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정통무협 단장기 275회

등록 2005.09.30 07:59수정 2005.09.30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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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 못했던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너무나 가까이 있었던 관계로 회의무복사내의 공격을 막고 있었던 조국명은 난감한 지경에 빠졌다. 조국명은 급하게 탁자 위로 상체를 구부리면서 몸을 옆으로 굴리려 했다. 허나 그 보다 빠른 것은 풍철한의 손이었다.

퍼퍽!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벽을 치는 듯한 소리가 들리며 여자들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중독 되어 무공을 사용할 수 없을 것이라 믿었던 풍철한의 쌍수에서는 무당의 비기 면장이 시전 되었고, 여자들의 몸은 의자와 함께 요란한 소리를 내며 뒤로 나동그라졌다.

“분명… 중독되었는데 어떻게…?”

독접이 놀란 듯 나직하게 부르짖자, 풍철한이 씨익 웃었다.

“너무 봐준 것이 잘못이지. 치명적인 독을 썼다면 움직일 수 없었겠지만 이 정도라면 한 시진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것 같군.”

그 말이 끝나기 전이었다. 갑작스럽게 배 전체에 강렬한 충격이 오며 선실 안이 급격하게 흔들렸다. 동시에 하나의 물체가 허공에 붉은 선을 그으며 선실 창 안을 뚫고 들어왔다.


우지직--- 털썩--

그것은 물체가 아니라 사람이었다. 바로 갑판 위에 있었던 호위무사 중 하나였고 붉은 선은 그의 입에서 쏟아지는 선혈이었던 것이다. 자리에 앉아 있었던 인물들이 모두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호위무사가 선실 안까지 던져질 정도라면 이미 선실 밖은 누군가에 의해 완전히 제압당했다는 의미다.

“균대위에 소속되는 순간부터 나란 존재는 없어. 친구를 만나던, 계집을 끼고 뒹굴던 모든 것이 조직에 보고 되는 것이지. 그게 균대위야.”


그 와중에서도 풍철한은 아주 친절하게(?) 끝내지 못했던 설명을 하고 있었다. 균대위의 구성원은 모든 것과 단절되고, 자신의 존재조차 매몰된 채 오직 조직 속의 한 개체가 된다는 의미다. 이것은 균대위가 처음 조직되었을 때 확립된 원칙이었다.

구파일방을 비롯하여 다양한 문파에서 선발된 인물들이 자파에 대한 미련이나 개인적인 감정을 가지면 균대위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일단 떠나온 문파로 다시 돌아간 인물이 없었던 것도 그런 이유였다.

회의무복사내는 어느새 호위무사가 날아 온 창문으로 검을 뽑아 들고는 기쾌하게 몸을 날렸다. 일이 터지고 나서 유일하게 움직이는 인물이었지만 그는 창문을 나서기 전에 비명과 함께 다시 선실 안으로 튕겨 돌아와 바닥에 널부러졌다.

“컥!”

선실 안에 있었던 인물들의 얼굴에 당황함이 떠오른 그 때였다. 단 한 마디 비명소리와 함께 회의무복사내는 두 눈을 까뒤집고 있었다. 가슴에 선명한 장인과 함께 그의 미간에는 호두알 만한 구슬이 박혀 있었다. 바로 열락장에서 정대호의 미간에 박히던 바로 그것이었다.

동시에 선실 안으로 몇 명의 인물들이 들어서고 있었다. 그 중에는 바로 전 쇠구슬을 날렸던 흑구의 모습도 있었고, 뜻밖에도 백렴이 모습을 나타내고 있었다. 너무나 급박한 변화에 운규룡은 정신을 차리지 못할 지경이었다. 풍철한과 조국명까지도 오히려 의아스러울 정도였다.

“악…!”

헌데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독접 호낭자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천정에서 흐릿한 그림자가 움직인 것 같았는데 기이하게도 흑접의 몸은 축 늘어진 채 허공에 목을 매단 듯 엎드려서 탁자 위에 질질 끌리고 있었다. 그녀의 하얀 목덜미는 누군가의 손에 의해 포승줄처럼 옭아매져 있었다.

“나는 독을 좋아하지 않아. 독을 쓰는 자들은 더 더욱 좋아하지 않지.”

목소리의 주인공을 본 조국명의 눈에 감탄의 빛이 흘렀다. 그의 동공에 투영된 인물은 바로 풍철한과 함께 만나고자 했던 사람이었다. 바로 담천의였다.

“정말 그대로 당하실 겁니까?”

곽흔(郭痕)이 탁자 위에 놓인 초혼령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그는 정식으로 임명되지는 않았으나 영목을 대신해 살천문의 총타수(總打手) 역할을 하고 있었다.

“…….”

밖을 바라보는 우교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우교는 창밖에는 언제나 푸른 대나무를 심어 놓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곽흔은 도저히 우교의 마음을 알 수 없었다. 칠주야라면 대비하는데 충분한 시간이 아니었다. 나름대로 준비를 하고는 있지만 문주의 명령이 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형제들을 모두 불러 모을 수 없는 일이다.

“준비를 한다면 그리 쉽게 당하지만은 않을 거요.”

지금까지 말을 아꼈던 잠형각(潛形閣)의 각주(閣主) 잠백(暫魄)의 의견이었다. 우교의 시선이 잠백과 곽흔에게 돌려졌다.

“균대위를 모르는 사람들은 언제나 그런 말을 하지. 비록 균대위가 과거와 같지는 않다고 하나 상대를 파악하지 않고 초혼령이 내려진 적은 없다네. 절대적인 승산이 없으면 초혼령이 발동되지 않는다는 말이네.”

누구보다 초혼령이 가진 위력을 아는 우교다. 균대위가 얼마나 무섭고 치밀한 조직인지를 잘 알고 있는 우교다. 직접 균대위의 수장이자 초혼령주를 곁에서 모셨던 사람이 바로 자신이다.

“더구나 개인적인 일이네. 문주가 아닌 나 하나의 문제로 끝날 것이야.”
“본문에서 그를 노렸던 사실을 모를 리 없습니다.”

비록 조원을 모두 잃고 실패로 끝났지만 곽흔은 직접 그 살행에 뛰어들었었다. 초혼령이 발동된 이유가 그것에 대한 보복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교의 생각은 달랐다. 곽흔이 생각하는 이유도 배제할 수는 없지만 우교는 자신과 관계된 일임을 알았다.

“당화(棠花)는 초혼령을 전달한 자가 내 목을 원한다고 했네. 더구나 초혼령은 대항하지 않으면 지명한 대상만 처리하는 불문율이 있네.”

당화는 낭구가에서 초혼령을 전달 받은 여자를 말함이다.

“문주…!”

“쓸데없이 양쪽 모두의 피해를 늘릴 필요가 없네. 더구나 내 손으로 본문의 맥을 끊을 수 없어.”

잠백과 곽흔은 우교의 생각을 확실하게 알았다. 우교는 문주답게 자신 하나의 희생으로 모든 것을 끝내려 하는 것이다. 그것이 한 문파를 이끌고 있는 문주로서의 책임이기도 했다.

“그럴 수는 없소.”

잠백이 고개를 저으며 결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의외로 일이 순조롭게 풀릴 수도 있네. 균대위는 우리의 적이 아니야. 본 주를 믿게.”

우교는 복안이 있는 것 같았다. 잠백과 곽흔은 우교의 여유 있는 태도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우교가 잠백을 보고 물었다.

“마지막 정리는?”

우교의 물음은 영목으로부터 나온 정보를 바탕으로 살천문 내에 황임이 심어 놓은 자들을 정리했느냐는 의미였다. 잠백이 고개를 숙였다.

“두 명을 놓쳤소. 독접(毒蝶)과 사혼(死魂)…!”

“각주는 큰 실수를 했군.”

“그들은 돌아오지 않았소. 영목이 제거되었다는 소식을 사전에 알았던 모양이오.”

“쫓고 있는가?”

“오일 이내로 그들의 목을 문주 앞에 가져다 놓겠소.”

우교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들을 잡지 말고 쫓기만 하게. 그들이 누구와 접촉하는지, 누구에게로 가는지를 파악하게. 그것이 그들을 죽이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네.”

잠백은 자결하던 영목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는 모든 정보를 토해내고 후련한 듯 세상을 떠났다. 그가 알고 있는 정보는 많지 않았지만 모종의 단서를 잡기에는 충분한 정보였다. 더구나 턱 밑에 비수를 들이대고 있었던 살천문 내의 배신자들을 처단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영목이 토해낸 정보 덕이었다. 친구로서 그는 영목의 명목을 빌었다.

(제 67 장 完)

덧붙이는 글 | 10월 3일 개천절에는 연재를 쉬겠습니다. 독자 분들의 양해를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10월 3일 개천절에는 연재를 쉬겠습니다. 독자 분들의 양해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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