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4 장 과거지사(過去之事)
조반(早飯)은 두 사람만이 독대(獨對)한 채 이루어졌다. 음식은 담천의의 입에 아주 잘 맞았다. 이런 아침식사를 한 적이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는 문득 일어난 허기에 아무 말 없이 맛있게 먹었다.
“모두 네 부친의 죽음을 원했다. 선황의 명을 이행하지 않기 위해 관직까지 버린 네 부친의 행동은 항명이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또한 네 부친을 철천지원수라 생각한 백련교에서도 마찬가지. 회주들이 죽어간 천지회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담천의가 수저를 놓는 것을 보고는 주왕 주숙이 입을 열었다.
“선황께서는 남옥(藍玉)이 권세를 잡고 방자하게 위세를 떨자 숙청하기로 결정했다. 사전에 그의 인맥을 끊어야 했어. 호유용의 옥에서와 마찬가지로 그것을 균대위에 지시했지.”
이러한 내용은 이미 섭장천과 두칠의 부친인 마노 마형귀(馬荊鬼) 두광(斗廣)의 대화에서 들은 바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잠자코 들었다.
“남옥 장군과 매우 가까웠던 네 부친은 오히려 이 사부에게 부탁했다. 선황의 마음을 돌리게 해 달라고.... 하지만 이미 결정한 선황의 마음을 돌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남옥 장군을 흠모했던 현 황상까지도 말씀을 드렸지만 이미 태자를 잃은 말년의 선황은 무모할 정도로 고집을 부렸지.”
“......!”
“네 부친의 마지막 결정은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관직을 그만두는 것이었다. 이 사부는 그러한 결정을 한 네 부친에게 지금도 고마워하고 있다. 만약 남옥 장군에게 그러한 사실을 알렸거나 남옥 장군과 같이 역모를 꾀했다면 대명의 사직이 위태로울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어.”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러한 담명 장군의 어정쩡한 태도가 결국 담가장의 혈사를 가져오게 했던 원인일 수도 있었다.
“잔인하게도 선황은 남옥의 옥사에 네 부친도 끼어 넣었다. 항명은 곧 역모라 생각한 선황은 균대위에 부친을 제거할 것을 명했다. 바로 강중이었다.”
녹을 먹는 신하로서의 도리와 명령에 죽고 사는 무장으로서의 정신이 담명 장군과의 사적인 의리로 인해 강중 장군의 마음속에는 무수한 갈등과 번민이 있었을 것이다.
“당시 강중은 아마 뼈를 깎는 고통 속에서 고민했을 것이다. 그러다 이 사부를 찾아왔지.”
새로운 사실이었다. 당시의 상황으로 보아 강중 장군으로서도 스스로 도저히 결정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누군가하고는 상의해야 했다.
“담가장의 식솔들은 어쩔 수 없지만 네 부친과 가족만큼은 다른 곳으로 빼돌리겠다고 했어. 그것을 눈감아 달라고.... 선황의 아들인 이 사부에게 그러한 일을 부탁하러 온 것은 강중으로서 매우 위험한 도박을 하는 셈이었지.”
그것은 확실히 위험한 도박이었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해야 하는 강중 장군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의리를 지켜야 하는 사내들의 세계에서는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 사부의 마음도 강중과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네 부친을 빼돌리는 일은 이 사부가 맡겠다고 했다. 이 사부가 혈사가 있기 전날 네 부친과 만났던 것은 그 일을 상의하기 위함이었다.”
강중장군으로서는 매우 다행스런 일이었을 것이다. 두 사람 간에 담명 장군을 빼내기 위해 계획도 세웠다.
“하지만 네 부친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몸을 피한다고 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젊은 시절 충절을 바쳤던 남옥 장군에 대한 마지막 의리라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아니 네 부친은 죽기를 원하는 것 같았다.”
모두 그가 죽기를 바라고 있고, 자신도 죽기로 작정한 것은 아마 시대 상황이 그에게 그렇게 강요했는지 모른다. 죽어야 할 때 죽지 않고, 오욕(汚辱)을 뒤집어 쓴 채 삶 같지도 않은 삶을 이어가는 자가 얼마나 많은가? 그 점에 있어서는 담명 장군의 결정이 옳았을지 몰랐다.
“다만 한 가지를 부탁하더구나. 너와 네 동생...!”
자식까지 죽기를 바라는 부모가 어디 있으랴! 담명 장군 역시 인간이었다.
“이 사부는 포기하지 않았다. 강중이 움직이기 전에 다시 만나야 했다. 이미 계획은 강중이 담가장의 혈사를 벌이고 이 사부가 네 부친을 빼돌리기로 약조된 상태였다.”
“......?”
“하지만 그 당시 강중과 만나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을 남기게 된 일이지. 급히 담가장을 다시 찾았을 때 이미 그곳은 모든 일이 끝나 있었다. 그곳에서 강중은 핏물을 뒤집어 쓴 채 정체를 알 수 없는 무리들과 혈투를 벌이고 있었고, 이 사부 역시 그 혈투에 끼어들었다.”
“누구였습니까?”
처음으로 담천의가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잠겨 있었는데 아마 그의 뇌리에는 끔찍했던 담가장의 잔영이 떠올라 있을 것이다.
“후에 알게 되었지만 담가장의 혈사를 시작한 것은 강중과 균대위였다. 강중은 이 사부를 믿고 일을 시작한 것이지. 하지만 그것을 이용해 네 부친을 노린 자들은 따로 있었다. 이 사부가 담가장을 기습한 흉수들은 아주 다양했다. 그 수도 백여 명이 넘어 보였지. 살천문의 살수들과 천지회의 인물들..... 그리고 일부 백련교도들도 끼어 있었다.”
“큿...!”
듣고 있던 담천의가 갑자기 기괴한 실소를 터트렸다. 그의 얼굴은 처참할 정도로 일그러져 있었다. 분명 오해의 여지가 있었다. 사부는 지금 다른 인물들이 부친을 죽였다고 하나 담가장의 혈사를 일으킨 장본인은 부친이 몸담고 있던 조직이었다.
이유가 어찌되었던 바로 균대위였고 그 수장인 강중이 이끌고 있었다. 그 내막이야 어찌되었던 결국 부친을 살리지 못했다. 지금까지 왜 사부가 자신에게 툭 터놓고 말할 수 없었던 이유가 이것이었을까? 자칫 잘못 들으면, 아니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들으면 자신의 부친은 균대위가 죽인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버님의 복수를 하려면 이 중원에 있는 자들이 모두 죽어야 끝나겠군요.”
중얼거림이었는데 나직했지만 절망스런 목소리였다. 섬뜩한 살기가 배어 있었다. 주왕은 정말 이 아이가 담가장의 혈사에 관계된 모든 자들을 죽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더욱 괴이한 일은 네 부친이 거느렸던 균대위 수하 중에 몇 명까지도 담가장의 혈사에 끼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황실에 반대하는 자들이 보낸 백여 명이 넘는 흉수들 가운데 살아 돌아간 자는 다섯 명을 넘지 않았다. 하지만 어떻게 그들이 같은 시각에 균대위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이용했느냐는 것은 의문이다.”
결국 부친은 자신의 수하에게도 배반을 당한 셈이었다. 하지만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어떻게 살수집단인 살천문을 움직이고, 이질적인 천지회와 백련교까지 같은 시각에 움직였던 것일까?
“살천문에 청부를 넣은 자는 천지회의 회주 중 한 명인 모용화천과 황실의 환관인 연병문이란 자였습니다.”
“뭣이라고..?”
담천의의 말에 주왕은 몹시 놀라는 듯 했다. 모용화천이라면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아무리 피치 못할 사정이 있더라도 황실에서 살수집단에 청부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연병문.... 연병문....이라고....?”
주왕은 중얼거렸다. 아마 연병문이란 자가 누구인지 생각해 보는 듯 했다. 그러다 문득 그는 나직하게 침음성을 터트렸다.
“그렇군...... 그 놈이군. 함태감의 수하로 천관을 움직이고 있는 그 쥐새끼....!”
이건 처음 듣는 사실이었다. 또 하나의 변수가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그 변수는 이미 그가 예상하고 있는 사실에 대해 확신을 심어주는 일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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