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정통무협 단장기 278회

등록 2005.10.06 08:14수정 2005.10.06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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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연부와 조궁은 함태감을 만나고 나오는 길이었다. 그들의 얼굴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으나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보름여 동안 상대부의 죽음을 조사한 그들은 곧 바로 함태감에게 보고한 후 나오는 것이다. 이제 만나야 할 인물은 연대부라 불리우는 연병문이었다.

“이리 오시지요.”


궁궐 안이라 그런지 매우 조심스러웠다. 길을 찾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아무데나 들어갔다가는 당장 봉변을 당할 우려가 있었다. 그들을 안내하는 궁녀는 열 대여섯 정도의 앳된 소녀였다. 하지만 이미 궁에 들어온 지 꽤 되었는지 조심스런 몸가짐과 함께 궁궐 내의 예법이 몸에 밴 것 같았다.

그들이 안내된 곳은 함태감이 있는 내궁(內宮)을 빠져 나와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는데 꽤 경비가 삼엄하고 드나드는 사람들이 없어 조용한 곳이었다. 궁녀는 자색의 문이 있는 입구까지만 안내하더니 걸음을 멈췄다.

“들어가시면 안내하시는 분이 계실 것이옵니다.”

궁녀는 말과 함께 그들에게 인사를 하고는 뒷걸음질쳤다. 자색의 문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에는 은은한 두려움이 떠올라 있었다. 자색의 문은 허리를 굽혀야 들어갈 정도로 좁고 낮았는데 전연부와 조궁은 왜 궁녀의 눈에 두려움이 떠올랐는지 알았다. 이곳은 자신들이 몸담고 있는 천관(天觀)이 있는 곳이었다.

그들 역시 처음이라서 긴장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자색 문을 열고 들어가자 무복을 입은 이십대 후반의 사내가 그들을 맞이했다.


“낙양지부의 두 분이시오?”

“그렇소. 전연부라 하오.”


“조궁이외다.”

사내의 나이로 보아 자신들보다 천관 내 위치가 높은 것 같지는 않았으나 전연부와 조궁은 먼저 포권을 취했다. 이곳은 천관의 모든 일을 관할하는 중심부였다.

“내밀헌(內密軒) 소속의 좌후범(佐厚範)이오. 연대부께 안내해 드리겠소.”

이미 전갈이 된 모양이었다. 내밀원은 천관 조직 내에 있는 감찰(監察)을 담당하는 곳이었다. 천관에 속한 인물들로서는 가장 꺼려지는 곳이기도 했다. 사실 감찰이란 외부적으로는 큰 힘을 발휘할 수 없지만 내부에서는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일이다.

전연부는 좌후범의 뒤를 따라가며 너무 조용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호위무사로 보이는 인물들이 군데군데 있었지만 그들은 그저 형식뿐일 것이다.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서늘한 느낌이 삼엄함을 깨닫게 해주고 있었다.

“고생들 많았네.”

연병문은 집무실에 있었다. 그의 책상 위에는 서책 뿐 아니라 서류가 잔뜩 쌓여있어 겨우 머리만 보일 정도였다.

“낙양지부의 전연부가 연대부를 뵈오이다.”

“조궁이 연대부를 뵈오이다.”

그들이 목소리가 나는 곳을 향하여 예를 취하자 연병문이 자리에서 일어나 한쪽 탁자로 가면서 그들을 불렀다.

“이리들 와서 앉게나. 매우 피곤할 터인데 쉬지도 못하게 해서 미안하네.”

“별 말씀을… 속하 들이 당연한 일이외다.”

“그래… 뭔가 새로운 것을 알아냈는가?”

전연부와 조궁이 자리에 앉자마자 연병문이 지나가는 투로 물었다. 그리 큰 기대를 걸지 않는다는 모습이었다. 이미 조사는 끝났고, 황제까지 보고가 올라간 상태다. 뒤늦게 가서 조사했으니 새로운 것을 발견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흐음….”

전연부는 헛기침을 했다. 말하기 곤란한 듯한 표정이었는데 그것을 본 연병문이 눈치를 채고 재촉했다.

“뭔가 있는 모양이구먼. 확실치 않아도 괜찮으니 말해보게나.”

그의 재촉에 전연부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느긋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상대부께서는….”

상대부의 말이 나오자 연병문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괴로운 모습이었는데 상대부의 죽음에 대해 마치 자책하고 있는 것 같았다.

“상대부를 잃은 것은 천관 뿐 아니라 대명에 있어 큰 손실이네.”

“반드시 그렇지 만은 아니오이다.”

“무슨 말인가?”

“어쩌면 상대부께서 살아 계실 가능성도 높소.”

“뭣이라고?”

전연부의 말에 연병문은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려는 모습을 보이다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의 얼굴에 경악과 당황스러움이 쉴 새 없이 교차되었다. 그런 모습은 뜻밖이었다. 놀라는 것은 당연하지만 기뻐해야 할 소식에 당황함이라니?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자네들이 조사하면서 새로운 사실이라도 발견한 것인가?”

연병문은 자신의 실태를 깨달은 듯 표정을 고치며 목소리를 낮추었다. 전연부는 내심 연병문의 태도에 실망했다. 연병문의 태도로 보아 짐작이 확신으로 바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내색하지 않고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속하들은 사고가 난 장소에서 약 십 여리 떨어진 곳에 있는 움막을 발견할 수 있었소. 토굴을 파고 나무로 지붕을 이어 비바람 정도 피할 수 있는 곳이었는데 아마 사냥꾼이나 약초를 캐는 사람들이 잠시 머물다 가는 곳 같았소.”

“…!”

연대부의 얼굴에 불편함이 떠올랐다. 자신이 보고받은 내용에는 없는 소식이었다.

“운이 좋았던지 그곳에서 사고를 목격했던 초로의 노인 한 명을 만날 수 있었소. 약초를 캐는 노인이었는데 처음에는 모른다고 딱 잡아떼다가 절대 다시 찾지 않겠다는 약조를 하고는 그 사고의 모든 정황을 상세하게 들을 수 있었소.”

의외였다. 국경 수비대의 보고에서도, 이곳 천관에서 파견한 수하에게서도 그런 움막이 있었다던지, 그곳에 약초 캐는 자가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연병문은 말을 하는 전연부의 얼굴을 세심하게 살폈다. 진위여부를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상대부를 포함한 사신 일행을 습격한 것은 달탄군 뿐이 아니었다 하오. 한인들이 많이 섞여 있었고 한인들이 주동이 되어 오히려 더 잔혹하게 사신일행을 살해했다 하오.”

“한인들…?”

“사신 일행이 강을 건너기 위해 주춤하는 사이 공녀들이 마차에서 내리기 시작해 손을 쓰기 시작했다 하오. 그리고 모래 밑에 매복된 인물들이 나타나고 달탄의 기마병들이 들이닥쳐 무차별 살육했던 모양이오.”

전연부는 차근차근 자신이 들은 것을 말하기 시작했다. 정말 그 광경을 자세히 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내용이어서 연병문은 내심 무척 놀라고 있었다. 기이하게도 전연부의 설명은 실제 일어났던 사실과 별반 다름이 없었다. 그 사건을 목격했다는 노인에게 세세한 부분까지 알아낸 모양이었다.

하지만 정작 듣는 연병문의 얼굴에는 자신도 모르게 그늘이 지고 있었다. 이것은 문제였다. 자신이 올린 보고서에는 전혀 없는 새로운 정보들이었고,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하지만 연병문은 이미 처음 놀라던 상황과는 달리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새로운 내용이 꽤 있군. 하지만 그렇다 해도 상대부가 살아 계시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지 않은가? 그 당시 탈출했다고는 하나 결국 상대부의 시신이 발견되었지 않은가?”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소. 단지 상대부의 시신으로 보이는 뼈 조각과 옷가지가 발견된 것뿐이오.”

“그렇군. 자네 말이 맞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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