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소설] 머나먼 별을 보거든 - 23회

우주 저 편에서

등록 2006.06.12 16:59수정 2006.06.12 20:07
0
원고료로 응원
무기고라고 하지만 허술하기 짝이 없게도 그곳은 지키는 이 따위는 없었다. 일레가 문을 열자 우선 한 쪽에 자리 잡은 광자총 두정이 눈에 띄었다.

-이건 쓸 수 없겠군요.


일레가 광자총 하나를 점검해 본 후 그것을 집어 던져 버렸다.

-하여간 이 탐사선에는 제대로 된 게 없지요.

일레가 남은 한정의 광자총을 들어 보이자 짐리림은 행여 질질 끌다가는 일레의 마음이 바뀔지도 모를 것을 염려하여 당장 자신의 계획을 말했다.

-우선 내가 조정실로 들어가 아누와 대화를 나누고 방해가 될만한 자가 있다면 다른 곳으로 보내겠다. 일레는 조정실 문 옆에 있다가 내가 신호를 보내면 들어와 아누를 겨누어라. 이후의 일은 내가 알아서 지휘하겠다.

짐리림은 깊이 숨을 몰아쉬며 조정실로 들어섰다. 조정실에는 아누와 항해사 쉬림이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다른 이들이 더 있었다면 적당히 둘러대어 밖으로 내보낼 생각이었던 짐리림은 단 두 명만 있는 것을 보고서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대장님.

-무슨 일인가 짐리림?


-이번 탐사계획은 재고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좀 더 효과적인 탐사를 할 수 있는 지점으로 변경해 주셨으면 합니다.

아누는 조용히 짐리림을 노려보았다. 그것은 강한 부정의 뜻이었고 짐리림은 그런 아누의 태도가 혐오스러울 정도로 못 마땅했다.

-우리가 가이다의 생태계를 교란시킬 권리는 없네.

-그렇다고 혹한의 기후대에 들어가 탐사를 할 이유도 없죠. 하쉬에서 최초로 발견한 가장 이상적인 생명체의 보물창고를 그런 식으로 맛만 본다는 것은 하쉬에서 기다리고 있는 모든 생명체들을 모욕하는 행위나 다름없습니다.

논쟁이 시작될 것 같자 항해사 쉬림이 중간에 끼어 드려 했지만 아누는 하던 일을 하라며 그를 윽박지른 뒤 태연하게 자리에 앉았다.

-이보게 짐리림, 자네는 이 탐사가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지만 난 가이다의 생명체들과 공존할 수 있는 길을 찾기 위해 탐사를 하는 걸세. 그런데 단번에 수많은 생명체가 우글거리는 지역에 뛰어든다면 우리에게도 위험하겠지만 가이다의 생명체들에게도 위협이 될 수 있을 거야. 자네도 알다시피 탐사선에는 하쉬인들만 타고 있는 게 아닐세.

-그렇겠죠.

짐리림은 조금 이죽거리는 태도였다.

-실험동물들과 우리 몸에서 공생하고 있는 수많은 하쉬행성의 미생물들이 있지요. 환경주의자들이 말하는 바를 흉내 내자면 우리 몸의 미생물 하나하나까지 그 안위를 돌보아야 하는 게 하쉬의 대표적 지성체인 하쉬행성인들이 지켜야할 삶의 방식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가이다의 대기와 직접 맞닥뜨리는 순간 우리 몸에 있는 수만, 혹은 수백만의 미생물들이 죽어나가는 현실에서 생명에 대한 경외심과 감사함을 느껴야 하는 것이겠죠. 안 그렇습니까?

-우리 역시 이타적 정신으로 여기까지 온 건데 그렇게 비아냥거리지 말게나.

-대장이 말하는 이타적 정신을 우리 몸에서 죽어나가는 미생물들이 느끼고 있습니까? 다만 이용당하고 죽어나갈 뿐이죠. 저 가이다의 생명체들도 그런 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 않습니까?

-가이다의 생명은 그리 단순하지 않네. 나름대로 긴 역사를 지닌 발달된 생물들이야.

-환경론자들이 말하기를 생명체는 단순하건 복잡하건 다 같다고 하는데 왜 그렇게 모순된 얘기를 하는 겁니까! 허허허…

-말장난은 그만 하기로 하지 짐리림. 이만 가보게. 난 내 입장을 바꿀 생각이 없네.

아누가 자리에서 일어나 등을 돌리자 짐리림은 속으로 울컥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봐! 들어와!

짐리림의 고함소리와 함께 문 옆에 숨어있던 에질과 일레가 들어섰다. 아누는 뒤를 돌아보았다가 일레의 손에 들린 광자총을 보고서는 크게 놀랐다.

-짐리림! 자네…

-쉬림! 이제부터는 탐사선을 내가 지정한 위치에 착륙시켜.

짐리림은 얼음장 같은 목소리로 항해사 쉬림에게 지시했다. 쉬림은 아누를 쳐다보다가 결심한 듯 짐리림의 앞으로 성큼 다가섰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논쟁은 논쟁으로 푸십시오.

-저리로 물러서! 안 그러면 쏴 버린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하루가 지옥" 주차장에 갇힌 주택 2채, 아직도 '우째 이런일이' "하루가 지옥" 주차장에 갇힌 주택 2채, 아직도 '우째 이런일이'
  2. 2 억대 연봉이지만 번아웃 "죽을 것 같았다"... 그가 선택한 길 억대 연봉이지만 번아웃 "죽을 것 같았다"... 그가 선택한 길
  3. 3 체코 대통령, 윤 대통령 앞에서 "최종계약서 체결 전엔 확실한 게 없다" 체코 대통령, 윤 대통령 앞에서 "최종계약서 체결 전엔 확실한 게 없다"
  4. 4 28년 만에 김장 독립 선언, 시어머니 반응은? 28년 만에 김장 독립 선언, 시어머니 반응은?
  5. 5 맥주는 왜 유리잔에 마실까? 놀라운 이유 맥주는 왜 유리잔에 마실까? 놀라운 이유
연도별 콘텐츠 보기