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총장 사퇴, 보도의 재구성

[김종배의 뉴스가이드] <동아>와 <한겨레>의 진실게임, 명승부 되려면

등록 2005.11.03 09:53수정 2005.11.03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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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표가 수리된 김종빈(왼쪽)검찰총장이 17일 퇴임인사를 하기 위해 정부 과천청사 내 법무부를 방문하여 수사지휘권을 행사한 천정배 법무장관과 악수하고 있다.
사표가 수리된 김종빈(왼쪽)검찰총장이 17일 퇴임인사를 하기 위해 정부 과천청사 내 법무부를 방문하여 수사지휘권을 행사한 천정배 법무장관과 악수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진실게임 양상이 빚어지고 있다. <동아일보>가 어제 1면 박스톱과 4면 전면을 할애해 김종빈 전 검찰총장의 '용퇴'를 부각하는 인터뷰 기사를 싣자 <한겨레>는 오늘 기자칼럼 란을 통해 '오락가락 사퇴'를 전했다.

어떻게 된 걸까? 먼저 두 언론이 전한 내용부터 재구성해 보자.

'장렬한 용퇴'인가, '얼떨결 사퇴'인가

<동아일보>

지휘권이 발동되기 하루 전인 지난달 11일 천정배 법무장관과 김종빈 전 총장이 전화통화를 한다. 김종빈 전 총장이 강정구 교수 구속 수사 의견을 굽히지 않자 천정배 장관이 "법무장관으로서 법적인 모든 조치를 강구하겠다"고 말한다. 김종빈 전 총장이 "도대체 법적인 조치가 무엇이냐"고 묻자 천정배 장관은 "수사지휘권"이라고 답한다. 김종빈 전 총장이 "지휘권 발동 파장을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했지만 설득에 실패한다. 김종빈 전 총장은 더 이상 설득이 어렵다고 판단하고 12일 아침 사표를 써 집무실 책상에 넣어 놓는다. 지휘권 발동 직후 사표를 제출하기로 마음 먹었지만 바로 던지는 것이 항명으로 비칠 것 같아 잠시 시간을 갖는다. 검찰 내부에서 사퇴를 만류했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원칙과 정도를 택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14일 오후 사표를 던진다.

<한겨레>

천정배 장관과 김종빈 전 총장이 전화통화를 한다. 의견이 좁혀지지 않자 천정배 장관이 "그럼 총장님 입장도 있고 하니 수사지휘서를 보낼까요?"라고 물으니 김종빈 전 총장이 "그렇게 해 주십시오"라고 답한다. 14일 오후, 김종빈 전 총장이 "장관의 수사 지휘를 수용한다"며 사표를 법무부에 몰래 보냈다가 철회 의사를 비친다. 하지만 사표 제출 사실이 언론에 공개되자 사퇴를 하게 된다. 김종빈 전 총장은 나가는 순간까지 대검의 연구관들과 과장들, 서울중앙지검 부장들의 퇴진요구에 대해 서운해 한다.



두 신문의 보도는 매우 다르다. <동아일보>는 김종빈 전 총장의 사퇴를 검찰의 독립성을 지키기 위한 '장렬한 용퇴'로 묘사한 반면, <한겨레>는 좌고우면 뒤끝의 '얼떨결 사퇴'로 묘사했다.

<동아일보>에 묘사된 천정배 장관은 '고집불통'이지만 <한겨레>의 앵글에 잡힌 천정배 장관은 상대방의 처지를 고려하는 합리적 인물이다. 천정배 장관은 <동아일보> 지면에서, 김종빈 전 총장은 <한겨레> 지면에서 '거짓말쟁이'가 됐다.


김종빈 전 검찰총장을 단독 인터뷰해 보도한 <동아일보> 2일자 기사.
김종빈 전 검찰총장을 단독 인터뷰해 보도한 <동아일보> 2일자 기사.<동아일보> PDF
검찰 관계자들의 전언을 통해 <동아일보>의 김종빈 전 검찰총장 인터뷰 내용을 반박한 <한겨레> 3일자 기사.
검찰 관계자들의 전언을 통해 <동아일보>의 김종빈 전 검찰총장 인터뷰 내용을 반박한 <한겨레> 3일자 기사.<한겨레> 지면
확인취재는 없었다, 아직도 진실은 평행선 너머

강정구 교수 구속 여부를 둘러싼 입장차와는 별도로 두 등장인물의 인간됨과 명예를 건드리는 사안인데도 이처럼 극명하게 대비되는 보도가 나온 이유가 뭘까? 그 일차적 원인은 취재과정에 있다.

<동아일보>의 보도는 전적으로 김종빈 전 총장의 '고백'에 의존했다. 그래서 생생하긴 하지만 일방적이다. <한겨레>의 보도는 "검찰 및 법무부 관계자"의 말을 종합한 것이다. 하지만 전언이다.

정리하자면 두 신문 모두 확인취재를 하지 않았다. 주장은 전했으나 검증엔 한계를 보인 것이다.

그래서 진실은 아직도 평행선 저 너머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다. 두 신문의 보도 덕분에 독자들의 궁금증은 배가 됐지만 갈증도 갑절이 됐다. 사막의 오아시스 신기루를 본 다음의 허탈함이라고나 할까….

현재로선 두 신문의 제2탄을 기다리는 도리밖에 없지만 한 가지 당부할 건 있다. 두 신문은 지휘권 발동을 놓고 '부당 대 정당'으로 논조를 달리한 적이 있다.

하지만 김종빈 전 총장의 사퇴 막전막후는 해석하고 주장할 성질의 것이 아니라 규명해야 할 대상이다. 있는 그대로 보고 증언이 갈리면 교차검증하면 된다. 이 과정에 선입견과 입장을 끼워 넣을 이유는 없다.

이 금도만 지켜진다면 두 신문이 펼치는 진실게임은 '돈 안 내고 보기엔 미안한' 명승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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