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사금파리 부여잡고 2부 193

숨겨진 이야기

등록 2005.12.19 17:12수정 2005.12.19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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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마재 싸움은 이괄군의 대패로 끝이 나고 말았다. 산산이 부서진 이괄군은 도성을 버리고 여기저기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역에서 말을 갈아타고 득달같이 달려오던 변정호는 이괄군이 크게 졌다는 소식을 듣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혼란의 와중에서 두억일을 만난 변정호는 일단 다른 병사들과 함께 경기 광주로 몸을 피하자는 제의를 해왔다.

“그 곳에 옛 산성이 있으니 적군이 와도 버틸 만 할 걸세. 이괄 장군과 한명련 장군이 병사들을 재 정돈해 우리를 데리러 올 때까지만 말일세.”


변정호와 두억일이 낀 패잔병들은 광주목사 임회를 사로잡아 죽인 후 앙상히 돌무더기만 쌓인 남한산성에 모여 원군을 기다렸다.

“이런 돌무더기를 성이라고 할 수 있나. 관군이 몰아쳐 오면 조금도 견디기 어려울 걸세.”

두억일은 풀뿌리를 씹어대며 곧 닥칠 죽음에 대한 공포를 이기기 위해 끊임없이 넋두리를 해대었다. 변정호는 심양에서 가져온 두루마리 중 하나를 펼쳐 보였다.

“이게 뭐요?”

“심양에서 가져온 후금왕의 언약일세.”


“허! 어제 와서 그런 걸 어디다 쓰겠소! 지금은 곡식 한 톨이 더 절실 하다오! 그런데 여기 적힌 글씨가 뭐요? 내 글을 어느 정도는 아나 이건 초서도 아닌 것이 여엉 알아 볼 수가 없소.”

“이건 특별히 여진어로 적혀 있는 거라오. 이 후금왕의 언약 아래 조정대신들의 이름을 적어 놓는다면 두 나라가 형제의 맹약을 맺는 것으로 약조하겠노라 말했다오.”


“어허허허허...... 이제 와서 그런 건 다 소용없소.”

“잘 들어 두시오.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다면 난 이 두루마리 중 하나를 가지고 여진의 땅으로 갈 것이오.”

두억일은 변정호가 제대로 먹지 못해 신소리를 한다고 여기고서는 벌떡 일어나 다른 곳으로 가려 했다. 하지만 변정호는 이야기를 그치지 않았다.

“나머지 두개는 이 산성 어디엔가 숨겨놓았으나 나중에 요긴히 쓰시오! 꼭 필요한 날이 올 것이오!”

다음날 변정호는 항왜병 하나와 산성을 빠져나왔지만, 모두 기진맥진한 가운데 아무도 이를 신경 쓰는 이는 없었다.

“변정호와 함께 도망 나온 항왜병이 바로 나 평구로다. 이괄이 끌고 나와 와해되어 버린 군세는 조선의 제일가는 군사들이었다. 그들이 있었어도 후금의 침입을 막기 버거웠을 지도 모르는 판국에 엉망이 되어버린 조선의 병력이 호란을 막아내는 건 역부족이었다. 죽은 한명련의 아들 한윤이 후금으로 가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후금의 왕을 구슬려 정묘년에 군세를 일으키려 했을 무렵에 변정호는 내게 길목 마을에 객잔을 열어 청년들에게 검술을 가르치며 기반을 마련하도록 했고, 자신은 두루마리를 가지고 가 호병이 치고 내려온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궁말의 시녀를 포섭하였다. 두루마리를 궁 안으로 들여보내어 닥쳐오는 난을 미연에 방지해 보겠다는 의도였지. 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고 아무 의미도 없는 시도였다.”

평구로는 긴 말을 하다가 힘이 들었는지 잠시 쉬었다가 짱대가 물 한 사발을 건네자 달게 마시고서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 한양에서 변정호는 최명길의 아우 최만길의 집에 몸을 의탁하고 있는 안첨지란 자를 알게 되었다. 안첨지의 본명은 김개로서 본래 이괄의 난에 가담한 자였다. 변정호의 얘기를 들은 안첨지는 변정호가 큰일을 해낸 이라며 받들어 모셨다.

“장군님의 휘하에서 높은 공을 세우신 분이 이러고 계셨다는 게 참 안타깝소이다. 조정의 대신들은 다 썩어 있소! 어찌 그런 두루마리가 통할 것이라 여기었소? 이럴 것이 아니라 우리와 손을 잡고 세상을 확 바꿔 버립시다! 이괄 장군의 휘하에 있던 사람들이 새로이 사람들을 규합해 놓고 있소이다! 지금 난을 맞이해 조정이 흔들리니 이 어찌 큰 기회가 아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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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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