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졌던 우리말, 사전으로 통일하자"

국어사전 역사 담은 <우리말의 탄생> 펴낸 최경봉 교수

등록 2005.10.08 19:17수정 2005.10.09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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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우리말의 탄생>을 쓴 최경봉 교수.

<우리말의 탄생>을 쓴 최경봉 교수. ⓒ 조성일


1945년 9월 8일, 경성역(지금의 서울역) 조선통운 창고. 이 곳에는 일본이 패망한 뒤 갈 곳이 없어진 화물 더미가 쌓여있었다. 이 곳에서 수취인이 '고등법원'으로 쓰여진 상자의 내용물을 살펴본 경성역장은 얼마 전 자신을 찾아왔던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 사람들이 찾던 것이 바로 이것이야.'


그 상자 안에는 1929년부터 시작된 조선어사전 편찬사업의 결실, 2만 6500여 장 분량의 조선어사전 원고가 들어있었다. 이 원고는 조선어학회 사건(1942년)의 증거물로 일본 경찰에 압수당했다가 서울고등법원에 신청한 상고가 기각되면서 경성역 창고에 방치되었던 것이다.

a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잃어버렸다가 경성역 창고에 발견된 원고 일부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잃어버렸다가 경성역 창고에 발견된 원고 일부 ⓒ 책과함께

20년 동안 민족적 사업으로 진행해온 조선어 사전 <조선말 큰 사전> 편찬 작업은 이런 우여곡절을 겪으며 1947년 10월 9일 첫 권이 출간됐고, 1957년까지 모두 여섯 권으로 완간된다.

그러나 우리는 누가 왜 우리말 사전을 만들었는지 몰랐다. 독자들의 무관심과 학자들의 직무유기가 빚어낸 풍경화는 <한국의 사전과 사전학>(박형익 지음, 월인 펴냄, 2004)과 <한국어 사전의 역사와 방향>(이병근 지음, 태학사 펴냄, 2000년) 등 단 두 권의 학술서 목록만 그렸을 뿐이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이 두 권의 학술서에다 한 권의 대중 교양서 목록을 더하게 되었다. 최경봉 교수(40·원광대 국어국문학과)가 쓴 <우리말의 탄생>(책과함께 펴냄)이 나왔기 때문이다.

한글날을 사흘 앞둔 10월 6일, 이 책을 펴낸 출판사 '책과함께' 사무실에서 최 교수를 만나 인터뷰했다.


'당연한' 우리말 되기까지... 우리말 사전이 있었다

"우리가 늘 사용하고 있는 우리말은 우리 자신의 존재만큼이나 당연하게 여겨집니다. 그러나 그 말이 당연한 우리말이 되기까지는 우리말 사전의 공이 절대적입니다. 사전은 그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이나 국가의 문화의 독립성 여부까지 규정지을 만큼 중요합니다. 우리말이 진정한 우리말이 되고, 근대언어로 다시 태어난 것은 우리말 사전이 나오면서였습니다."


<우리말의 탄생>의 지은이 최경봉 교수는 사전의 중요성부터 역설했다.

그가 '최초의 국어사전 만들기 50년의 역사'란 부제를 단 이 책의 제목을 '우리사전의 탄생'이 아닌 '우리말의 탄생'으로 한 것도 사전이 나옴으로 해서 명실상부한 우리말이 탄생했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다.

인류 문명의 발전과 함께 사람들은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수많은 사물과 개념을 표현할 수 있도록 문자나 문자의 조합을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자신들의 문자에 따라 그것이 가리키는 개념의 대응관계를 기록해놓을 창고를 만들어 '사전'이라 이름붙였다.

그러나 문자가 있는 언어 공동체라고 해서 모두 사전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 이 세상에는 수천 개의 언어공동체가 있고, 이들이 쓰는 언어 중 수백 개의 언어가 한 나라의 공용어로 쓰이고 있지만, 사전의 혜택을 받은 언어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어머니의 말을 통해 '우리'를 봄으로써, 어머니의 말은 우리의 말로 다시 태어났고, 사람들은 우리의 말을 진정한 우리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다양한 약속과 규칙의 체계를 규범화해나갔습니다. 그리고 그 규범화의 결정체인 사전을 만들었습니다."

'국문'으로 격상했지만, 식민지배가 결정적 걸림돌

"'모두 국문으로 본을 삼되, 한문을 덧붙여 번역하거나 국한문을 혼용할 수 있다'는 고종 칙령으로 한글을 공식문자화하자 국가 공문서는 물론 한글 교과서가 만들어지고, 한글로 된 책이 출판되어 유통되는 등 일대 변혁을 맞습니다."

그러자 그동안 우리말 속에 축적되어온 방대한 어휘의 수집과 정리, 표준이 되는 공식 언어의 지정 등 많은 과제들이 쏟아지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우리말 사전의 필요성이 부각되어 우리말 사전의 편찬이 시대적 과제가 되었다고 최 교수는 말했다.

그러나 일본의 식민지배가 우리말 사전의 탄생의 결정적인 걸림돌로 작용했음은 말할 필요가 없으리라.

주시경 등이 주동이 된 광문회를 중심으로 시작된 조선어 사전 만들기 작업은 1914년 주시경의 사망으로 김두봉이 그 일을 이어받았다가 결국 조선어학회가 맡아 추진하는데, 1929년 조선어사전편찬회가 결성되면서 본격적으로 작업이 시작된다.

그러나 이후 10여 년 간 집필했던 원고는 앞서 이야기한 조선어학회 사건 때 압수당한다.

"경성역 창고에서 다시 햇빛을 본 원고는 대폭 수정의 단계를 넘어 거의 새롭게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조선총독부의 검열을 받는 과정에서 빠졌던 민족의식과 관련된 단어나 억지로 포함시켰던 일본식 어휘들을 소위 민족어 사전에 그대로 실을 수 없었던 거죠. 조선인을 위한, 조선인에 의한 조선어 사전을 위해 불가피했죠."

그래서 수정작업이 시작된 지 2년이 지나서야 조선총독부의 조선인 관리들이 일본에 바치기로 하고 모아두었던 국방헌금 '82만원'을 기부 받아 첫 권을 출간하게 된다.

갈라진 국토, 갈라진 우리말, 갈라진 사전

원고 작성 과정에서 이미 가시밭길을 헤쳐 온 <조선말 큰 사전>은 해방 2년 후인 1947년에 첫 권이 나왔지만 6권으로 완간되기까지는 일제 식민시절의 고통과는 또 다른 우여곡절을 겪으며 10년이란 세월이 필요했다.

a 1947년 나온 <조선 말 큰 사전> 첫째권 표지.

1947년 나온 <조선 말 큰 사전> 첫째권 표지. ⓒ 을유문화사

"<조선말 큰 사전>이 첫 권이 나올 때만 해도 조선어학회는 우리말 연구단체로서의 대표성을 갖고 있었고, 조선어학회의 이름으로 나온 사전이 우리 민족 모두의 문화자산이었습니다. 그러나 좌우합작을 통한 통일노력이 좌절된 후인 1949년 5월5일 나온 둘째 권부터는 남한의 사전이었습니다."

그 사이 남·북한 정부가 들어서며 국토는 분단되었고, 분단에서 비롯된 3년간의 전쟁을 겪으면서 우리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갈라졌고, 우리말 사전을 준비했던 사람들이 갈라졌고, 우리말 사전이 갈라졌던 것이 안타깝다고 최 교수는 말했다.

남한의 <조선말 큰 사전>은 이후 1949년 조선어학회가 한글학회로 이름을 바꾸면서 1950년 6월1일부터 <한글학회가 지은 큰 사전>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한편 북한의 조선어문 연구 기관이었던 '조선어문연구회'에서는 1948년 <조선말 큰 사전> 간행에 착수하지만 한국전쟁으로 중단됐고, 현실적인 필요성에 의해 1956년 <조선어 소사전>을 먼저 발간하게 된다.

"남북한 간의 언어이질화에 대한 우려가 좀 과장됐다고 생각합니다. 외래어에 대해서는 이질화 폭이 크지만 남한의 국어순화와 북한의 조선말 다듬기 결과 오히려 비슷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원을 같이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최 교수는 '통일사전'과 '민족어 사전'을 만드는 일은 우리말을 다시 한 번 재탄생시키는 일이라며, 2009년 출간을 목표로 남북한이 공동으로 추진하고 있는 <겨레말 큰 사전> 사업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언어 이질화 우려는 과장, 남북 우리말 비슷해지고 있다"

최 교수는 2002년 동료 교수들과 함께 낸 <우리말 수수께끼>(김영사)에 사전 편찬에 관한 글을 썼는데, 이를 본 출판사에서 책 출간을 제의해 와 <우리말의 탄생>을 쓰게 됐다.

그는 이번 책을 쓰면서 우리말에 관한 자료들이 의외로 많이 모아져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했다. 묻혀 있는 좋은 자료가 많이 있음을 발견했다는 그는 이 책을 쓰면서 특히 김민수·고영근·하동호 교수가 집대성한 <한국역대문법대계>에 많이 빚졌다고 했다.

최 교수는 이 책을 쓰면서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직후에 걸친 민족사의 격동기에 오로지 우리말 사전 편찬에 인생을 건 사람들의 좌절과 고통, 그리고 완성의 기쁨을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a 1935년 조선표준어사정회의 때의 조선어학회 회원들.

1935년 조선표준어사정회의 때의 조선어학회 회원들. ⓒ 조성일

"규범화의 결정체인 사전의 탄생과 함께 근대적 개념의 우리말이 정립되었다는 점에서 '우리말의 탄생'이라는 다소 파격적인 제목을 붙였지만 궁극적으로 '우리말'은 한국어가 함의할 수 없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고스란히 담아낼 수 있는 유일한 이름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말글을 통해 민족혼을 지키려던 의지의 산물인 '우리말 사전'은 민족 독립, 민족자존의 역사를 고스란히 안고 있다. 그래서 최 교수는 여전히 현재성을 갖고 있는 말이라면서, <조선말 큰 사전> 간행 기념 축하회 청첩 한 구절을 들려주며 인터뷰를 끝냈다.

"우리 민족의 상징이요, 우리 문화의 표상인 언어의 앙양은 실로 우리의 으뜸가는 과업의 하나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시대 그 민족의 말은 그 자체가 그 시대 그 민족 문화의 표상인 것입니다."

최경봉 교수는 누구인가

<우리말의 탄생>을 쓴 최경봉 교수는 어휘의미론을 전공한 국어학자이다. 1993년 고려대에서 <국어 관용어 연구>로 석사학위를, 1997년 <국어 명사의 의미구조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 한국어연수부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치기도 했던 최 교수는 1995년 같은 연구소 국어사전 편찬실에서 편찬원으로 일하면서 사전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지금은 원광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최 교수는 2002년 여러 동료교수들과 함께 쓴 <우리말의 수수께끼>(김영사 펴냄) 를 펴냈다.

특히 최 교수는 '영어공용어론'에 대해 비판적 입장이다. 그는 영어를 공용어로 쓰는 필리핀을 직접 조사연구하여, 영어가 공용어가 되었을 경우 영어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사이의 계층 간 차별이 심화된다는 결론을 얻기도 했다.

최 교수가 쓴 책에는 <우리말이 사라진다면> <영어 공용화 국가의 말과 삶> <우리말 오류사전> <우리말의 규범생성문법 연구> (이상 공저) 등이 있다.

우리말의 탄생 - 최초의 국어사전 만들기 50년의 역사

최경봉 지음,
책과함께,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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