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회까지 중-일 패권경쟁의 심리적 요인을 살펴본 데에 이어, 이번 5회부터는 중-일 대결의 각론 중 하나인 '야스쿠니신사 참배' 문제에 관하여 검토하기로 한다. 야스쿠니신사 참배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정치·외교적인 영역뿐만 아니라 문화적인 영역까지 접근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이번 5회 기사에서는 야스쿠니신사 참배 문제의 문화적 배경이 되는 일본의 신(神) 관념을 간략하게 알아보기로 한다. 야스쿠니신사와 일본인들의 신 관념을 연결시키는 것은, 그들의 신 관념을 파악하지 않고서는 일본인들이 제2차 세계대전 A급 전범 14명을 야스쿠니신사의 신으로 '모셔 놓은' 이유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자 주>
오늘날의 일본은 왕족과 평민을 제도적으로 구분하고 있다는 면에서 볼 때 신분제 요소를 갖고 있는 나라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구분은 어디까지나 '살아 있을 때'의 이야기다. 죽은 뒤에는 상황이 달라진다. 왜냐하면 일본에서는 평민도 죽은 뒤에는 신(神, 일본어 발음은 '가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생전에 평민이었다 할지라도 죽어서 야스쿠니 신사에 그 위패가 안치되면 국가 실권자인 총리대신의 참배를 받을 수 있다. 그러므로 어찌 보면 일본사회에서는 '죽음'이 신분제 한계를 극복하는 관문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청일전쟁(1894년)·러일전쟁(1904년)·만주사변(1931년)·중일전쟁(1937년)·태평양전쟁(1941년) 당시 우리 민족과 세계 인류에게 총부리를 겨누었던 수백만 명의 일본 군인과 군무원들이 지금 일본의 신사(神社)에서는 신으로 추앙받고 있다. 그들 중 상당수가 우리의 조상과 우리 민족의 여인들을 능멸하고 짓밟는 등 짐승보다 못한 행위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그 '짐승보다 못한 자'들은 죽어서 '신'이 되었으며 또 총리대신의 '소신에 찬 참배'를 받고 있다.
그들이 군대에 들어가기 전에 어떤 직업을 가졌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들이 군대 안에서 졸병이었는가 아니면 장교였는가도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죽어서 '성스러운' 존재가 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일본인들은 왜 그들을 신으로 떠받드는 것일까? 자신들과 똑같은 인간에 불과했던 존재들을 신으로 떠받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신들보다 사회적 지위가 훨씬 낮았을 가능성이 있는 존재들을 신으로 떠받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와 관련하여 무엇보다도 궁금한 것은, 왜 일본인들은 인간을 신으로 숭배하는 것일까 하는 점이다.
본래 일본의 신도(神道)에서는 인간을 신으로 숭배하는 관념이 없었다. 일본 건국신화에 나오는 이자나기노미코도(伊邪那岐命), 이자나미노미코도(伊邪那美命), 아마테라스오우미카미(天照大御神) 등은 인간으로서 신이 된 존재들이 아니라 본래부터 신격(神格)을 갖고 있던 존재들이었다.
이처럼 고대 일본사회에서는 인간을 신으로 모시는 관념이 없었지만, 신도가 불교·유교·음양도와 결합하면서부터 이러한 전통적 관념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하였다.
에도시대(江戶時代 1603~1867년)의 일본 국학자(國學者)인 모토오리노리나가(本居宣長)는 "신이란 고전에 나오는 천지의 제신들을 비롯하여, 신사에 모셔진 제신 및 인간은 말할 것도 없고, 조류·짐승·나무·풀·바다·산 등 무엇이든지 간에 범상치 않고 덕이 있으며 두려운 존재를 일컫는 말"이라는 정의를 내린 바 있다. 기독교의 하나님 같은 존재뿐만 아니라, '특이하고 덕이 있고 두려운 것'이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신으로 추앙받을 수 있다는 관념이 싹튼 것이다.
종교학자 노스(John B. Noss)가 <인간의 종교>라는 책에서 "신도는 우리 생활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삶의 원리나 친근한 생활공간 등에 대해 나타내는 일종의 경외심"이라고 규정한 것도 위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고대 일본사회에서는 인간이 신이 될 수 있다는 관념이 없었지만, 신도가 다른 사상들과 결합하는 과정에서 인간도 신이 될 수 있다는 관념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인간도 신이 될 수 있다는 이 같은 관념은 인신신앙(人神信仰)의 내용이 되는 것이다. 일본인들의 인신신앙을 이해하려면 어령신앙·조령신앙·영신신앙·생신신앙 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각각을 간략하게 검토해 보기로 한다.
첫째, 어령신앙(御靈信仰)이란 생전에 원한을 품고 죽은 인간이 사후에 재앙을 일으키는 것을 막기 위해 신으로 모시면서 위로하는 신앙을 말한다. 이는 특히 일본 헤이안 시대(平安時代 8세기~12세기)의 사회상과 관련을 갖고 있다. 헤이안 시대 중기에는 정쟁이 심하고 역병이 창궐하였으며 자연재해가 빈발하였다. 이때 일본의 위정자들은 민심이반을 막기 위하여 재난의 원인을 죽은 원혼들의 탓으로 전가했다. 원혼과 역신을 위로하는 제사가 행해진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863년 교토의 신천원에서 열린 제사를 그 시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어령신앙과 관련하여 특기할 만한 점은, 일본인들이 원혼을 위로하기 위하여 취하는 방법들이다. 일본 중세 이래, 전쟁터에서 비극적인 종말을 맞이한 무사들의 영웅담을 소재로 한 문학작품들(예컨대 <타이헤이키> 등)이 많이 기록되었다. 이것은 원혼에 관한 이야기를 책에 기술함으로써 원혼을 위로할 수 있다는 관념에 기인하는 것이다. 일종의 가면극인 노(能)와 연극인 가부키(歌舞伎)도 바로 이러한 진혼(鎭魂)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는 문화현상이다.
둘째, 조령신앙(祖靈信仰)은 조상신 숭배와 같은 의미다.
셋째, 영신신앙(靈神信仰)이란 탁월한 인물을 숭배하는 신앙이라고 할 수 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이러한 영신신앙의 대상이다.
넷째, 생신신앙(生神信仰)이란 인간은 누구나 마음을 수양하고 덕을 쌓으면 살아서 신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신앙이다. 이 점과 관련하여 일본 금광교 교조 아카자와 분지의 말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인간이 신의 자녀라면 인간이 곧 신이다. 살아 있는 동안에 신이 되지 못한다면, 죽는다고 해서 신이 될 수 있겠는가?"
여기서 살펴본 어령신앙·조령신앙·영신신앙·생신신앙 등에 바탕을 두고 일본의 인신신앙이 발전해 왔다. 오늘날 야스쿠니신사에서 과거의 전범들이 신으로 추앙받고 있는 것도 이러한 인신신앙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
제2차대전 후 국제사회에서 단죄를 받고 있는 군국주의 일본의 전범들이 야스쿠니신사에서 고이즈미 총리대신의 참배를 받고 있는 배경에는 위와 같은 일본사회의 문화적 전통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인들의 신 관념을 살펴본 데에 이어, 다음 6회에서는 야스쿠니신사에 관해 좀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기로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필자가 운영하는 <뉴스 615>에도 동시에 실리는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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