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사건 청구인은 선생님입니다. 중학교 국어교사지요. '국어교육을 위한 교사모임' 대표로 활동하며 토론과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그 내용을 모아 <통일을 여는 국어교육>이라는 저작물을 출간하기도 합니다. 가까운 장래에는 새로운 형태의 국어교과서를 내기로 하고 이를 모색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교육법이 계획에 장애가 되어 헌법소원을 제기하게 됩니다.
교육법, 교과서 '자유발행제'는 불허
당시 선생님의 희망을 꺾었던 규정을 보면 이렇습니다.
교육법 제157조(교과서의 저작·검정·인정)
① 대학·교육대학·사범대학·전문대학을 제외한 각 학교의 교과용도서는 교육부가 저작권을 가졌거나 검정 또는 인정한 것에 한한다.
이 조문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초중등교육법 제29조 (교과용도서의 사용)
①학교에서는 국가가 저작권을 가지고 있거나 교육인적자원부장관이 검정 또는 인정한 교과용도서를 사용하여야 한다.
초·중·고등학교 교재에 대하여서는 '자유발행제'를 막고 있는 것이지요. 국정제·검정제·인정제만을 허용합니다. 당시 국어과목처럼 교육부가 저작권을 가지고 있는 것을 '1종'교과서라고 했는데, 이 경우는 규제의 강도가 더 심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청구인이 중학교 국어교과서를 저작·출판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것이지요. 오늘에도 이러한 '국정'교과서제는 유지되고 있습니다.
교육의 자주성·전문성, 학문의 자유, 출판의 자유 침해라고 주장
청구인은 이 제도가 헌법 제31조 제4항, 헌법 제21조 제1항, 헌법 제22조 제1항에 위반된다는 의견을 내세웁니다.
교사들에 의한 자주적, 전문적인 교과용 도서 저작의 자유를 봉쇄하는 것은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는 헌법 제31조 제4항에 반한다는 주장입니다.
또한 출판의 자유, 학문의 자유가 침해되었다고 말합니다. "교사는 교육에 관한 학문연구를 주요 활동으로 하고 학문연구의 결과는 자유롭게 가르칠 수 있어야 마땅한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교사들로 하여금 (국정교과서에 의하여) 기계적이고 주입식인 형태의 교육만을 반복하게 할 뿐, 교육에 관한 다양한 학문적 연구를 스스로 포기하도록 강요하고 있으므로 결과적으로 헌법 제22조 제1항이 보장하고 있는 청구인의 학문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는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이러한 목소리는 받아들여졌을까요. 당시 법조문이 여태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배척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변정수 재판관은 반대의견을 내서 청구인의 주장을 상당 부분 수용했습니다. 변정수 재판관은 초기에 많은 소수의견을 낸 바 있지요. 요지는 이러합니다.
초·중·고등학교의 교과서에 관하여 교사의 저작 및 선택권을 완전히 배제하고 중앙정부가 이를 독점하도록 한 교육법 제157조의 규정은 정부로 하여금 정권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독점적으로 교화하여 청소년을 편협하고 보수적으로 의식화시킬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어서 이는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을 선언한 헌법 제31조 제4항에 반하고 교육자유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는 것이어서 헌법 제37조 제2항에 반한다.
반대의견, "교과서 저작과 선택권은 원칙적으로 교사에게 맡겨져야"
변정수 재판관은 교과서 제작을 교육부가 독점하는 것이 교사의 교육권 내지 교육의 자유를 침해하는지 판단여부가 이 사건의 핵심이라고 보았습니다.
헌법 제31조 제4항이 보장하는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은 '교육의 자유' 보장을 통해서 비로소 실현될 수 있다고 보았지요. 즉, 교육내용이나 교육방법 등에 관한 교사의 자주적인 결정권을 그 전제로 하는 교육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고, 교육의 자유는 교육효과를 증대시키기 위한 불가결의 수단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교사 등의 교육의 자유권은 헌법 제31조 제1항 및 동 조 제4항에서 필연적으로 도출되는 그리고 동 규정에 의해 보장되는 국민의 교육기본권의 전제가 되는 헌법상의 기본권이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민주국가의 교육은 절대로 정형화된 획일적 인간을 양성하기 위한 것이어서는 아니되고 피교육자의 능력과 소질을 계발함으로써 개성신장을 촉진시키기 위한 것이어야 하기 때문에 그 교육내용과 방법도 스스로 다양성을 가질 수밖에 없는데, 그에 대한 결정권은 전문적인 교육자에게 맡겨져야 한다"는 것이 변정수 재판관의 소신입니다.
그렇다면, "교육의 내용과 방법에 관련하여 중요한 요소중 하나가 바로 학교 교과서의 저작과 선택이고, 교육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면 교육의 내용과 방법에 관한 본질적 결정사항인 교과서의 저작과 선택의 권리는 원칙적으로 교육의 자유의 주체인 교사에게 맡겨져야 하는 것"이라는 데 이릅니다.
헌재, '수업권'을 내세워 '수학권'을 침해할 수는 없어
그러나 다수의견은 이와 입장을 달리하였습니다.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는 헌법 제31조 제1항에서 "수학권"을 도출하고,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중립성보장, 교원지위 법률주의 등은 국민의 수학권의 효율적인 보장을 위한 규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설시합니다.
이런 시각에서 '수업권'을 넓게 인정하는데도 소극적입니다. "수업의 자유는 무제한 보호되기는 어려우며 초·중·고등학교의 교사는 자신이 연구한 결과에 대하여 스스로 확신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학회에서 보고하거나 학술지에 기고하거나 스스로 저술하여 책자를 발행하는 것은 별론 수업의 자유를 내세워 함부로 학생들에게 여과없이 전파할 수는 없다고 할 것이고, 나아가 헌법과 법률이 지향하고 있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침해할 수 없음은 물론 사회상규나 윤리도덕을 일탈할 수 없으며, 따라서 가치편향적이거나 반도덕적인 내용의 교육은 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할 것"이라고 판시합니다.
교사의 수업권은 전술과 같이 교사의 지위에서 생겨나는 직권인데, 그것이 헌법상 보장되는 기본권이라고 할 수 있느냐에 대하여서는 이를 부정적으로 보는 견해가 많으며, 설사 헌법상 보장되고 있는 학문의 자유 또는 교육을 받을 권리의 규정에서 교사의 수업권이 파생되는 것으로 해석하여 기본권에 준하는 것으로 간주하더라도 수업권을 내세워 수학권을 침해할 수는 없으며 국민의 수학권의 보장을 위하여 교사의 수업권은 일정범위 내에서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마침내 "국민의 수학권과 교사의 수업의 자유는 다 같이 보호되어야 하겠지만 그 중에서도 국민의 수학권이 더 우선적으로 보호되어야 한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기본권이 서로 충돌할 때 '규범조화적으로' 해석하려는 헌법재판소의 평소 태도를 감안할 때 다소 이례적인 풀이입니다.
국정교과서제, 많은 단점을 지닌 것은 사실
물론 헌법재판소가 '국정교과서'제를 높이 사는 것은 아닙니다. 구보씨는 주변에 '교과서' 하면 무엇이 떠오르느냐고 물었는데, 대답 중 부정적인 반응 또한 결정문에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국정 교과서제도는 교육부에 의하여 교과서 편찬이 주도될 뿐만 아니라 그 교과서만이 교재로 허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정부의 행정관료에 의하여 교과내용 내지 교육내용이 영향을 받을 소지가 있다는 점에서 교육의 자주성을 보장하고 있는 위 헌법의 규정과 모순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지요.
①학생들의 창의력 계발이 활성화되지 않고 저해되거나 둔화될 우려가 있다는 지적, ②상황변화에 능동적·탄력적으로 대처하기 어렵다는 지적, ③자유민주주의의 기본이념과 모순되거나 역행한다는 지적, ④교사와 학생의 교재선택권이 보장되지 못하고 그 결과 개발이 지연되거나 침체될 우려가 있다는 지적, ⑤교과서 중심의 주입식 교육 내지 암기식 교육이 행하여지기 쉽다는 지적을 일일이 열거합니다.
특히 마지막 지적에 응해서는 결정문 전체 흐름에서 다소 벗어나 보이는 견해를 피력하기도 합니다.
교과서를 국가가 독점하게 되면 교과서의 내용에 수록되어 있는 것은 무조건 정당한 것이라는 것이 전제되고 또 강조되어야 할 것이고 그 결과 교과서 중심의 주입식 교육 내지 암기식 교육이 행하여지기 쉽다는 것이다. 즉 교과서에 수록된 것 이외에는 전부 배척하는 풍토가 조성되어 가치관의 경직화가 초래되고, 인문·사회과학에는 정답이 복수로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할 때, 학생 스스로 연구하여 정답을 찾아내는 기풍은 진작될 여지가 없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한 현상은 일교과일책주의(一敎科一冊主義)일 때 더욱 심화될 수 있으며 특히 국가가 교과서의 편찬에 있어서 공교육 담당자로서의 우월적 지위만을 앞세워 적정하고도 공정한 태도를 견지하지 못할 때 그 폐단은 훨씬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합헌, 바람직한 제도라는 것까지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흐름에서 구보씨는 돋보이는 문장을 발견합니다. 이는 비단 이 사건뿐만 아니라 헌법재판소 결정문을 볼 때 항상 새겨두어야 할 구절입니다.
교과용도서의 국정제도가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의 보장규정에 비추어 위헌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그 제도가 교육이념과 교육현실에 비추어 볼 때 가장 합리적이고 바람직한 제도냐 하는 문제는 별개의 것이라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국정제도가 바람직한 것인가 하는 것은 헌법이 지향하고 있는 교육이념과 국내외의 제반교육여건, 특히 남북긴장관계가 아직도 지속되고 있는 현실여건 등에 비추어 교과과목의 종류에 따라 구체적·개별적으로 검토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하면서, 특수한 사정이 없는 경우라면, "국정제도보다는 검·인정제도를, 검·인정제도보다는 자유발행제를 채택하는 것이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고 있는 헌법의 이념을 고양하고 아울러 교육의 질을 제고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부연합니다.
합헌이라는 것은 최소한의 요건을 갖추었다는 의미일 뿐입니다. 필요조건을 충족했을 뿐 충분조건을 만족시키는 것은 아니죠. 합헌성이 정책의 타당성과 효율성까지 담보해주지는 못한다는 뜻입니다. 이는 위헌으로 법률 효력이 상실시켜 논란에 종지부를 찍는 경우와는 구별됩니다. 합헌결정이 정책의 타당성까지 가늠하는 기준으로 통용된다면 사법만능주의라는 비판에 직면할 것입니다.
진실 그 자체보다 보고 생각하는 방법을 가르쳐야
교과서를 통제하려는 관점은 학생들이 아직 어리다는 전제를 내걸고 있습니다. 헌법재판소 역시 "학생은 사물의 시비, 선악을 합리적으로 분별할 능력이 미숙하기 때문에 가치편향적이거나 왜곡된 학문적 논리에 대하여 스스로 이를 비판하여 선별 수용할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허나 획일적인 보편적 진리가 항상 존재하는지는 의문입니다. 굳이 '진실은 존재한다기보다 구성되어지는 것이다'라는 격언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말이죠. '보편성'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헤게모니 다툼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이는 국내 문제로만 머무는 것도 아닙니다. 일례로 일본의 후쇼사 역사교과서를 들 수 있겠지요.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그 한계를 설정하는 일이 과제로 남을 것입니다. '객관적 진리보다는 오히려 사물을 보고 생각하는 방법이 중요하다'는 철학자 임어당의 교훈이 숙제를 푸는 실마리가 될 것이라고 구보씨는 생각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번 사건은 [전원재판부 1992.11.12. 89헌마88] [기각] [판례집 4, 739~775]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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