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도시 토지보상, 주민에게 행복 줄까

[김종배의 뉴스가이드] 투기꾼에겐 '추가 대박', 주민에겐 생존문제

등록 2005.12.20 10:27수정 2005.12.20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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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보상가 개별 통보를 앞둔 행정중심복합도시 예정지인 충남 연기군 남면의 한 부동산 사무실 앞을 주민이 지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장재완


일주일 전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과 건설교통부가 한바탕 설전을 벌인 적이 있다. 부동산값 산정기준을 놓고 벌인 입씨름이었다.

포문은 경실련이 먼저 열었다. 경실련은 지난 14일 주택과 토지에 대한 정부의 기준(공시)시가가 실거래가의 50% 안팎에 불과하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건교부는 즉각 반박자료를 내어 경실련의 조사는 부동산 가격이 높은 132개 필지를 임의 추출한 결과이므로 신뢰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 논쟁의 핵심은 수혜자 문제다. 경실련은 부동산 세금이 턱없이 낮은 기준(공시)시가를 기준으로 매기는 만큼 결국 부동산 부자들에게 혜택을 준다고 주장했다. 반면 건교부는 경실련이 객관성이 결여된 자료를 내놔 토지수용 보상가격의 상승을 압박할 우려가 크다고 밝혔다.

접점을 찾지 못하던 이 입씨름은 어제 중요한 전기를 맞았다. 토지공사가 행정중심복합도시가 들어서는 충남 공주·연기 지역 토지소유주들에게 개별적으로 보상가격을 통보하자 상당수 토지소유주들이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보상가가 턱없이 낮게 책정됐다는 것.

"24만2천원에 땅 팔고, 35~130만원짜리 땅 사라고?"

특히 강력히 반발하는 사람들은 전체 토지소유주의 70%에 달하는 현지인들이다. 조상 대대로 현지에서 농사를 지어온 현지인들은 토지공사에 땅을 수용당한 후 인근 지역으로 옮겨 농사를 계속 지으려 해도 손에 쥐는 보상금으로는 논밭을 제대로 살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목과 위치에 따라 보상금 편차가 워낙 커 일반화하긴 어렵지만 개략적인 조망은 가능하다. 토지공사가 제시한 논의 평균감정가는 평당 24만 2천원이다. 하지만 일부 현지인들은 인근지역 논값이 평당 35~50만원, 비싼 곳은 70~130만원을 호가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호가를 기준으로 한, 다소 과장된 수치라 하더라도 가격차는 두 배 이상이다.

공주·연기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보상금 논란은 경실련과 건교부의 입씨름을 고스란히 닮아있다. 경실련과 현지인은 정부의 기준(공시)시가가 턱없이 낮다고 주장하고 있고, 건교부와 토지공사는 시세의 80~90%를 반영했다고 맞서고 있다.

그래서 공주·연기지역의 보상금 갈등이 어떻게 타결되는지를 지켜보면 경실련과 건교부의 입씨름 향배도 가늠할 수 있다.

토지보상 절차상 협의매수에 실패할 경우 중앙토지수용위원회가 직권으로 감정평가를 실시해 보상금을 제시하게 된다. 여기서도 해결이 나지 않으면 소송으로 가게 된다. 공주·연기지역의 보상금 갈등도 결국 이 절차를 거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기준(공시)시가는 물론 실거래가까지 감안해 보상금을 결정했다"는 토지공사의 주장이 수용되는지, 아니면 현지인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지는지에 따라 기준(공시)시가의 적정성 논란은 중요한 계기를 맞게 될 것이다. 아울러 그 결과에 따라 애초 경실련이 제기한 부동산 세제의 적정성에 대한 논란도 고비를 맞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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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도시예정지인 충남 연기군 남면에 내 걸린 현수막. ⓒ 장재완

'투기적 요인을 배제한 기준시가 산출'의 허구

재감정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지만 지금 단계에서 중점적으로 짚어야 할 대목이 몇 가지 있다.

공주·연기 인근지역의 땅값이 행정중심복합도시 개발 호재 때문에 급등했으며, 토지보상금이 풀려 인근지역 땅 매수 수요가 늘수록 인근지역 땅값 거품이 그대로 굳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은 엄연한 사실이다.

이 사실은 경실련에 대한 건교부의 반박 논거, 즉 경실련이 투기적 요인으로 부동산 가격이 오른 지역만을 골라 조사했다는 주장에 대한 역논리를 제공한다. 설령 건교부의 주장이 맞다 하더라도 그것은 '평균의 횡포'를 해소할 수 있는 해법은 아니다.

건교부는 기준(공시)시가는 투기적 요인 등을 배제해 산출한다고 밝힌 바 있다. 즉 공주·연기지역 현지인들에게 투기적 요인 등을 배제한 기준(공시)시가를 기준으로 돈을 쥐어준 뒤 투기적 요인으로 땅값이 오를 대로 오른 인근지역으로 나가라고 하면 현지인들의 생존은 해결할 수 없다.

보상금 갖고 도회지에 나가 떵떵거리고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야 별개이지만 자신의 문화적·역사적 뿌리가 내린 곳에서 계속 농사를 짓고자 하는 현지인들이 입을 지도 모를 선의의 피해는 어쩔 것인가.

이런 문제의식은 당연히 다음 단계의 질문으로 이어진다. 건교부가 그저 거품이라고 치부하는 '투기적 요인에 의한 가격 상승현상'이 엄연히 국민을 옥죄는 것이 현실이라면 그에 대한 대책도 마땅히 강구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다.

여기서 숫자놀음은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다. 정부는 단지 몇 퍼센트에 불과한 차이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한푼 두푼이 아쉬운 국민들에게 그 차이는 하늘과 땅의 차이일 수도 있다.

갈등이 너무나 고마운 투기꾼들 "차액은 챙겼고 잘하면..."

한 가지 더. 공주·연기지역의 갈등을 지켜보며 새삼스레 확인되는 사실이 있다. 땅을 팔아 다른 농지를 사고자 하는 현지인들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 그리고 그들 중 상당수가 될 투기꾼들의 미소 머금은 얼굴이 또렷하게 드러난다.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 정보를 미리 알고, 또는 사후에라도 발빠르게 움직여 헐값에 땅을 사들였다가 토지공사의 보상금만으로도 엄청난 차액을 건지는 투기꾼들에게 지금 공주·연기지역에서 벌어지는 갈등은 '너무 고마운' 일이다.

이미 차액은 챙길 만큼 챙겼다. 남은 일은 '플러스 알파'를 챙길 수 있느냐 없느냐 뿐이다. '잘해야 본전'이 아니라 '잘하면 추가 대박'이 나온다는 얘기다.

현지인들은 생존 때문에 점거농성을 불사하고 있지만 투기꾼들은 차액 때문에 뒷짐 지고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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