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재단, 그들에게 아이들은 무엇인가?

내가 만약 사립학교 재단 이사장이 된다면

등록 2005.12.14 11:23수정 2005.12.14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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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학교법개정 후폭풍이 대단하다. 이번 개정안에 들어 있는 개방형 공익 이사제가 문제의 핵심인 듯하다. 이사 7명중 4분의 1선인 두 명이 공익이사로 추천되는데 2배수로 추천하게 되어 있어서 산술적인 가능성은 결국 한 명인 셈이다. 그 한 명조차 재단이 기피하는 이른바 전교조 성향의 인물이 낙점될 가능성은 거의 0%다.

그런데도 엄살이다. 아니, 그들의 처지에서는 결코 엄살이 아닐 수도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올곧은 한 사람의 눈이 불편하고 무서울 수도 있으리라.

사실은 그 말을 하려고 한 것이 아니다. 상대가 될만해야 대화를 해도 할 것이 아닌가. 아침에 출근 준비를 하다가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무엇이 그리도 두려운지 사립학교법 개정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볼멘 목소리가 처절할 정도였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교육하는 것은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 아닙니까? 그런데 사립학교법이 개정되어 공익이사제가 도입되면 사학의 자율성이 침해되어 교육은 끝난 거나 다름이 없다 이 말입니다."

현관에서 구두를 신으며 흘러들은 말이라 뒷부분의 말은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아이들을 교육하는 것은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라는 앞부분은 귀에 박히듯 기억이 또렷하다. 아마도 그 말을 한 이는 뒷부분에 방점을 두고 말을 했으리라. 그런데 아이들을 교육하는 것이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라니? 그럼 아이들은 국가경쟁력을 위한 하나의 도구나 수단에 불과하다는 말인가.

나는 그런 식으로 말의 꼬투리를 잡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에 어떤 확신 같은 것이 생긴 것도 사실이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사립학교법이 개정되면 학교를 폐쇄하겠다고 말한 그들이 아닌가. 학교를 폐쇄하겠다는 말은 학교에서 아이들을 쫓아내겠다는 말과 다를 바 없다. 하긴, 그들에게 아이들은 그 무엇을 위한 도구나 수단에 불과했으니 그런 해괴한 발상이 무리가 아닐 터이다.

학교 돈 수백억을 횡령하여 감옥에 간 사립학교 재단 이사장이 2년 만에 학교에 복귀하여 자기를 고발한 전교조 교사들을 무더기로 파면 조치한 사건이 불과 몇 해 전에 있었다. 그 사건이 영화로 패러디 되어 방영된 적이 있었는데 나는 그 영화를 보면서 오로지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악덕 사학재단에게 아이들은 돈벌이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 학교 교정에 삼삼오오 피어 있는 그 존귀한 생명들이 그들에겐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 그보다 더 큰 죄악이 있을까?


인간을 그 무엇을 위한 도구나 수단으로 삼는 것은 엄연한 죄악이다. 돈벌이가 아니라도 그렇다. 명문대 입학률을 높이기 위해서 인간성을 상실한 공부 기계로 전락해가는 아이들을 방치하거나 적극적으로 조장하고 있는 대한민국 대다수 고등학교의 행태는 이미 선을 넘어버린 지 오래다. 오죽하면 해마다 수많은 아이들이 꽃다운 나이에 성적비관으로 죽음을 선택했겠는가?

나는 교사로서 아이들이 나의 성공을 위한 수단이나 도구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것이 말처럼 쉽지가 않다. 가령, 내가 사랑의 교사가 되고자 한다면 그런 내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내 사랑의 대상이 될 아이들이 필요하다. 그들은 나의 교사로서의 성공을 위해서 피동적으로 사랑을 받게 되지만 정작 나는 그들을 사랑한 것은 아니다.


그런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는 사랑의 교사가 되겠다는 야심을 버려야한다. 그냥 사랑하면 되는 것이다. 사실 사학재단에서 어떤 원대한(?) 건학이념을 갖는 것도 그래서 위험하다. 아이들이 학교의 주인인데 그 주인을 어느 특정한 개인이 어떻게 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우스운 것이다. 모든 위대한 것들은 이미 아이들 속에 있다. 그것을 끄집어내주면 되는 것이다. 그것이 교육학에서 말하는 교육의 본질이기도 하다.

법은 죄를 짓지 않게 해주는 고마운 벗이다. 내가 만약 사립학교 재단 이사장이라면 이번 사립학교법 개정을 뜨겁게 환영하겠다. 아니, 너무도 미흡한 수준의 법 개정을 보완하는 뜻에서라도 법이 정하지 않는 것까지 기꺼이 모든 것을 투명하게 공개하겠다. 그래야 학교가 건강해지기 때문이다. 그런 환경 속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행복하기 때문이다.

미래의 꿈나무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면 국가 경쟁력은 자연히 높아지기 마련이다. 진실은 이렇게 단순하고 간명한데 미망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사립학교법 개정은 전교조에게 교육을 넘겨주는 것"이라는 아리송한 말을 하면서 꽁꽁 얼어붙은 영하의 추운 거리를 헤매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하여, 간절히 바라노니 건전 사학 운운하면서 무늬만의 사립학교법개정조차 목숨을 걸고 반대하는 어불성설을 제발 그만 두시라. 아니, 어린 영혼들을 살찌우는 보람보다도 더 귀한 무엇이 그대들에게 있다면 이번 기회에 후세들을 위해 제발 그만 학교를 떠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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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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