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離別)은 아프다. 사랑하는 남녀의 이별은 더욱 아프다. 잠시만 고개를 돌려도 보고 싶은 연인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얼굴을 확인해야만 안심이 되는 연인이라면, 그들의 이별은 더욱 아프다.
이 세상에 끝나지 않는 잔치는 없다. 만남이 없는 이별도 없고 이별 없는 만남도 없다. 그것이 잠시건, 영원한 이별이건 또 다른 만남을 위해 이별은 다가오게 되는 것이다. 두 사람에게 있어 어차피 예정된 이별이었고, 그 시기가 이제 다가 온 것뿐이었다.
두 사람은 저녁을 하는 동안 내내 말이 없었다. 앞에 놓인 음식도 그저 먹는 것 보다는 휘젓는 일이 많다. 식욕이 있을 리 없고, 울음이라도 터트리지 않는 것이 다행이었다. 지금까지도 떳떳한 이유가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금릉에 도착해서는 더욱 명분이 사라져 버렸다. 이곳은 송하령의 본가가 있는 곳이었다.
지금까지의 일만 하더라도 담천의를 데리고 가 정식으로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는 것이 예의이겠지만 자신의 본가도 들르지 않고 소주를 떠난 사람에게 부모님을 뵙자고 말하기도 어려웠다. 그저 애만 태울 밖에….
"금릉까지 와 그냥 가셨다고 하면 가화가 심통을 낼 거예요."
기껏 생각해서 한 말이 서가화(徐佳花) 핑계라니... 아마 처음 이곳을 떠날 때가 생각나서 일게다. 표사들 틈에 끼어 고개도 들지 않고 있었던 사내. 그저 응어리진 가슴을 안고 자신과 세상을 단절한 채 음울한 눈길을 안으로 갈무리하고 있었던 사내.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요."
할 수 있는 말은 고작 이 말뿐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완연하게 달라졌다. 이곳을 떠날 때 일개 표사였던 그는 지금 중원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두려워하는 초혼령주가 되어 있다. 아직도 험난한 길을 가야 할 터이지만 이제 그에게는 힘이 있었다.
"가화와 함께 소주에 가볼 참이에요."
못내 담가장을 들르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이었을까? 아니면 이미 자신은 담가의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애꿎은 접시 위의 야채만 뒤적거리는 그녀의 눈가에 언뜻 습기가 비친 것도 같았다.
"당신은 당분간 쉴 필요가 있소."
송하령은 많이 야위어져 있었다. 자신이 좋아 같이 다니기는 했지만 험난한 여정이었고, 아무리 배려를 했다고는 하나 힘에 부쳤을 터였다. 피부도 거칠어졌고, 낯빛도 창백했다.
"…!"
할 말은 많았다. 하지만 그녀는 더 이상 말을 하면 울음이라도 터질까봐 말을 하지 못했다. 자신을 걱정해 주는 저 사람도 역시 강행군으로 지쳐있기는 마찬가지. 송하령 자신이야 이제 집으로 돌아가 쉬면 그만이다. 하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은 앞으로도 얼마나 험난한 여정을 걸을까?
그 때였다. 어딘가에서 갑자기 하얀 물체가 빠르게 다가와 식탁 위로 올라와 앉았다.
야옹---
잡털이 하나도 섞이지 않은 조그맣고 하얀 고양이였다. 바로 천산설묘(天山雪猫). 남궁산산(南宮珊珊)이 가지고 다니는 영물이었다. 납작 엎드려 담천의를 바라보는 천산설묘의 붉은 눈은 마치 보석을 박아 놓은 듯 했다.
"산산…?"
설묘가 나타났음은 멀지 않은 곳에 남궁산산이 있다는 의미였다. 아니나 다를까? 남궁산산의 목소리가 들리며 세 명의 남녀가 이층으로 올라왔다.
"담오라버니… 섭섭해요."
여전히 면사를 쓴 상태였다. 그녀의 옆에는 한 쌍의 젊은 남녀가 따라오고 있었는데 눈이 번쩍 뜨일만한 미남과 미녀였다.
"어서 오너라. 산매(珊妹)…."
담천의와 송하령이 자리에서 일어나 남궁산산의 일행을 맞이했다. 남궁산산이 일부러 뾰로통한 목소리로 말했다.
"강남에 오셨으면 전갈이라도 주실 것이지 너무하시는 것 아니에요?"
"미안하구나. 일을 마치고 연락하려 했다."
담천의는 변명을 하느라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송하령이 먼저 남궁산산을 보며 인사를 했다.
"산산언니이신가 보군요. 송가의 하령이에요."
그러자 갑자기 남궁산산이 고개를 저었다.
"저에게 언니란 호칭을 하시면 담오라버니께서 저를 무척 야단치실 거예요."
"예…?"
분명 나이로 보면 송하령보다는 남궁산산이 더 위다. 영문을 몰라 되묻는 송하령에게 남궁산산이 말을 이었다.
"피를 나누지는 않았어도 담오라버니와 소녀는 이미 남매간이예요. 하령언니는 담오라버니의 부인이 되실 분이구요. 소녀에게는 분명 언니가 되시는 거예요."
그 말에 송하령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강남의 세가들 간에는 보이지 않는 끈끈한 유대관계가 있었다. 세가의 자제들 간에도 나이에 따라 보이지 않는 위계질서가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것으로 인해 그들은 서로 스스럼없이 어울릴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송하령 역시 남궁산산에게 언니란 호칭을 사용한 것인데 남궁산산이 이제 그 관계를 확실하게 그은 것이다.
하지만 아직 정식으로 혼인하지 않은 송하령으로서는 여간 껄끄러운 것이 아니었다. 한편으로는 내심 흐뭇하기도 하고 안도가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남궁산산이 정식으로 두 사람의 관계를 인정하자, 이곳에 들어오면서 담천의에게 너무나 자연스럽게 말을 건네는 남궁산산에 대해 혹시나 하는 의심이 눈 녹듯이 사라져 버렸다.
"그렇게 부끄러워하실 것 없어요. 이미 두 분의 이야기는 알만한 사람들은 모두 알아요. 중원의 젊은 사람들은 모두 부러워하고 있죠."
"그건 무슨 말이냐?"
담천의가 의외라는 듯 물었다. 자신들의 소문은 오히려 모르는 경우가 많다. 남궁산산이 아직 목까지 발갛게 물들인 채 고개를 들지 못하는 송하령과 담천의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현 중원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분은 바로 담오라버니예요. 담오라버니의 움직임에 모두 촉각을 세우고 있죠. 그런 분의 곁에서 사랑을 받는 하령언니에 대한 소식은 이미 알려진지 오래 되었어요."
남궁산산이 점점 놀리듯 짓궂게 하는 말에 송하령은 내심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두 사람의 관계가 이미 전 중원에 공표된 것이나 마찬가지라니… 그렇다면 집안에서도 이미 알고 있을 터였다. 일찍 돌아간 서가화에게서도 대충은 말을 전해 들으셨을 터였다. 진작 집에서 불러들이지 않은 것만이라도 다행이라 할만했다.
내심 긴장이 되는 것은 담천의 역시 마찬가지였다. 주목을 받고 있을 것이란 생각을 했지만, 그렇다 해도 상관이 없다고 생각은 했지만 전 무림의 이목이 자신에게 쏠려 있다는 것은 확실히 부담이 되는 일이었다. 그 때였다.
"누님은 언제까지 동생들을 세워두실 셈이오."
남궁산산의 뒤를 따라왔던 젊은 청년이 기다리기 지루했던지 불쑥 끼어들었다. 그 청년은 이마가 넓고 이목구비가 반듯하여 매우 단아하고 귀품이 흘렀다. 입고 있는 옷 역시 보통 사람은 평생 입어볼 수 없는 질 좋은 옷감으로 만들어져 매우 부유한 집안의 자제 같았다.
남궁산산이 고개를 돌리며 혀를 찼다.
"너는 언제나 참을성이 없구나. 아버님께서 그리도 누누이 말씀하셨건만 아직까지… 쯧."
그녀는 혀를 차며 책망하는 듯 했지만 심한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청년은 으레 그런 말을 들었던 듯 싱긋 웃으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남궁산산이 그 모습에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며 청년과 담천의를 번갈아 돌아보았다.
"담오라버니께 인사드려라. 이 아이는 아직 철없는 제 동생이에요."
"남궁가의 정천(正天)이 담대협과 송소저께 인사드리오."
남궁정천. 남궁가 역시 손(孫)이 귀한 관계로 현 남궁가주는 세 남매를 두었다. 남궁정천은 막내였는데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자란 관계로 구김살이 전혀 없고, 매우 영기발랄한 청년이었다. 하지만 그러다보니 어디를 가든 자신이 중심이 되어 화제가 되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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