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정통무협 단장기 326회

등록 2005.12.13 08:15수정 2005.12.13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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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화의 어조에는 확신이 서려 있었다. 그를 절대적으로 믿지 못하면 보일 수 없는 태도였다. 구양휘는 고개를 갸웃하다가 물었다.

“누구지? 반드시 내게 올 그 인물… 네가 만나야 할 그 인물 말이야….”


“초혼령주…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제마척사맹의 맹주가 된 사람.”

“천의?”

구양휘는 놀랬다. 몽화가 만나고자 했던 사람이 담천의라고는 생각해 보지 않았다.

“바로 그 사람이에요. 나는 반드시 그를 만나야 해요. 쫓기는 와중에서 그를 찾아간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었어요. 그가 나를 찾기 바랐지만 나를 찾아다닐 수 없는 그 사람의 사정을 이해할 수 있었어요. 더구나 당신과 함께 있으면 분명 그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당신과 합류하려고 했던 거예요. 당신들은 형제잖아요? 더구나 담천의 그 사람은 형제의 일을 뒤로 미룰 만큼 의리가 없는 사람이 아니에요.”

“천의와 무슨 관계지? 아니… 도대체 너는 누구야?”

구양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이 여자가 대체 누구 길래 이토록 담천의의 성격까지 파악하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몽화는 더 놀리기로 작정했는지 고개를 흔들면서 웃었다.


“당신은 눈썰미라곤 단 한 점도 남아있지 않군요. 아직까지도 내가 누군지 생각도 해보지 않으니 말이에요.”

그리고는 더 이상 놀리기를 포기했는지 자신이 쓰고 있던 면사를 벗었다.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나이가 들어 보이고 화장이 약간 진하기는 했지만 미녀임에는 틀림없었다. 하지만 구양휘는 저 여자가 누군지 도저히 생각나지 않았다. 처음부터 눈빛은 어디선가 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얼굴은 아무리 보아도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나는 천지회 회주 중 한 사람이에요.”

구양휘는 잠시 멍해졌다. 이 여자가 미쳤던지 아니면 자신이 미쳤던지 둘 중의 하나였다. 천지회 회주 세 명 중 여자는 없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천지회의 세 사람은 만나본 적이 없는 모용화천이란 인물과 손가장의 장주 손불이, 그리고 유곡이었다.

그러다 문득 그는 몽화를 자세히 쳐다보다말고 망연자실한 표정을 띠웠다. 긴가민가했지만 눈빛을 보고 그 눈빛을 어디서 보았는지 뇌리에 떠올리고서야 몽화가 누군지 알았다. 그가 경악성을 토했다.

“유탐화…?”

그는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유곡이라니…. 유곡이 저렇게 아름다운 미녀로 변장을 하고 있었다니…. 자신을 바보라고 놀릴 만하다고 생각했다. 바보 소리를 들어도 변명할 여지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의 목소리가 컸는지 몽화는 가늘고 흰 손을 입술에 댔다. 목소리를 낮추라는 의미다.

“젠장할… 그랬군… 확실히 나는 바보로군.”

구양휘는 몽화를 바라보고 실소를 흘렸다. 사람의 고정관념이란 것이 이렇게 무섭다. 유곡이 여장을 하리라곤 생각해 본 적도 없었기 때문에 그는 좀 더 일찍 알 수 있었던 사실을 모든 것을 밝혀주고야 난 다음에야 알게 된 것이다.

“정말 유탐화의 머리는 비상하군. 이렇게 여자로 변장할 줄이야.... 더구나 눈에 확 뜨일만한 미녀로 변장을 했으니 모용화천의 손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군.”

구양휘 역시 유곡이 천지회의 다른 회주에게 쫓긴다는 소식을 들은 바 있었다. 도움을 주고 싶었지만 그에게는 그럴 여력이 없었다. 자신의 유일한 동생이 이 천마곡을 조사하러 왔다가 죽음을 당한 충격으로 망연자실했었고, 그의 불같은 성격을 아는 어른들로부터 감금당하다시피 붙잡혀 구양가를 빠져 나올 수 없었던 것이다.

“변장이 아니에요.”

구양휘의 말에 몽화는 씁쓸한 고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자신을 밝히게 되면 이렇듯 자신의 치부를 모두 드러내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애써 피하려고 했던 것인데 어쩔 수 없이 모두 말해야 했다.

“무슨 말이오? 변장이 아니라니….”

말투가 변했다. 구양휘라 하더라도 상대가 유탐화라고 안 이상 막 대할 수는 없다.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다는 말이에요.”

그 말에 또 다시 구양휘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오늘밤은 여우에게 홀린 것 같았다.

“그럼 유탐화가 본래 여자였다는 말이오?”

몽화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이런 이야기는 되도록 하지 않았으면 했다. 하지만 이미 말이 나왔으니 어쩔 수 없다.

“내가 남자로 살아 온 것은 몸 중에 오직 한 군데 때문이었어요. 하지만 나머지는 모두 여자였죠. 이제는 유일하게 한 군데를 제외하고는 완전하게 여자예요. 천형(天刑)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거예요.”

말하는 그녀는 처연하게 웃고 있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울음보다 더 슬퍼보였다. 구양휘는 갑자기 할 말이 없어졌다. 무슨 말을 해주어야 할까? 어떠한 말이 위로가 될까? 그토록 감추려했던 일을 우격다짐으로 말하게 해 놓고 이제 와서 잘못했다고 해야 할까?

차라리 자신이 오해했듯이 그저 변장했다고 하면 좋았을 것을…. 구양휘는 슬그머니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이 당신까지 모두 세 명이 되었군요. 물론 아내를 제외하고 말이에요.”

여자의 입에서, 더구나 미녀의 입에서 아내라는 말이 나오자 아주 생소하게 들렸다. 하지만 혼인한 것은 사실이었고, 아내가 있는 것 또한 엄연한 사실이었다. 어색한 상황에서 잠시 말이 끊겼다. 그렇게 어색한 상태에서 차 한 잔 마실 시각이 흐른 것도 같았다.

그것은 유곡의 변화를 구양휘가 적응하는 시간이었다고 한다면 옳을 것이다. 그는 어색함을 떨쳐버리고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천의는 왜 만나려고 하는 것이오?”

몽화는 그의 태도에 안도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구양휘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의미였다. 그녀는 배시시 웃었다.

“내가 계획한 일을 진행하기 위해 꼭 필요한 사람이에요.”

“그가 천지회의 회주인 당신을 도울 것 같소? 그는 균대위의 수장인 초혼령주요.”

“우리는 동맹을 맺은 관계죠. 그리고 그는 반드시 나를 도와줄 거예요. 결국 그가 해야 할 일이니까요. 더구나 그는 나에게 큰 빚을 졌어요.”

“큰 빚이라니…?”

“그가 아주 정숙하고 아리따운 아내를 얻는데 내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거든요.”

“그가 혼인을 했단 말이오?”

“아직은 아니에요. 하지만 그는 이미 혼인한 것과 다름이 없어요. 아마 당신도 알거예요. 강남 송가의 하령소저 말이죠. 그가 개봉에서 당신과 만난 적이 있을 거예요. 그 당시 그 사람은 내가 제공한 거처에서 신혼 같은 행복을 맛보고 있는 중이었어요.”

구양휘는 피식 웃었다. 그때가 생각났다. 인피면구를 쓰고 자신을 찾아왔었다. 그 때 그런 일이 있었다니…. 하지만 그에게 그러한 행복한 시간이라도 주었다면 그것은 형제들이 갚아야 할 큰 빚이라고 생각했다. 구양휘가 다시 물었다.

“당신은 이 안에서 해야 할 또 다른 일이 있소?”

몽화는 고개를 끄떡였다.

“너무 많아요. 우선 당신은 철혈보주 독고문과 친해질 필요가 있어요. 앞으로 이곳을 벗어나려면 그의 도움이 무척 필요할 거예요.”

“어떻게…?”

“지금이라도 당장 당신이 술독이라도 메고 찾아간다면 아마 독고문은 쌍수를 들어 환영할 거예요. 독고문 역시 당신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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