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로 활동하고 있는 강병철 선배는 소설집과 시집 수필집 등 그 동안 6권의 책을 냈다.송성영
"너 내 책 다 읽어봤어?"
"읽었지…."
"그럼 <닭니>에서 장님 거지의 딸이 나중에 어떻게 된 줄 알어?"
누군가에게 책을 건네고 나면 숙제를 내놓은 선생처럼 꼬치꼬치 캐물어 당황하게 만들기도 한다. 어찌 보면 유치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 유치함은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열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글이란 누군가에게 읽히기를 바라며 쓰는 것이 아니겠는가.
선배는 눈물도 많고 정도 많다. 교단에서는 가난한 제자들에게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남다른 애정을 쏟아 왔다.
"너는 여고생 '각목깡패'였다./ (중략) /엄마는 연탄불에 언 손을 녹이고 너는 그 자리에서 아주 열심히 호떡을 반죽하고 있었다. 그 구체성의 현장이 아찔한 것이다. 야간자습 끝나고, 늘상 그랬듯이 막걸리 몇 순배로 하루를 거나하게 마감하려는 모통이에서 호떡을 굽고 있더구나, 네가 호떡을 굽고 있더구나, 나는 말문을 잊는다./ (중략) /그렇다 너는 '각목 깡패가 아니라 효녀 심청이다." - (<선생님 울지마세요> 95쪽에서)
학교 밖에서는 가난한 글쟁이 후배들을 챙긴다. 10년 전 내가 공주로 이사 온 이후로 선배를 자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만날 때마다 '적게 벌어먹고 사는' 우리 식구 걱정이었다.
"어휴, 고거 벌어서 어떻게 먹구 사냐?"
선배는 자신의 아이들은 물론이고 공주에서 사회운동을 하는 몇몇 사람들의 자녀들을 모아 아내에게 그림을 가르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기도 했다. 내가 시골에 산다는 이유로 어쩌다 우리 집이 글쟁이 선배들의 술자리가 되곤 했는데, 찾아오는 선배들은 강병철 선배의 '눈치'를 봐야 했다.
"빈손으로 오시지 뭘 사오세유."
"빈손으루 왔다가는 병철이 한티 혼나."
어쩌다 내 자동차를 타고 어디인가로 가게 되면 선배들은 그랬다. 기름 넣을 때도 멀었는데 공연히 주유소를 들렀다 가자고 했다.
"기름 넣으려면 한참 멀었는디."
"강병철이가 알믄 큰일 나니께, 기름 꽉 채우고 가, 병철이 만나면 얘기나 혀, 기름 넣어 줬다구."
며칠 전이었다. 한때 남녘 출판사를 운영하면서 <미제 침략사>를 펴냈던 조성일형과 셋이서 '무조건 안주 3천원'이라는 생맥주 집에서 만났다. 강병철 선배에게는 술만 마시면 '유치한 버릇'이 튀어나온다. 누가 나이가 더 많은가를 따지고, 술버릇이 좋지 않은 문학 판의 개망나니들을 열거해가며 누가 힘이 더 센가를 가리기도 한다. 그 날도 그랬다.
"송성영 너도 운동께나 했다지만 유용주나 한창훈이도 힘이 장사라 만만치 않을 껄, 아직까지 나도 팔 힘만큼은 자신이 있다구."
해직 당시 아이들을 가르치지 못하면 살 수 없을 것 같다던 강 병철 선배. 나이 오십이 넘은 선배의 힘 자랑은 그저 강자와 약자를 가리는 힘의 논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의 힘 자랑에는 그냥 철부지 어린아이처럼 순수함이 묻어 있다. 그 순수한 열정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의 글에는 그런 순수한 열정이 묻어 나온다.
이번 술자리 역시 화장실 다녀온다는 핑계로 강 선배가 술값을 미리 지불했다.
"담배는 내가 살께유, 싸게 먹히니께."
"됐네 이 사람아."
담배 값마저 한사코 거부한다. 20년 전 강 선배를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다.
"송성영이 남 한티 신세지기 싫어하는 거 잘 알지만, 내가 돈을 더 많이 버니께, 전혀 부담 갖지 말어."
"그류, 다른 사람은 몰라도 형이 사주믄 부담 없이 마실 수 있지."
생맥주 집에서 나왔을 때 새벽 2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그는 취해 있었다. 20년 전에도 그랬다. 예나 지금이나 흐느적거리는 선배의 뒷모습은 쓸쓸했다. 그의 순수한 열정이 잘 먹혀들지 않는 세상이었다.
새로 이사한 평수 너른 아파트로 들어서면서 선배가 죄지은 사람 마냥 한마디 툭 던진다.
"미안혀."
"뭘유?"
"아, 글쎄 미안혀."
'미안혀' 그 말이 선배의 글처럼 깊은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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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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