한 북핵과 미군 문제를 얘기했다. 그 얘기를 먼저 꺼낸 쪽은 나였다. 그와 나눴던 얘기들을 다 적는다면 아마 이 글은 실리지 않을 것이고 만약 실리게 된다 해도 국가보안법에 걸리게 될 것이었다. 국가 보안법은 북측사람들과 허심탄회하게 터놓고 얘기할 수 없게 만드는 법이기도 했다.

a 구룡연 산행길 입구에 자리한 목란관. 북측에서 운영하는 식당이다.

구룡연 산행길 입구에 자리한 목란관. 북측에서 운영하는 식당이다. ⓒ 송성영

우리는 목란관 앞에서 악수를 나눴다. 나는 북측 사람과 처음으로 손을 잡아 보았다. 그의 손아귀에서 힘이 실려 왔다. 우리는 굳게 잡은 손을 흔들며 쉽게 놓지 못하고 있었다. 언제 다시 잡아 볼 수 있겠는가. 목란관 앞에 모여 있던 남측 사람들이 구경난 듯 우리 둘을 빤히 쳐다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가 먼저 입을 뗐다.

"목란관에서 식사 대접을 했으면 좋겠는디, 안 되겠쥬?"
"손님이신데 제가 선생님을 대접해야 옳죠. 오늘 같은 명절 날, 집으로 모시고 식사라도 대접하고 싶은데 그럴 수 없어 미안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손을 놓고 헤어졌다. 북측 사내는 씩씩하게 목란관 아래쪽에 놓인 다리를 건너다가 슬쩍 고개를 돌렸다. 나는 손을 흔들어 줬다. 그가 목례로 답하고 고개를 돌렸다. 순간 나는 오늘이 명절이라고 했던 그의 말이 떠올랐다.

금강산 구룡연으로 향하는 관광버스 안에서 안내원들이 그랬다. 오늘이 북측의 큰 명절 중에 하나인 9·9절이라는 것을. 나는 입이 달싹거렸다. 큰 소리로 명절 잘 보내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그러질 못했다. 북측 사내는 이미 보이질 않았다.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북측 사내 역시 단점이 얼마든지 많은데 왜 그 얘기는 쏙 빼 놓았는가'

나는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다.

'누군가 당신에 대해 쥐뿔도 모르면서 헛소리 잘 하는 사람들에게 들은 얘기만 가지고 당신 집에 찾아와 당신에 대해 험담을 늘어놓는다면 기분 좋겠는가? 내가 금강산에 북측 사람들을 만나러 간 것은 험담을 늘어놓거나 싸우러 간 것이 아니었다.'

사실 나는 북측 사람들을 만나 '친일파 문제'나 '미군문제' 말고, 정작 하고 싶은 얘기는 따로 있었다.

'금강산 깊숙한 곳에서 한 철 나고 싶은디, 어디 적당히 지낼만한 토굴 하나 없남유?'

이 말은 언제쯤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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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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